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 2009년부터 5kg 포장을 추진했던 권상준 우리한국배연구회장이 5kg 포장 배를 들어 보이며 ‘운송의 간편함’ 등 여러 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배는 우리나라 과수 주요 품종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설과 추석 명절에는 사과와 함께 선물세트 주 품목을 차지할 만큼 소비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배는 복합적인 이유로 소비자들에게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비 부진에 따라 배 산업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 배 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대안은 무엇이지 짚어봤다.


#배 산업 위축과 대안은

가격 약세로 농가 수익성 하락
작목 전환·폐원 면적 증가

2000년 재배면적 2만6000ha
2017년엔 1만900ha로 감소
배 소비량도 10년 사이 반토막

‘신고’에 편중…소비 확대 취약
신품종 늘려 선택폭 넓히고
농가 의무자조금 동참 급선무

 


배 산업은 최근 몇 년 사이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재배면적에서 두드러진다. 배 재배면적은 2000년 2만6000ha에서 2010년 1만4800ha, 2015년 1만2700ha, 2017년 1만900ha로 줄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가 내년 배 재배(의향)면적 조사를 한 결과 올해보다 0.9%, 평년에 비해서는 무려 17%나 줄어든 1만215ha로 추정됐다.

이러한 재배면적 감소의 이유로는 가격 약세의 지속으로 농가의 수익성 하락을 들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농가들이 작목을 전환하고, 농가 고령화 등의 이유로 폐원 면적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배 소비를 살펴봐도 현재 배 산업이 처해 있는 현실을 알 수 있다. 우리 국민 배 1인당 소비량은 2000년 6.7kg에서 2008년 9.2kg으로 정점을 보인 이후 급격히 줄었다. 2017년에는 4.6kg까지 감소했다. 10년 사이에 1인당 배 소비량이 절반 가량 감소한 것이다.

이처럼 배 산업의 위축 이유를 여러 원인에서 찾고 있다. 이 가운데 특정 품종의 편중 현상은 출하시기의 집중과 소비자 선택권 제한이라는 점 때문에 소비 확대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2018 농업전망 자료에 따르면 신고 품종 재배면적은 2002년 76%에서 2017년 무려 87%로 증가했다. 이 기간 기타 품종의 비중은 20%에서 9%로 크게 감소했다.

농촌진흥청은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위해 국내 육성 신품종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신품종에 대한 반응도 괜찮다. 서울 가락시장에서 판매된 배 신품종은 신고 품종 대비 높은 가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신품종에 대한 인지도는 낮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이 소비자 패널을 대상으로 조사(자율 기입 방식)한 결과 신고배에 대한 인지는 34%지만 배 품종을 모른다고 응답한 소비자도 20%로 나타났다. 심지어 나주배를 품종으로 인식한 소비자가 16.3%나 됐다. 신품종 재배면적이 부족하다 보니 소비자들에게까지 전달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서울 가락시장의 한 도매법인 경매사는 “신고 품종에 편중되다 보니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며 “농업인들도 생산자면서 소비자라는 인식을 갖고 품종의 다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 산업의 위기 극복을 위해 도입한 의무자조금도 당초 계획에 못 미치고 있다. 배 의무자조금은 배 봉지 1매당 2원씩을 거출해 올해 12억원 조성액을 목표로 했다. 현재까지 배 의무자조금 조성금액은 6억원 정도로 당초 목표 조성액의 50% 수준이다.

김상동 한국배연합회 사무국장은 “올해 조성된 자조금으로 그동안 시행하지 못했던 소비홍보 행사를 열었다. 의무자조금 조성액이 많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소비홍보를 통해 가격안정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농가들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는 위축된 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농가들 스스로의 노력이 선행되고 여기에 외부의 도움이 더해져야 좀 더 쉽고, 빠르게 극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결국 외부의 도움만으로는 현재의 배 산업이 갖고 있는 위기 극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배 산업이 갖고 있는 한계는 있지만 극복하지 못할 것만은 아니다. 다만 농가들의 의지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극복하는 시간과 노력이 덜할 수도 있고, 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장의 제언은

추황·황금·한아름·화산 등
여름~초겨울까지 수확 가능한
국내 육성 품종 많아
중소과 유통에 적합한 
소포장 뒷받침 돼야 승산


“침체된 배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선 소포장화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전남 나주에서 신고는 물론 황금, 추황 등 여러 국내 육성 품종 배를 재배하고 있는 권상준 우리한국배연구회장(나주하늘梨영농조합법인 대표)은 2009년부터 5kg 포장을 해오고 있다. 정부에서 내년부터 배 거래 표준규격을 10kg과 5kg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으니 10년이나 앞서 배 소포장을 시작했던, 이른바 배 소포장에 있어 선구자인 셈.

권 회장은 “많은 과일업계 종사자들이 배 산업을 위축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단일 품종 위주의 배 시장을 꼽고 있고, 이와 함께 당도가 높고 수확시기도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다양하며 크기도 여러 형태인 국내 육성 배 품종이 정착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며 “신고 하나만을 재배하는 것보다 타 품종을 같이 재배해야 수분수 역할을 하는 등 배 품위를 좋게 하는데도 유리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는 국내 육성 품종을 늘리기 위해서는 소포장화가 따라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소포장이 필요한 이유는 국내 육성 배 품종이 대부분 중소과라는 것. 권 회장은 “추황이나 황금, 한아름, 화산 등 당도가 높고 수확시기도 각기 다른 국내 육성 품종 다수가 중소과다. 이 중소과를 포장해 담기엔 소포장이 적합하다”며 “소비자들이 보기에도 작은 박스에 중소과가 담기면 배가 작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고 늘어나는 1~2인 가구에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명절이라는 특정시기에만 먹는다는 소비 행태를 바꾸기 위해서도 소포장이 필요하다고 권 회장은 보고 있다. 그는 “신고라는 가을철 수확에만 집중된 품종을 넘어 여름부터 겨울까지 계속해서 수확되는 맛좋은 우리 품종이 많다”며 “예를 들어 한아름이라는 여름에 나오는 배를 15kg으로 포장해 유통하면 여름철에 누가 그 배를 구입해 먹고, 또 변질 문제 등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소포장은 국내 육성 품종이 정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많은 사람에게 알린다’는 측면에도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 권 회장은 “5kg 포장의 경우 직접 들고 다닐 수 있게도 포장지를 제작할 수 있다”며 “국내 육성 품종을 정착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일단 맛을 보게하는 것인데 소포장으로 더 많은 이들이 찾게 되면 그 이후는 (당도나 품위 등이 뛰어나) 국내 육성 품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홍보와 포장 비용 상승 등 소포장을 위한 선결과제가 많다는 것을 권 회장도 인식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예전 사과와 참외 포장을 전환할 때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이 이번에 배 포장 규격 전환은 의무자조금이 조성된 이후 진행된다는 점”이라며 “자조금을 활용하면 여러 난제들도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민·김경욱 기자 kimym@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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