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 겨울철 한파보다 더한 배춧값 하락에 시장 경매장 분위기도 좋지 못한 상황이다. 사진은 지난 8일 밤 가락시장 배추 경매 당시 모습으로, 이날 만난 유통인들의 표정은 대부분 어두웠다.

백약이 무효한 것일까, 아니면 제대로 된 약도 쓰지 않은 탓일까. 김장철 이후 계속되고 있는 배추 가격 약세가 연말을 지나 새해 들어 더 떨어져 연일 바닥세를 형성하고 있다. 산지와 시장의 배추업계 관계자들은 온화한 날씨 속에 배추 생산량이 증가한 반면 극도의 소비 침체와 수입김치 급증이 맞물려 현재의 배추 가격에 이르렀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연말 정부가 내놓은 배추 수급 대책이 시행되지 않는 등 아직 제대로 된 약도 쓰이지 않았다고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당장 ‘사후약방문’식의 처방이라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올 봄까지 ‘배추업계 한파’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란 우려스러운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극심한 소비침체·수입김치 탓
가락시장 반입량 감소 불구
10kg 상품 2500원대 ‘바닥’



#풀이 죽은 배추 경매장

수은주가 영하 10℃ 가까이 떨어지는 등 기습한파가 찾아온 지난 8일 밤 서울 가락시장 배추 경매장. 한파보다 더 차디찬 배추 시세에 출하자의 발걸음도, 중도매인의 손짓도, 경매사의 호창도 모두 얼어붙었다. 바닥세에 시장을 찾은 출하자를 찾아볼 수 없었고, 형편없는 소비력 속에 중도매인의 손은 응찰기에 대기 어려웠다. 당연히 경매사들도 “눌러주세요”를 외칠 뿐 입안은 타들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날 밤 경매에서 나온 배추 경락가(9일 공시)는 10kg 상품에 2522원. 좋은 상태의 배추 1포기에 800원 정도 한다는 것으로 평년 1월 시세가 6100원대였던 반면 이주 내내 2000원 중후반대의 바닥세가 이어지고 있다.

경매장에서 만난 시장 유통인들과 출하단체 관계자들은 ‘극심한 소비 침체 속에 시장 반입량이 감소하고 있음에도 시세가 바닥세’인 최악의 배추 한파가 찾아왔다고 우려하고 있었다. ‘출하자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물음에 한 출하단체 관계자는 “배추도 보낼 수 없을 만큼 형편없는 시세인데 누가 시장에 오려고 하겠느냐”며 “겨울배추 생산량이 늘었지만 시장에 들어오는 배추 물량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었다. 그만큼 운임비는커녕 생산비도 못 건지는 등 배추를 올려 보낼 처지도 되지 않는다”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물량을 소비처에 납품하는 중도매인도 어렵기는 매한가지. 배추 중도매인인 박현규 씨는 “제일 큰 판매처였던 한 외식업체에 나가는 배추 양이 하루에 50~60망 정도에서 최근엔 15~20망으로 줄었다”며 “원래 연말연시인 지금은 김장철이 끝나 가정 소비가 아닌 음식점 소비가 이뤄져야 하는데 가정은 물론 음식점 소비도 형편없으니 배추 소비가 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김치 공장에 주로 납품한다는 한 중도매인도 “어제도 김치공장을 둘러봤는데 창고에 배추가 빼곡히 차 있더라”라며 “이 물량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봄까지 배추업계 어려움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장 내 유통 전문가들은 어두운 전망 속, 특단의 대책 마련 필요성을 주문하고 있다. 고행서 대아청과 경매차장은 “겨울배추는 날씨가 좋아 망가지는 물량이 없는데다 출하는 뒤로 밀리고 저장창고에도 양이 많아 (강력한 한파나 고온 등의 이상기후 없이) 이 상태로 가면 적어도 봄배추까지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과감한 산지 폐기 등 특단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급대책 미적, 수입김치 급증

정부 수급대책 내놓고
2주 지나도록 ‘뭉그적’


배추 물량 8000톤 출하정지
9000톤은 산지 폐기 한다더니
방안만 제시하고 시행은 안돼

매년 수입 김치 가파르게 증가  
올해 역대 최대규모 기록할 듯
시세 발목잡는 ‘주원인’ 지목

국내 배추 적정 재배면적 추산
절임배추 시장 확대 등 대책 시급


현재의 배추업계 한파는 생산량 증가와 소비력 감소가 맞물리며 발생하고 있다. 연말연시지만 소비가 좋지 못해 시세가 낮고, 이로 인해 출하 물량이 지연되거나 창고에 적체되는 등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그러나 산지와 시장 유통인들은 이 못지않게 관련 대책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지난 연말 농림축산식품부가 내놓은 ‘월동배추 수급안정’ 대책으로 2주가 지났음은 물론, 연일 배추 가격이 바닥세를 보이고 있는 최근까지도 이 대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당시 농식품부는 12월 하순~1월 초과 공급 예상량 2만2000톤 중 이미 시행 중인 수매비축 물량 3000톤을 제외한 1만9000톤의 배추에 대해 채소가격안정제를 통한 출하정지 8000톤, 지자체 자체 산지 폐기 9000톤, 산지유통인 자율감축 2000톤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사업들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산지의 한 관계자는 “적어도 대책이 발표된 부분에 대해선 신속히 사업 시행을 하고, 그래도 되지 않을 경우엔 더 강한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배춧값이 뚝 떨어진 최근까지도 연말 나온 대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크다. 한마디로 처방전으로 나온 약을 제대로 먹지 못해 약발을 논하지도 못하는 꼴”이라며 “만일 배춧값이 급락이 아니라 급등이었다고 해도 지금처럼 대책 시행이 늦었을까하는 강한 의구심도 든다”고 지적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12월 27일 대책을 발표했는데 아직 (지역에서) 정상적으로 이행이 되지 않고 있어, 어제(9일) 주산지협의체에 가서 이행 계획을 점검하고, 지자체에 조속히 시행하라고 이야기도 했다. 큰 틀에서 논의가 됐는데 세부 계획에서 지체가 되고 있어 빨리 시행되도록 정리를 했다”며 “이번 대책이 시행됐음에도 상황이 계속 좋지 못하면 다시 점검해 이달 말쯤 추가적인 대책까지 내놓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에선 늘어나는 수입김치 문제 및 관련 대책의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김치 수입량은 29만740톤(잠정치)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김치 수입은 2017년 27만5630톤, 2016년 25만3430톤, 2015년 22만4120톤 등 매년 급증하고 있다. 특히 연구·조사 기관에선 이번 배추업계 한파가 시작된 가을배추가 생산량이 줄었음에도 시세가 받쳐주지 않은 주 요인으로 수입김치를 뽑고 있다.

최선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 연구원은 “지난 가을배추 면적이 그 전년 대비 2.7% 감소했음에도 12월 가격이 떨어진 것은 김치 수입량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며 “현재 음식점의 80%가 수입산을 쓰고 있는데 남은 20%를 어떻게 사수하느냐와 가정용으로 소비되지 않아야 한다는 과제가 앞으로 수입산 김치가 더 늘어나는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최 연구원은 “이제 우리도 배추 적정면적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보고, 가정에서 김치를 더 담을 수 있게 절임배추 시장은 물론 절임배추 안전성에 대한 관심도 늘려야 한다”며 “포장김치 쪽에서도 고품위 배추와 재료로 프리미엄 시키거나 가격을 낮추는 등 양쪽을 공략해 중국산 김치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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