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종가·농민·유통업자·소비자 합심…‘최고품질 벼’ 만들었다

[한국농어민신문 서상현 기자]


농촌진흥청(청장 라승용)은 조생종 햅쌀 수확기를 앞둔 2018년 9월초, 현장중심의 연구를 통해 최고 밥맛을 자랑하는 벼 ‘해들’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해들’은 농촌진흥청과 경기도 이천시가 2016년 4월 업무협약을 맺고, ‘수요자 참여형 품종개발 연구(SPP)’를 통해 탄생한 최고품질의 조생종 벼다. ‘해들’이란 품종명은 ‘벼를 키우는 해, 벼가 자라는 들’이란 뜻으로 지역주민 공모를 통해 품종명을 정한 것도 의미가 있다. 농진청과 이천시는 2018년 ‘해들’ 채종포 2ha를 운영한데 이어 2019년에는 100ha 규모의 고품질 쌀 단지를 조성할 예정이다.


농진청-경기도 이천 업무협약
SPP 통해 2017년 ‘해들’ 탄생
내년 100ha 쌀 단지 조성 추진

지역주민 공모 통해 이름 짓고
80여명 참여 ‘밥맛평가단’ 운영 
조생종쌀 4번째 최고품질 선정
‘고시히카리’보다 선호도 높아


▲수요자 참여형 품종개발 연구=쌀은 우리의 주식이다. 쌀시장이 완전 개방된 상황에서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쌀 품종을 지속적으로 개발, 보급해야할 필요가 높다. 반면, 전통적인 육종방식을 적용해 벼 품종을 만드는 데는 보통 12~15년이라는 장기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국가연구기관에서 신품종 벼를 육종하더라도 실제 재배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시대상황이나 농업현장의 상황이 품종개발에 착수할 당시에 예측했던 것과 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품종개발과정에 육종가들 뿐만 아니라 재배농민, 유통업자, 소비자들이 참여하는 방식이 ‘수요자 참여형 품종개발 연구(SPP)’다. SPP(Stakeholder Participatory Program)는 육종가, 농업인, 소비자 등이 품종 개발에 함께 참여하는 현장중심의 연구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2016년부터 농촌진흥청, 이천시, 이천지역 미곡종합처리장 등이 참여해 2017년 개발된 품종이 ‘해들’이다.

▲품종특성=‘해들’의 경우 2016년부터 국립식량과학원이 보유한 벼 고세대(어느 정도 형질이 안정되고 수량성을 갖춘 계통) 계통을 이천지역에 분양한 후 지역적응성시험 등을 거쳐 개발된 품종이다. 이천의 농민들이 직접 재배하면서 농업적 특성 등을 조사했고, 품종을 선발하는 과정에는 80여명의 주부로 구성된 소비자가 직접 ‘밥맛평가단’으로 참여했다. 또, 90명이 참여한 지역민 공모를 통해 ‘벼를 키우는 해, 벼가 자라는 들’이란 뜻을 가진 ‘해들’을 품종명으로 선정했다. 아울러 ‘해들’은 2017년 신품종선정위원회에서 뛰어난 밥맛과 재배안정성을 인정받아 최고품질의 벼로 선정이 됐다. 최고품질 벼는 우리나라 쌀의 품질경쟁력 향상을 위해 선정된 최상위급 밥쌀용 품종으로 외관, 밥맛, 도정수율 및 내재해성을 두루 갖춘 품종이다. 최고품질 벼는 2018년 11월을 기준으로 18개 품종이 개발됐으며, ‘해들’은 조생종으로는 ‘문광’, ‘해품’, ‘진광’에 이어 4번째로 최고품질 벼에 선정된 품종이다.

‘해들’의 추수기는 조기재배에서 7월 24일로 비교품종인 ‘조평’ 보다 7일 늦은 조생종이다. 쌀알은 심복백이 없어 맑고 깨끗하며, 밥맛은 중만생종 수준으로 극상이라는 평가다. 도열병, 흰잎마름병에 강한 복합내병성을 갖췄고 수량은 조기재배에서 564㎏/10a로 ‘조평’ 보다 7% 증수된 수량성을 보였다. 또, 이천지역의 수요자 평가자의 48%가 ‘해들’의 밥맛이 좋다고 꼽아 ‘고시히카리’ 29% 보다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이천시와 SPP를 진행한 이유=이천에서는 오래 전부터 일본에서 도입된 ‘고시히카리’, ‘추청’ 등 외래품종이 재배돼왔다. 또한 ‘임금님표 이천쌀’이라는 국내 대표 쌀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지만 원료곡의 재배안정성과 품질이 떨어져 시대흐름에 맞춘 품종교체의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그리고, ‘수요자 참여형 벼 품종 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이천시와 지역농협RPC의 참여의지가 강하고 관심이 많아 사업성공시 파급효과도 클 것이란 게 김병주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과장의 설명이다.

이천시는 2018년에 호법면과 마장면의 2ha의 면적에서 ‘해들’ 품종의 증식포장 및 지역적응시험을 실시했다. 또한 여기서 채종한 종자를 활용해 2019년에는 100ha 규모의 고품질 쌀 단지를 조성해 시장진입을 위한 소비자 반응을 모니터링한 후 2020~2021년에는 이천시 조생종 전체 재배면적 1000ha를 ‘해들’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현재 개발 중인 ‘수원600호’에 대한 지역적응성시험과 식미평가 등이 우수한 것으로 나오고 있어 향후 이천지역에서 중만생종으로 재배되는 ‘추청’을 대체해나갈 계획이다.

‘해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수요자들이 협력해 타 지역과 차별화된 명품브랜드 쌀을 개발한 대표사례다. 농촌진흥청은 2018년 3월, 충남 아산시와 ‘수요자 참여형 벼 품종개발 공동연구 협약’을 맺은 것을 비롯해 지자체와의 SPP연구 지원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SPP 통해 스토리 만들어…새 품종보급 빨라질 것"
김병주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부 중부작물과장

‘임금님표 쌀’ 자부심 큰 이천
수 십년 재배 품종 변경 쉽지 않아 
주민 등 참여 스토리텔링 힘써
2020~2021년 1000ha 대체 전망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타 지역과 차별화된 고유브랜드를 갖고 싶어 한다. 이천시만 하더라도 ‘이금님표 이천쌀’이란 명품브랜드를 갖고 있고, 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반면, 국립식량과학원에서 최고품질의 쌀을 개발해도 재배 확대에 한계가 있었다. 지역에서 수십 년 넘게 재배해오던 품종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고 싶을 만큼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스토리텔링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국가기관 중심의 연구개발과 보급에서 탈피하는 육종프로그램을 생각하게 됐다. 육종가, 지자체, 미곡종합처리장 등 유통업자, 지역주민들까지 참여한 품종개발로 스토리를 만들면 보다 빠른 시일 내에 품종보급이 이뤄질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이게 수요자 참여형 품종 개발 연구(SPP)다. 이와 함께 국가연구기관이 포장에서 재배한 것은 밥맛이 좋았는데, 농가에 나갔을 때는 결과가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 전문연구원들이 전문화된 포장에서 시험할 때는 정확한 재배기준을 따르지만 농가는 수량이나 도복 등을 감안해 시비량을 많게도 하고, 적게도 조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품종을 개발하는 과정에 지역의 농민들이 지역의 포장에서, 그 지역의 재배법을 적용해서 키워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천시의 경우 2016년에 업무협약을 체결하자마자 고세대 계통을 분양했다. 그런데 2016년 12월에 있었던 식미검정에서 기존 품종보다 밥맛이 떨어졌다. 그래서 2017년에 완전히 바뀐 새로운 고세대 계통을 갖고 다시 시험한 후 수량, 형질, 밥맛 등을 검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해들’이다. 지역주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품종명도 공모를 통해 만들었다. ‘해들’의 장점은 조생종이면서 최고품질 벼란 것이다. 2019년 100ha규모의 고품질 쌀 단지를 조성해서 종자를 증식하고, 이천지역의 농협RPC와 농민들이 적극 협조해준다면 2020~2021년에는 이천지역 조생종 벼 재배면적 1000ha는 ‘해들’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역별로 기후대가 나눠져 있고, 토양이나 병해충 발생분포 등도 약간씩 다르다. 이제 각각의 지역에 맞는 품종을 만드는 단계에 왔다. 여기에 더해 각 지역에 맞는 재배기술을 적용해야한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그래야만 그 지역에 가장 적합한 품종, 가장 적합한 재배법으로 생산성은 말할 것도 없고 밥맛도 우수한 쌀이 생산될 수 있을 것이다.

서상현 기자 seosh@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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