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직불제 개편 논의 점화

[한국농어민신문 이진우 기자]

▲ 지난 20일 한국농업경제학회가 농식품부 후원으로 주최한 쌀직불금 개편 토론회 장면. 지정토론자로 정책당사자인 농민·생산자단체 관계자는 한 명도 초대받지 못했다.

당·정이 쌀변동직불제 폐지를 골자로 한 농업직불제 통합개편을 강행하려는 모양새다. 당·정이 제기하고 있는 표면적인 개편 이유는 현행 농업직불제의 지원이 쌀에 집중되면서 품목 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고, 산지쌀값이 2005년 도입한 목표가격제도의 목표가격 이하로 하락할 경우 쌀변동직불제로 소득을 일부 지지하면서 쌀 생산 과잉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많은 면적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가들에게도 직불금이 단일단가로 지급되면서 농가 간 소득분배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 게 이유다.  

하지만 농민·생산자단체에서는 형평성 문제를 직불제 개편 이유로 지목할 정도로 현재 농가소득구조가 안정적인 것이냐는 지적과 함께 당·정이 농업직불제 개편의 이유로 들고 있는 형평성 문제가 어디에서 제기됐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식품부 조사결과, 현행 직불제에 대한 농가의 정책 만족도가 97%수준에 달하기 때문이다.


#개편 이유가 형평성 때문?

“쌀 편중·대규모 농가 집중 해소”
이개호 장관 개편방향 공식화

농가 직불제 정책만족도 97%
“형평성 문제 어디서 제기 됐나”
정작 현장 농민들은 갸우뚱


농식품부는 그간 농업직불제 개편의 이유로 ‘형평성’문제를 제기해 왔다. 이는 지난 6일 국회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개호 농식품부 장관이 2018년산부터 새롭게 적용될 쌀 목표가격 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덧붙인 눙업직불제 개편방향 문건에서 농식품부의 입장은 사실상 공식화 됐다.

당시 이개호 장관은 80kg 기준 18만8192원으로 정부의 새로운 목표가격 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쌀직불제에 대해 “쌀 생산을 조건으로 지급함에 따라 쌀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고, 농업직불금이 쌀에 편중된다는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또한 대규모 농업인에 지원이 집중되어 전체 농가에 대한 소득안정장치로서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 장관은 또 “직불제의 쌀 생산연계를 완화하고, 타작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면서 “또한 중소규모 농가의 실질적 소득보전에 기여하고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직불제 개편방향을 공식적으로 국회에 제시했다.

이어 지난 15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농해수위 여당간사가 고정과 변동직불제의 통합을 골자로 ‘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당·정이 쌀변동직불제 폐지를 내용으로 한 농업직불제 개편에 보조를 맞추고 나선 상황이다.

이에 대해 농업계에서는 직불제에 대한 농가 만족도가 97%나 되는 상황에서 정책만족도가 높은 직불제를 ‘개편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형평성 문제가 ‘어디에서 제기됐는지 궁금하다’는 반응이다.임병희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농가 만족도가 97%나 되고, 현장 농민들도 다른 사람에게 가는 직불금을 뺏어서 달라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정부가 개편의 첫 번째 이유로 들고 있는 형평성 문제가 어디에서 제기된 것이냐?”는 반응이다. 그는 이에 대해 “직불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농민대상 여론조사결과나 이와 관련된 연구결과는 접해본 적이 없다”면서 “그간 학계를 중심으로 직불금 지급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 형평성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 이는 지급된 직불금을 대상으로 분석을 해보니 품목·규모간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 실제 정책당사자인 농민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2016년부터 2017년 2년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진행한 ‘직접지불제 효과 분석과 개선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이 같은 형평성 문제의 제기는 학계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이도 한정된 예산규모 내에서 규모별·품목별 지급된 직불금을 기본 데이터로 분석한 것이었다. 특히 이 연구에서는 정부가 쌀 변동직불제 폐지 이유로 지목하고 있는 쌀 생산연계성 문제와 관련해 ‘효과를 실증분석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거나 농경연의 KREI-KASMO모형을 이용해 쌀 변동직불제가 쌀 생산에 미친 영향을 사후평가한 결과에서는 ‘연도별 재배면적 증가분은 베이스라인 대비 1.9% 이내여서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개편 근거 부족해 보이는데

2020년 목표 당정 보조 맞춰
재정규모는 ‘1조8000억’ 수준

목표가격 변경에 따른
재정수요 증가 염두에 둔 듯
문 대통령 ‘공익형 직불제’ 약속
농정공약 실적내기 의혹도


이처럼 당·정이 주장하는 직불제 개편 이유가 농업현장의 문제제기에 근거하지 않거나 또는 연구결과가 부족하고, 쌀 생산과의 연계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당·정은 올해 농업직불제 개편안의 방향을 정하는 한편, 내년 상반기까지 안을 마련해 2020년에 시행할 태세다. 이는 이개호 농식품부 장관이 취임 이후부터 직불제 개편 추진일정을 밝혀 온데 이어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와 궤를 같이하는 ‘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 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면서 더욱 구체화 되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소위 위원장이기도 한 박완주 의원은 15일 쌀변동직불제 폐지와 논·밭고정직불제 등의 통합을 골자로 한 농업소득보전법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크게 3가지로 농업소득보전법 개정을 통해 농식품부가 △직불금을 통합하는 직불제 개편방안과 지급대상 면적에 따라 단가를 달리 적용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고 △쌀 생산조정제나 휴경제 등과 같은 사전생산조정과 함께 자동시장격리 등의 수급대책을 마련할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개정법률안에서는 △농식품부 장관으로 하여금 5년마다 직불제에 관한 시책을 종합적으로 수립하도록 하고 이를 국회 심의를 거쳐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어 개정안에서는 시행일자를 내년 1월 1일로 못 박고 있으며, 개정된 법률이 시행된 후 6개월 이내에 농식품부가 시책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이개호 장관이 2020년 개편된 직불제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내놓은 직불제 개편일정과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 당·정이 보조를 맞춘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이번 개정안에서는 그간 베일에 싸여졌던 개편 직불제의 재정 소요 가이드라인도 제시됐다. ‘1조8000억원 이상의 재정을 들여 면적에 따라서는 하후상박, 품목에 관계없이 같은 금액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농식품부가 직불제 개편안을 내놓으라는 것인데, 1조8000억원은 농식품부가 직불제 개편을 논의하면서 검토할 수 있는 최대 가능 금액으로 알려진 규모다. 사실상 1조8000억원이 개편 직불제의 재정규모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농업직불제 개편의 근거가 부족해 보이는 상황에서 당·정이 이를 밀어붙이고 있는 모양새에 대해 마두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목표가격 변경에 따른 재정수요 증가를 염두에 둔 개편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면서 “최근 3년간 혹은 5년간 지급된 직불금의 규모보다는 재정규모를 더 늘린다는 게 농식품부의 입장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굳이 현행 직불제를 개편하기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직불금을 받고 있는 밭 등의 고정직불금을 올려서 형평성을 제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마 총장은 또 “현행 직불제를 공익형 직불제로 전환한다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농정공약 중 하나였는데 이에 대한 추진실적을 내려다보니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 아닌가 싶다”면서 “현행 직불제에 추가로 공익형직불제를 도입하기에는 예산을 조달하기 버겁고, 따라서 현 직불제를 개편하면서 ‘공익형’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기존 집행되던 예산에 일부 더 추가하는 방식으로, 가격 하락시 재정 부담이 되는 변동직불제는 없애고 대통령 농정공약이었던 공익형 직불제 도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분석했다. 


#변동직불제 폐기, 대안은 있나

“쌀값·수급 안정장치 부실”
농민단체 개편 방안 반대

별다른 대책도 없이
쌀 변동직불제 폐지 안돼


농민·생산자단체에서는 당·정이 추진하려고 하는 농업직불제 개편 방안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우선 목표가격 대비 산지쌀값 하락분의 일부를 보장하고 있는 쌀 변동직불제의 폐지에 대해 ‘변동직불제 폐지 이후 대안이 있느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완주 의원이 발의한 ‘농업소득보전법’개정법률안에서는 부칙 2조 4항을 통해 쌀 수급안정을 위한 조치를 마련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농민·생산자단체에서는 실효성이 없는 조치라고 보고 있다.

임병희 총장은 “농식품부 장관에게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현재의 수급조절시스템과 다를 바 없다”면서 “모두 예산이 반영돼야 하는 항목들인데 기획재정부의 협조 없이 농식품부가 단독으로 안을 마련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임 총장은 또 “신곡 수요량 대비 과잉생산량을 자동으로 시장에서 격리하는 조항이 법에 명시된다 하더라도 수확기 구곡 재고 상황 등에 따라 산지 쌀 가격은 요동칠 수 있다”면서 “그리고 직불제와 관련된 사항을 5년마다 한번 논의하자는 건데, 그 사이 발생하는 문제는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반문했다.

농민·생산자단체에서는 또 쌀 가격과 수급을 시장에 완전히 맡기겠다는 식의 직불제 개편을 추진하면서 당·정이 단 한 차례도 이해당사자 의견수렴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특히 지난 달 17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쌀 목표가격 재설정 및 직불제 개편 방안’ 토론회와 지난 20일 농식품부 후원으로 한국농업경제학회가 주최한 ‘쌀 직불제 개편 어떻게 해야 하나?’토론회에 대해서는 ‘당·정이 농업직불제 개편을 앞두고 수순을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농업경제학회가 주최한 토론회는 농민·생산자단체 소속 지정토론자가 한명도 없이 진행됐다.

20일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지정토론자로 참석한 양승룡 고려대 교수는 토론회에 대해 “통과의례가 아닌가, 형식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의 안을 올려놓고 개편방향인 것처럼 토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 생각이 든다”면서 “형평성 문제를 들어 쌀직불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건 전혀 뜬금없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변동직불제를 없애는 게 핵심인데 고정직불로 전환하면 문제가 해결되느냐는 관점에서 봐도 뜬금없는 게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여주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전용중 씨(전농 경기도연맹 사무국장)는 “당·정이 제기하고 있는 직불제 개편 이유가 현장과 동떨어져 있고, 특히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된 주장을 당·정이 현장의 요구인양 호도해서는 안될 것”이라면서 “먼저 농업현장의 상황이 직불제의 형평성 문제를 들이댈 수 있는 상황인지부터 파악해 볼 것”을 주문했다. 그는 또 “직불제 개편으로 인한 영향은 온전히 농가들에게 미칠 것”이라면서 “당·정은 학계나 연구 쪽이 아닌 농민들의 의사를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진우 기자 leej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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