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국산 비싸다, 수입과일 올려라”
체리·망고·아보카도·자몽 등
유통업계 1월 내내 판매전 집중

소비자단체도 ‘물가상승’만 부각
시세 하락에 신음 농민은 외면


농산물 최대 소비 성수기이기도 한 올 설 대목에 정작 농민은 소외됐다. 1월 내내 유통업체들은 국산 과일은 비싸졌고, 이제 제사상에 수입과일도 올라온다는 점을 내세우며 수입과일 행사를 본격 전개했고, 많은 품목의 시세가 바닥세였음에도 소비자단체에선 농산물 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만을 강조했다. 다수 언론에선 이를 받아쓰기 바빴고 정부에서도 설 민생대책을 발표하면서 가격이 급락한 품목을 안정화되고 있다면서 농민을 외면했다.

▲유통업계에선=올 설 대목 유통업계 과일매대에선 수입과일이 전면으로 부상했다. 주요 유통업체들은 국내산 과일값이 상승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대체 과일로 수입과일이 뜨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실제 한 유통업체는 최근 제사상에 사과, 배 등 기존 과일 이외에 체리 등으로 다양해진다는 점을 알리며 미국산 체리와 페루산 포도 등의 상품 판매전을 열었다. 또 다른 유통업체는 뉴질랜드산 멜론, 칠레산 체리, 세계 각지의 자몽 3종 기획전 등 수입과일 행사를 1월 내내 진행하기도 했다. 국내 한 대형 온라인업체도 수입과일 업체와 함께 사과와 배 등 국산과일이 비교적 가격이 올랐다는 점을 내세우며 설 수입과일 실속선물세트를 내놓았다. 이외에도 미국산 아보카도, 페루산 애플망고, 태국산 망고 등 수입과일 홍보가 1월 내내 집중됐다.

▲소비자단체에선=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설 대목장의 정점으로 들어가던 지난달 22일 설 특별물가 가격 조사 결과를 분석해 발표했다. 이 발표에서 과일 품목이 전년 대비 9.8% 상승해 소비자 부담이 높아졌다는 점을 집중 조명했다. 채소류 역시 임산물과 함께 묶어 0.3% 상승했다는 점을 알리며 가공식품과 축산물은 가격이 하락했는데 농산물은 가격이 상승한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산지와 도매시장에선 일방적인 분석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배가 26.1% 상승했다는 점을 부각시켰지만 배 소비의 지속적인 감소 속에 그동안 배 가격이 너무 낮게 형성돼 있었던 점을 간과했다는 것. 더욱이 겨울철 제철 과일이면서 주요 제수용 과일이지만 올겨울 내내 가격 침체에 허덕이고 있는 감귤은 아예 조사 대상에서 배제한 것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0.3% 상승했다는 채소는 문제가 더 심각했다. 현재 배추와 무를 비롯해 대부분의 채소류 시세가 바닥세를 보이고 있지만, 시금치와 숙주, 깐도라지, 삶은 고사리 등 채소류 4개 품목만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 중 시금치는 16.3%나 가격이 하락했고, 깐도라지나 삶은 고사리는 까거나 삶았다는 품목 특성상 사실상 가공업체들이 물량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로 인해 설 대목 최악의 시세 하락에 신음하는 채소 농업인의 목소리는 묻히게 됐다.


언론은 수입과일 홍보대사…정부는 ‘물가 안정’만
 

"제수용 과일도 수입으로 교체"
"명절선물로 수입과일 급부상"
언론들 앞다퉈 띄우기식 보도

정부, 어려움 겪는 농민은 외면  
주요 성수품 공급 확대만 집중
‘가격하락=물가안정’ 인식 못벗어


▲언론에선=언론에선 유통업계와 소비자단체의 발표 등을 알리며 농산물 소비 침체를 부추겼다. ‘수입과일이 차례상에 올라오고 있다’거나 ‘(FTA 효과 등으로) 저렴한 수입과일이 늘어났다’는 점을 집중 알렸다. 또한 ‘설 대목 수입과일이 대세’, ‘달라진 명절선물, 수입과일 급부상’,  ‘제수용 과일도 수입바나나 등으로 세대 교체’ 등 사실상 수입과일 홍보대사 역할을 했다.

특히 지난해 설엔 한파로 인해 채소 가격이 상승하자 설 대목에 채소 가격 상승을 부각시키더니 올해 설엔 과일로 태세를 전환했다.  ‘과일값 폭등, 차례상 물가 비상’, ‘설 앞두고 치솟는 과일값’, ‘과일값 올랐다고 차례상에서 뺄 수도 없고’ 등 과일 소비에 찬물을 끼얹는 보도가 이어졌던 것이다.

이런 영향 등이 더해져 올 설 과일 가격이 생산량이 감소한 것과 비교해선 상승세가 둔화됐다는 분석이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 평년 100p기준 설 대목에 진입하기 전인 1월 둘째 주 가락시장에서 과일계 표준지수는 123p였지만 1월 30일 113.84p, 30일 109.59p 등 오히려 설 대목에 들어가며 시세 상승이 둔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에선=정부는 1월 22일 국무회의를 통해 ‘설 민생안정대책’을 최종 확정해 발표했다. ‘상대적으로 더 어렵고 소외된 계층이 따듯한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점을 내세우며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자금지원 확대’ 등의 사업 계획을 밝혔지만 최악의 설 대목장에 신음하는 농민은 여기에서 배제됐다.

되레 농산물 수급과 관련해선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주요 성수품 공급량을 확대하고, 한파 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물가 안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내용만을 강조했다. 특히 설 성수품의 경우 15개 주요품목 기준으로 가격이 크게 낮아진 배추와 무, 밤 등을 내세워 11개 품목 가격이 하락하거나 보합세를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를 ‘물가 안정’이라고 표현했다.

도매시장의 한 경매사는 “20여년 농산물 경매를 하면서 올해 같은 설 대목 소비 한파는 경험하지 못해봤을 정도로 올 설에 농산물 시장은 상당히 어려웠다. 이로 인해 채소류를 중심으로 다수의 농산물 가격이 바닥세를 벗어나지 못했고, 과일류 중에도 겨울철 주요 제철 과일인 감귤값이 크게 떨어지는 등 어려움이 가중됐다”며 “이제는 가격이 크게 하락한 품목을 물가가 안정됐다고 표현하는 정부의 인식부터 바꿔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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