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선거법 개정 못하면 또 ‘깜깜이 선거’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기득권에 유리한 선거법

합동연설회·공개토론회 등
대부분 선거운동이 ‘불법’
공약·정책 등 알릴 길 없어
현직 조합장에만 유리


“지금 조합장 선거운동 방식은 새로운 인물이 조합장에 도전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명함 배부 말고는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이 전무하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조합장에 출마했는지를 들을 수 없는 깜깜이 선거입니다. 후보자들과 함께 하는 정책토론회나 작목반이 주최하는 정견발표는 허용돼야 합니다.” 충북 괴산에서 농협 이사를 지낸 한 농민의 말이다.  

“위탁선거법을 빨리 개정해야 합니다. 선거운동을 다 불법이라고 막으니까 후보자들이 공약과 정책을 알릴 수 있는 공정한 무대가 안 되는 겁니다. 1회 선거에서 현직조합장이 유리하지만은 않았다고 하는데, 조합장 당선율은 64%이고, 도전자의 경우 36% 밖에 되지 않습니다.” 남대니 한국선거연구소 소장은 “이번에 선거법을 바꾸지 않고 또다시 1회 선거 같은 결과가 나오면 저항이 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내년 3.13 제2회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가 또 다시 깜깜이 선거가 되지 않으려면 2014년 제정된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위탁선거법)을 이번 정기국회 내에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위탁선거법은 합동연설회, 공개토론회는 물론 언론기관 및 단체의 후보자 초청 대담, 토론회 모두 금지돼 있고, 예비후보자 제도가 없어 조합장 선거를 ‘깜깜이 선거’로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3.13 제2회 전국 동시 조합장선거를 앞두고 이번 정기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는 선거운동 확대와 유권자 알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의 위탁선거법 개정안 2건이 의원 발의(주승용, 김현권 의원)로 제출돼 있다. 만일 이번에 법안이 개정되지 않으면 내년 3월13일 제2회 동시 선거는 또다시 깜깜이 선거가 된다. 2014년 이후 지속된 개정 요구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겨우 3개월 여 앞둔 지금에 와서도 법을 고치지 않는다면 이 법의 소관부처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국회 모두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현직은 지위 활용 유권자 접촉 가능…도전자엔 ‘기울어진 운동장’

위탁선거법, 무엇이 문제인가

과도한 선거운동 제한으로
공명·정책선거 사실상 불가능
신인은 조합원 파악도 어려워


2014년 제정된 위탁선거법은 기존 농협법이나 공직선거법보다 비상식적으로 선거운동을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공명선거와 정책선거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제 1회 동시 조합장 선거는 위탁선거법에서 조합원이 후보자의 정책과 정견을 비교 평가할 기회를 차단한 채 진행됐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농민단체나 조합 대의원협의회의 후보자 초청 토론회는 불가능하고, 조합의 대의원총회 시에도 후보자의 정견을 들을 수 없다. 

위탁선거법은 시민사회단체의 메니페스토 운동에도 걸림돌이다. 전북 김제에서는 1회 동시선거 운동기간 이전에 농민단체 주최의 농협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인물이 이후 선거에 출마할 경우 사전 선거운동 문제가 발생할 까 우려돼 토론회 자체를 취소한 일이 있다. 경북 영천에서는 조합원들이 ‘공명선거 실천 조합원-출마자 공동선언’을 개최하려 했지만, 지역 선관위에서 다수 조합원의 참여는 선거운동 일 수 있다고 반대 입장을 표하는 바람에 취소되기도 했다.
현행 위탁선거법은 일반 선거와 달리 조합원만이 유권자인 조합 선거의 특성도 무시된다. 공직선거는 선거구내 모든 성인이 유권자이기 때문에 후보자가 감을 잡고 선거운동이 가능하지만, 조합장 선거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시군 단위의 축협이나 광역단위 품목조합, 중소도시 이상의 지역농협은 후보자가 조합원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후보자와 유권자가 만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위탁선거법은 이런 특성을 반영하지 않아 오히려 조합 사정을 잘 아는 마을 사람들을 앞세워 음성적인 선거운동과 금품제공을 조장하는 일이 벌어진다.
무엇보다 위탁선거법은 진입장벽이 높아 현직 조합장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예비선거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현직 조합장은 선거운동 기간 시작 전까지 조합장 지위를 활용, 조합원 접촉이 가능하다. 보통 조합들은 매년 1~2월에 조합의 경영성과를 조합원들에게 설명하는 운영공개 마을별 좌담회를 개최하는데, 이것이 3월 조합장 선거 직전이라 조합장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다. 또 선거운동 방식으로 전화, 문자가 허용됐지만 조합장은 쉽게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반면 다른 출마자들은 그것이 어렵다. 직원 출신들의 경우 90일 이전에만 사퇴하면 출마가 가능하므로, 재직 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관련 정보와 인맥을 챙기기가 농민 조합원들보다 훨씬 유리하다. 


대담·토론회가 제3자 개입?…농협 입김에 법안 바뀌어

위탁선거법, 누가 개악했는가?

포퓰리즘 남발·금품제공 등
공정성 담보 어렵단 논리 펴
전문가 "올바른 선택 돕는
공적인 활동 반드시 필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다. 총론이 좋아도 세부 사항에서 독소나 걸림돌이 생길 때 쓰는 말이다. 2014년 위탁선거법이 만들어질 때가 그렇다. 조합장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자는 위탁선거법 제정의 취지와는 달리 법안의 국회 심사과정에서 농협중앙회와 관료들이 개입해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냈다.  

언론 및 단체의 대담과 토론회가 삭제된 데는 농협중앙회와 농림축산식품부의 반대가 있었다. 당시 농협중앙회는 반대이유로 ‘제 3자의 선거운동 개입은 자율성을 침해하고, 조합원이 후보자를 잘 알고 있어 면대면 선거의 필요성이 낮으며, 개최 비용이 과다 소요된다’는 논리를 폈다. 또 ‘포퓰리즘 공약 남발 가능성, 청중동원을 통한 금품제공 가능성, 진행의 공정성 담보가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댔다. 국회 행정안전위 법안심사소위는 심사과정에서 농협의 반대 이유를 들어 관련 조항을 삭제했다. 소위원회에 참석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도 ‘선거운동 방법이 폭 넓게 보장돼 있다’며 삭제에 동의했다. 

그러나 농협중앙회의 논리는 농민 조합원의 참여를 통한 농협 개혁 요구의 확산을 막으려는 발상이란 비판이다. 대담과 토론회는 조합원의 올바른 선택을 돕기 위한 공적 활동이지, 선거운동개입이나 자율성 침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조합장 선거에 만연된 돈 선거, 지연혈연 위주 선거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대담 토론회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이미 공직선거법에서 허용되는 민주적 선거방법이고, 오히려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보장함으로써 선거 문화 개선에 도움이 된다.   

이호중 농어업정책포럼 사무국장은 “농협중앙회의 논리는 돈 선거, 지연 혈연 위주의 조직선거 풍토를 유지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이는 혼탁한 조합장 선거를 정책선거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고, 조합원의 바른 선택을 위한 공적 활동 막으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 박사는 “깜깜이 선거를 자초한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는 비민주적 선거제도 개선과 정책선거 실현을 위해 국회 논의 시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3선 제한’ 등 불출마 빼니…재선율 ‘63.8%’ 달해 

현직조합장 프리미엄의 진실

현·전 조합장, 조합 직원이
1회 선거 당선자 75%나 차지
‘현직효과’ 입증 연구 결과도


농협중앙회는 1회 선거의 당선 조합장 가운데 신임이 46.6%이고, 현 조합장은 53.4%라는 점을 들어 ‘깜깜이 선거’로 현직이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실상은 농협의 설명과 다르다. 

단순히 현직 조합장 당선비율을 보면 53.4%이지만, 입후보한 조합장이 당선된 비율, 즉 재선율은 63.8%에 달한다. 현직이 압도적이다. 총 1115개 농협에서 무투표 포함 936명의 현직 조합장(84%)이 입후보, 597개 조합에서 현직이 당선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현직 조합장 비율이 53.4%로 나왔을까? 그것은 상임조합장의 경우 3선까지만 연임이 가능해 더 이상 출마하지 못했거나 다른 이유로 출마를 포기한 경우가 179개 조합이 있기 때문이다. 

당선자 중 현 조합장 53.4%에 전 조합장 4.7%, 조합 직원 16.9%를 더하면 75%나 된다. 나머지 25%는 이사(11.6%) 감사(4.9%), 대의원(0.8%), 농경인(1.9%), 공무원(0.7%), 지방의원(2.1%) 독농가 기타(3.1%) 등의 경력으로 나온다.

현직 조합장이 신인에 비해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직효과’가 나타난다는 연구도 있다. 2017년 미래정책연구 제7권 2호에 실린 ‘선거운동이 극도로 제약된 상황에서도 현직 효과는 나타나는가? 제 1차 전국동시농협조합장선거의 당선요인 분석(전재현, 장민수, 김준석)’의 연구결과를 보자. 이에 따르면 현직자의 당선 가능성은 49.9%로 50%에 육박하는 반면 현직 조합장이 아닌 후보자의 경우 당선 확률이 약 26.75% 수준까지 떨어진다. 또 재임 경력에 따라 조합장 경력이 없을 경우 당선 가능성 30%, 1회 재임 경력 후보는 당선 가능성 37.3%, 2회 재임시 44.76%, 3회 52.69%, 4회 60.49%, 5회 67.79%, 6회 74.32%까지 높아진다. 


"후보자 초청 토론회 개최 배우자 선거운동 허용을"

김현권·주승용 의원 법 개정 추진

현재 국회에서는 2017년 8월 주승용 의원이 대표발의 한 개정법안과 2018년 9월 김현권 의원이 대표발의 한 개정법안이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에 계류 중이다. 김현권 의원이 제출한 법안에는 후보자 외에 배우자(배우자가 없는 경우 후보자가 지정한 1명)의 선거 운동,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한 선거운동, 60일 전부터 예비후보자 도입, 조합 행사장에서 정견 발표 등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한 전화 또는 문자메시지 허용, 후보자 초정 대담 토론회 개최, 선거기간 중 후보자는 조합원 구성원이 참석하는 회의에 참석하는 내용이 담겼다. 주승용 의원의 개정안도 예비후보자 제도, 배우자 선거운동 허용, 인터넷 홈페이지 선거운동, 정책토론회 등을 내용으로 한다. 이에 앞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5년 7월 후보자 초청 정책토론회와 예비후보자 제도 신설 등 유권자의 알 권리와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하는 내용의 권고사항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깜깜이 선거 만든 위탁선거법 개정 시급" 

남대니 한국선거연구소장

‘예비후보제도’ 도입하고
조합원 휴대전화번호 제공
돈·네거티브 없는 선거를

선거 전문가인 남대니 한국선거연구소 소장은 “현행 조합장 선거를 ‘깜깜이 선거’로 만든 위탁선거법 개정이 급하다”고 주문했다. 남 소장은 한국농업연수원에서 2019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 출마자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남 소장은 먼저 현직에게 유리한 선거제도를 지적했다. “1회 선거에서 현직 조합장 당선율이 64%이고, 도전자는 36%거든요?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깜깜이 선거 속에서 현직 조합장 프리미엄이 작용한 겁니다. 공정한 게임이 돼야죠.” “조합장은 조합원 행사에 지도사업비란 명목으로 음료수 사 들고 가는데, 혼자 가서 인사만 하는 사람이 당할 수 있겠느냐”면서 “조합장이나 도전자나 똑같이 허용하고, 똑같이 금지해야 맞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는 “위탁선거법을 공직선거법하고 비교하면 모든 것이 다 열악하다”면서 “단적인 예로 60일 전부터 예비후보 제도가 있으면 선거운동 할 수 있는데, 조합장 선거는 그것이 없고, 대부분 불법이어서 인물이든 공약이든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남 소장은 휴대폰을 이용한 선거운동이 가능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안되면 이름 빼고 주던가, 안심번호를 주던가 하면 됩니다. 이걸 조합장은 쉽게 볼 수 있는데, 다른 후보는 아예 안주거든요. 그러니 트릭을 써서 구하니까 직원들이 빼돌리는 등 불법이 난무하는 겁니다.” 

제도 개선과 관련, “중앙선관위와 국회가 제도를 만들지 못한 책임이 있는 만큼 이번 정기 국회에서 반드시 법을 개정해서 내년 3.13 선거는 열린선거, 공정한 선거, 조합원 선택권이 보장되는 선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후보자들에겐 “네거티브 보다는 정책선거로 임하라”고 충고한다. 또 유권자인 농민 조합원들에겐 “지금은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바뀌는 과도기”라며 “변화를 반영해서 참다운 지도자를 선출할지, 또 30만원 50만원 받고 찍어 줄지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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