[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바뀌어 달라지지 아니하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함’,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안정(安定)’에 대한 사전적 의미다. 이 사전엔 또 다른 안정도 나온다.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편안하고 고요함’, 이는 ‘안정(安靜)’에 대한 풀이다.

그렇다면 설 대목을 앞두고 정부가 물가 안정을 중심으로 내놓은 설 민생안정대책에서의 ‘안정’은 둘 중 어느 게 더 어울렸을까. 지난달 22일 정부는 23개 부처 통합으로 설 대책을 발표했다. 농산물과 관련해선 설 성수품 15개 주요 품목을 기준으로 가격이 크게 낮아진 배추와 무, 밤 등을 내세워 11개 품목 가격이 하락하거나 보합세를 보인다고 전하며 이를 ‘물가 안정’이라고 표현했다.

올 설 대목에 농산물 시장, 특히 정부가 주요 품목으로 내세운 배추와 무 등의 채소 시장은 시세가 평년의 반값에도 못 미치는 등 극심한 소비 침체와 가격 하락에 허덕였다. 농산물 소비의 최대 성수기였어야 할 올 설 대목에 농민은 더 힘든 시기를 보낸 것이다. 이 시점에 바닥세인 농산물 시세를 물가 안정이라고 표현한 정부의 발표를 들은 농민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쉽게 상상도 가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부가 표현한 물가 안정에서의 안정의 의미는 ‘바뀌어 달라지지 아니하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함’의 안정은 아닌 듯하다. 정부 발표 당시 배추와 무 시세는 일정한 상태의 기준이 되는 평년 시세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그럼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편안하고 고요함’이라는 또 다른 안정을 대입하는 것은 어떨까. 이는 일정 부분 고개가 끄덕여진다. 농산물 가격 하락 따위는 안중에 없는 몇몇 정부 관계자들에겐 바닥세인 최근의 농산물 시세가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편안하고 고요함’을 불러왔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참고로 표준국어대사전엔 더 다양한 안정의 풀이도 있다. ‘여러 차례 대면하여 생기는 정’이란 의미의 ‘안정(顔情)’과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림’을 뜻하는 ‘안정(安靖)’이 그것이다. 지난해 다수의 농산물 시세가 폭락했고 농정부처 수장 공백이 장기화된 상황 속에서도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관계자들의 농촌 현장 방문 및 농업계와의 대화는 손에 꼽힐 정도였다.

기해년 새해엔 부디 농사가 천하의 큰 근본이라는 선인들의 뜻을 새겨 농민과의 안정(顔情)을 통해 나라의 안정(安靖)도 도모하길 기대해본다.

김경욱 유통팀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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