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단순한 농외 경제활동의 의미가 아닌
새로운 농업 실천으로 이어지려면
자기주도성 갖되 여럿이 함께 노력해야


같은 말인 듯해도 달리 쓰인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multifunctionality of agriculture)과 ‘다기능 농업’(multifunctional agriculture)이라는 두 용어가 그렇다. 1990년대 초반 우루과이 협상 때 쓰기 시작한 말이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다. 농산물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논리적 근거로 사용된 말이다. 식량안보, 환경보호, 농촌사회 유지 등 농업 활동이 파생하는 기능 중 교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중요한 기능을 지칭하려고 만든 말이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그 후에도 직접지불제 등 주로 보상 기제 성격의 농정 수단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활용되었다.

한편, ‘다기능 농업’이라는 말은 그보다는 나중에 주로 유럽 국가들에서 쓰기 시작했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표현이다. 우루과이 협상의 결과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성립된 후, 농민들이 먹고살기 어려워지고 농촌의 지속가능성이 흐릿해진 것은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어려워진 현실을 살아내려는 농민의 실천이 새롭게 일어났다. 생산한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이 있었다. 지역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차별화되거나 높은 수준의 품질을 간직한 농산물을 생산하거나, 유기농업을 실천하거나, 짧은 공급 사슬을 형성해 소비자 시민과 직접 만나는 활동 등이 펼쳐졌다. 농업 자원을 바탕으로 농산물 외의 다른 산출물도 만들어내려는 노력도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농업관광, 농장 내 농산물가공이나 직판 등 농업경영다각화, 요즘에는 생태계 서비스라고도 표현하는 자연이나 경관 등을 포함한 농업환경 보전 및 관리, 영농활동을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배제된 이들을 지지하는 사회적 농업 등의 실천이 있었다. 그렇게 다양하게 등장한 혁신적 실천을 포괄해 개념화한 용어가 ‘다기능 농업’이다.

한국에서도 다기능 농업의 싹이 튼 지는 오래되었다. 농촌체험휴양마을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른바 ‘농촌관광’ 시장도 1990년대 후반에 시작된 녹색관광, 농업관광 등에 뿌리를 둔다. 근년에는 ‘농업의 6차산업화’라는 이름으로 농산물 가공, 농장 직판, 관광 등의 경영다각화 바람이 일었다. 로컬푸드 매장을 지어 운영하려는 움직임은 확대일로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이런 흐름이 농업·농촌을 혁신하려는 광범위한 운동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쉽지 않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다기능 농업을 두고 그저 돈을 더 벌기 위해 ‘농업생산 더하기 알파’를 실천하는 것이라고만 이해하는 경제주의적 인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반농반X’라면서 농사지으며 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개인주의적 아마추어리즘과 다기능 농업이 동일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순한 농외 경제활동이 아니라 ‘새로움’의 의미를 갖는 다기능 농업을 기대하려면, 혁신을 가능케 하는 조건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어 놓은 혁신을 하나 말하라면, 주저 없이 스마트폰을 들겠다. 그런데 잘 따져보면 스마트폰에서 새로울 건 별로 없다. 휴대폰과 컴퓨터가 먼저 있었다. 인터넷도 폭넓게 이용되고 있었다. 스마트폰은 휴대폰, 컴퓨터, 인터넷 등이 지닌 각각의 기능을 손에 쥘 수 있는 단말기 하나에 결합한 제품이다. 즉, 아예 없던 무엇을 만든 게 아니다. 이미 있던 것들을 적절하게 연결한 결과물이다. ‘스마트’라는 말로 포장한다고 새로운 어떤 것이 되지 않으며,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던 무엇을 창조해야만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있는 것들을 잘 연결하면, 전에 없던 혁신이 눈앞에 등장한다.
연결해야 혁신이 일어나지만, 대충 이어 붙인다고 될 일은 아니다. 부실한 바람벽에 급하게 바른 벽지 이음매처럼 흉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연결하기 전에 전환이 있어야 한다. “칼을 쳐서 쟁기를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라”는 말에서 보듯, 전환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뜨겁게 달궈지기를 반복하면서 셀 수 없이 강하게 두드려 맞아야, 칼은 쟁기가 되고 창은 낫이 된다. 남모르게 치르는 비용이 있다는 말이다. ‘김치는 손맛’이라지만, 아무나 맛있는 김치를 담그지는 못한다. 그 ‘손맛’이 나오기까지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수고와 정성을 반복해야 한다. 흔한 말로, 오랜 시간 기본기를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기능 농업’은 새로운 농업 실천, 즉 혁신을 뜻한다. 그것도 농민이 능동적으로 대응한다는 자기주도성을 전제로, 여럿이 함께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실천이다. 어떤 분야이든 혁신이 쉽지 않듯, 다기능 농업이라는 혁신도 당연히 쉽지 않은 길이다. 치러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으리라. 그 비용은 사실 ‘부지런히 농사지으며 이웃과 더불어 시골 마을에 사는 살림살이’ 자체가 요구하는 수고와 고단함이다.

다기능 농업은 새로운 농업 실천이며 농촌을 지속가능하게 만들려는 공동의 노력이다. 힘든 농사를 대신할 꼼수가 아니며, 개인의 취미생활은 더욱 아니다. 협동조합이 망한다면, 그 이유는 협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마련된다는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가 행여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특별하지 못했기’ 때문일 테다. 기본 바탕을 다지는 비용을 치르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전환과 연결, 온고지신(溫故知新)하는 요령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데,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움’을 내걸며 나오는 혁신의 온갖 구호나 제안은 깃털처럼 가볍기만 한 시절에 떠오른 생각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