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세 끼의 식사 말고도 아침 저녁 새참이 있었는데, 우리 속담에 ‘선주후면’이라는 말이 있듯, 국수 한 그릇 뚝딱 비울 때도 늘 두 사발 쯤의 막걸리가 있었다

나는 술을 좋아한다.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낀다. 술은 이유 없이 비틀거리게도 만들지만 깨졌던 우정도 서먹한 분위기도 사르르 녹여준다. 싸워왔던 친구 사이도 불통된 대화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술이다.

부모와 이웃간, 형제지간, 교우지간, 사제지간은 물론 조상님과도 나누는 것이 술인데, 잘 마신 술 안에서 친목과 배려, 소통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술의 종류에는 약 150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나는 막걸리를 제일 좋아한다. 막걸리는 우리나라 대표 술이다. 막걸리를 만들려면 누룩과 질금, 갓 만들어진 고두밥, 엿기름 등이 준비 되어야 한다. 누룩과 질금을 섞고 엿기름과 버무리고 그 위에 솔잎을 얹고 고두밥으로 마무리하며 10여일 햇빛을 피해 항아리에 담아 숙성한다.

술을 좋아하신 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거의 매일 술을 빚었는데 한 번도 잘못 만들거나 아버지의 입맛에 빗나간 적이 없었다. 술을 담기 전에 준비해 놓은 고두밥을 엄마 몰래 훔쳐먹다 야단 맞은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 조상들은 농경사회를 이루며 살아왔고 한우를 길러왔다. 그 속에 미풍양속과 화합을 위해 품앗이라는 게 있었는데 혼자 일을 하면 힘들고 능률에도 도움이 안 되니 이집 저 집 돌아가 작업의 효과도 높이고 협동심도 배양하는 데 목적이 있었을 게다.

내 기억에 우리 동네에서는 보통 10여 명의 농부들이 모여 일을 하곤 했는데 하루에 마실 약 60~80ℓ(약 3~4통)의 막걸리가 필요했다. 어디 그뿐인가? 세 끼의 식사 말고도 아침 저녁 새참이 있었는데, 우리 속담에 ‘선주후면’이라는 말이 있듯, 국수 한 그릇 뚝딱 비울 때도 늘 두 사발 쯤의 막걸리가 있었다.

술은 체로 걸러내면 술지게미가 나오는데 이것을 버리지 않고 일소에게 먹이면 많이 먹은 소는 일을 하다가 술이 취해 비틀거린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설탕이 귀한 시절에 사카린을 술지게미에 섞어 먹다 친구들과 묏둥지에서 잠이 들어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가끔씩 술 조사꾼이 갑자기 들이 닥쳐 여기 저기 뒤지고 다니며 집에 있는 술을 찾기가 일쑤였는데, 들키면 꽤 많은 과태료가 부과되기에 철두철미하게 엄마한테 단단히 교육을 받곤 했다.
옛 어른들께서는 잘못 배운 술버릇은 나쁜 습관으로 길들여지고, 또 해장술에 취하면 제 아비도 알아보지 못한다며 일찍부터 올바른 주법을 알려주시곤 하였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제대로 된 주법을 알지 못 해 영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가끔 있다. 물론 내 자식도 그 중에 속해 있겠지만.

부전자전이라고 했던가?

매일처럼 술을 드시는 아버지를 위해 엄마는 속 버리신다며 많이 잡수신 다음날 아침 일찍 칼국수나 묵은지 수제비 등으로 해장국을 끓여주셨는데 그때마다 ‘너는 어른이 돼서 절대 술 마시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도 아버지처럼 술을 좋아한다. 늦둥이 아들 녀석이 어릴 때, 자기는 이 다음에 절대 술을 안 마실 거라 했었지만 성장하여 대학생이 되고는 으레 한 두 잔씩 할 수 있게 되었다.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하느라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지 못하기도 했지만, 일찍이 어른들께서 내게 일러준 것처럼 술을 잘 마시는 법을 미리 알려주지 못 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요구르트의 약 50배 가량의 유산균이 들어있고, 항암효과도 높다고 전해 내려오는 우리나라 술이 있지만 점점 생활이 서구화되고 와인이나 맥주나 위스키 등 각종 양주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네 술 문화는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농경사회를 거쳐 산업화, 정보화시대가 도래되면서도 변치 않고 우리 술은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많이는 마시지 말자. 그러나 막걸리 한 잔 쯤이야.

그 속에서 우리는 존경과 사랑과 배려와 형제애, 그리고 예의 넘치는 인간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남정국/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