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농민이 직접 말하는 ‘청년농 지원사업의 문제점’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 ‘청년농업인이 진단하는 청년창업농 지원사업 끝장토론’이 지난달 27일 서울 안국동 상생상회에서 열렸다.
▲ ‘청년, 청년농업인의 기준을 세우다’를 주제로 지난달 30일 밀양 산정자연농원에서 열린 제67회 농촌산업활성화 현장포럼은 경남발전연구원과 팜프라가 공동 주최했다.

소멸위기로 치닫고 있는 농촌에 청년층의 유입과 정착은 절박한 과제다. 문재인 정부가 청년농업인 육성정책을 핵심 농정과제로 삼고,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사업’ 등 다양한 신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정책 당사자인 지역의 청년들은 답답함을 토로한다. 정부 정책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큰 탓이다. 여기에 ‘청년농 정착지원사업’에 선정된 일부 청년들의 명품 구입논란이 싹수 논란으로 번지면서 청년들의 억울함이 분출했다. 청년농민들은 당사자인 자신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보겠다고 나섰다. 지난달 27일 서울 안국동 상생상회에서 열린 ‘청년창업농 지원사업 끝장토론’에 이어 30일 경남 밀양의 산정자연농원에서 개최된 제67회 농촌산업활성화 현장포럼에서 만난 청년농민들은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된 실효성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며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준비 없는 시작, 농촌 현실 모르는 정책 설계

올해 처음 도입된 ‘청창농 영농정착지원사업’은 만 18세 이상~40세 미만, 독립경영 3년 이하(예정자 포함)의 청년농에게 최장 3년간 월 100만~80만원의 자금을 연차별로 차등 지원하는 사업이다. 올해 4월 사업대상 1200명 중 1168명을 선발했고, 추경을 통해 400명을 추가로 선발, 현재 1568명이 선정된 상태다. 지원금은 농가 경영비 및 일반 가계자금으로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하다. 청년들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정운천 바른미래당 의원(전북 전주을)이 제기한 ‘지원금 부정 사용 논란’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문제를 제기한 의원도, 싹수가 노랗다며 선정적 보도에 나선 언론들도 이 사업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었다고 본다. 이 사업은 영농초기 소득이 불안정한 청년농들에게 생계비를 지원, 영농 정착을 돕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사업이다. 극히 일부의 일탈을 비난할 수는 있지만, 이를 빌미로 전체 청년농들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분위기가 너무 불편했다.”(충남지역 선정자)

“영농지출 비율이 12% 밖에 안된다고 질타를 하는데, 이건 사업지침 때문이다. 농촌에서는 농기계를 빌려도 개인간 현금 거래가 대부분인데, 직불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하니 정작 써야할 곳에 쓸 수가 없다. 최대한 소비 지출을 아껴서 임대료나 이자 부담을 덜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구조다. 농촌에 살아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도시 생활자 기준으로 사업지침을 만들었기 때문 아닌가.”(강원지역 선정자)


◆사업 내용 숙지 안된 담당공무원들

답답한 행정 처리에 대한 불만도 높았다. 사업이 급하게 추진되면서 일선 지자체의 담당 공무원들이 내용을 잘 몰라 안내를 받기가 힘들었다는 것.

“답답한 사람이 우물판다고, 내가 직접 여기저기 알아보고 지침서 찾아서 담당자에게 일일이 설명해줘야 했다. 정책 시행 전에 관련 공무원 교육을 제대로 하든지, 전담 공무원을 두어 업무 숙련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경남지역 선정자)

“공무원들이 담당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 잦은 순환보직에 따른 고질적인 문제다. 1년은 처음 들어와서 잘 모른다고 하다가, 뭘 좀 해보려고 하면 다른 자리로 옮겨간다. 관행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답답하다.”(경남지역 선정자)

전시행정을 꼬집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업시작 1년도 안됐는데, 벌써 농정원에서 ‘영농정착 우수사례 수기공모전’을 하더라. 이런 걸 보면 화가 난다. 청년을 정치적으로 소비한다는 느낌을 받는다.”(충남지역 선정자)


◆질 낮은 강사, 부실한 교육

연간 160시간의 의무교육도 부담스러운 부분. 지역이나 품목, 영농경력에 따라 편차가 있긴 하지만, 축산이나 시설원예 등 이미 영농활동을 하고 있는 청년들에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160시간 의무교육을 받으면서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을까, 처음 지원할 때 고민이 많았다. 실제 교육을 받아보니 쓸데없는 교육, 형식적인 교육이 너무 많다. 귀농 당시 이미 100시간 교육을 받았는데, 이걸 꼭 되풀이해야 하는지 의문이다.”(전북지역 선정자)

“우리 지역에 마땅한 교육이 없어 타 지역에서 하는 교육을 받고 싶었지만 이수 시간으로 인정해주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시·군 단위 가능한 교육을 확대하고 온라인 교육 이수인정 시간을 현행 20시간에서 40시간까지 늘려줬으면 좋겠다. 시간 때우기 교육이 되지 않도록 강사의 질과 교육의 질도 높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경북지역 선정자)


◆땅·주거문제 해결 없인 결국 헛바퀴

청년들이 진입의 가장 큰 걸림돌은 땅이다. 사업 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아직까지 임차할 농지를 찾지 못해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청년들도 상당수.

“어르신들은 대부분 정식 임대차계약서 작성을 꺼린다. 어렵사리 계약 성사까지 가더라도 자녀들이 와서 안된다고 한다. 8년 이상 자경시 양도소득세 면제조항 때문이다. 이달 내로 임대농지를 찾지 못하면 지원사업에서 탈락하는데 마음이 무겁다.”(충남지역 선정자)

농업경영체에 등록하기 위해 맘에 들지 않지만 울며겨자먹기로 농지은행에서 제공하는 땅을 계약하기도 한다. “농지은행이 소개해 준 농지는 집에서 30~40분을 가야 한다. 망설였지만 아예 우리 면에서는 농지를 빌릴 수 없는 상황이니 도리가 없었다. 그 마을엔 아는 사람이 없어 트랙터를 빌리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다.”(전북지역 선정자)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도 품어야

승계농이 아닌 일반 청년농들의 호소는 한층 더 절박했다. 땅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의 정책적·제도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 “잘 나가는 억대농부가 아니라 소규모의 유기농 농사를 짓고 싶어서 농촌으로 내려왔는데, 연고도 자본도 없는 청년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빚을 내 창농을 권하는 정책 말고, 작은 땅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는 예비 청년농들을 품어주는 정책도 필요하다.”(경남지역 귀촌희망자)

이렇게 기반 없는 청년농부를 인한 농업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팜프라’라는 회사를 만든 유지황 대표는 “승계농이 아니면 농수산대학을 다니는 친구들조차도 학교 다니는 내내 졸업 후 농사 기반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현실이다. 시작할 수 있는 무대 자체가 없는 것이다. 주거도 마찬가지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오고자 하는 청년들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한데, 정부 정책은 그 친구들을 못 따라가고 있다. 청년들에게 좀 더 밀착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장치들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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