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외부자본 유치 명분 기업에 ‘뒷문’ 열고
300평 취미농까지도 ‘농업인’ 등록 인정 문제
농민·농지부터 정비해야 정책왜곡 막아


집을 지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게 땅을 잘 다지는 일이다. 제일 먼저 해야 하기에 근본이며,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다면 아무리 멋진 집이라 하더라도 금방 허물어지게 된다. 농사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하지만 최근 십 몇 년간의 농업정책을 보면, 이런 당연한 상식이 무시되거나, 아니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다른 산업과 달리 농업은 자본주의적 경제가 잘 들어오기 어려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수천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농지가 분할되면서 자연스럽게 소농이 농업의 주체가 되었고, 좁은 농지면적에 의해 농지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호당 경지면적은 1.5ha정도이며, 현장에서 듣는 농지가격은 평당 최소 10만원이며, 길가 혹은 개발이 기대되는 농지는 수십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농촌에서 다른 직업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소농들은 자신의 노동비용이 없다고 하더라도 농사를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설령 농사를 그만 두고 싶더라도 농지와 시설을 인수할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농사를 계속 짓도록 강요받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이익을 기대하는 외부의 자본이 들어와 사업의 위험을 감당하면서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외부자본은 농지와 거의 상관이 없는 축산업이나 대규모 유리온실에는 직접 사업에 참여하거나, 투자자본들이 들어오고 있다.

농업정책의 핵심 쟁점은 쌀문제와 노지채소의 가격불안정이며, 간혹 발생하는 시설원예의 공급과잉 구조에 따른 폭락현상이다. 농업정책에 대한 기대도 여기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영역에는 당연히 고수익을 기대하는 자본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 농업정책은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외부자본을 농업에 유치해야 한다는 잘못된 판단에 따라 대기업들이 고수익 농업에 들어올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었으며, 신성장동력을 육성한다는 미명 하에 축산과 유리온실 등에 대한 예산지원을 계속 늘리는 방식으로 변해 왔다. 농업경영체에 대기업이 들어올 수 있도록 뒷 문을 열어 두게 되었다.

반대로 앞 문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도시의 삶이 팍팍해 지고, 퇴직한 분들이 많아지면서 귀농귀촌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농촌에 와서 연금을 받으면서 300평 농지에서 농사를 짓는 취미농도 농업인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농업인의 기준이 매우 느슨하다. 감귤나무 하나면 자식을 대학보냈다는 시절에 맞춰서 만들어진 농업인 기준이 현재 3000평 감귤농사를 지어도 먹고 살기 어려운 지금에도 적용되고 있다. 고령화된 농가들과 취미농까지도 모두 농업경영체로 등록하게 되면서 100만건이 넘는 정보를 관리하다보니 업데이트 비용만 해도 엄청나고, 정보의 진위를 크로스체크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그러다보니 농업경영체의 정보와 연계된 농업정책들도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직접지불제와 쌀생산조정제의 대안을 찾는 게 혼란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지도 마찬가지이다. 매년 2% 씩 감소하고 있지만, 찔끔찔끔 줄어들면서 오히려 도시 인근 농민들에게 용도변경의 기대감만 높이고, 농지투기로 인한 부재지주들을 부추기고 있다. 거의 30년 전에 농업진흥지역의 제도 변화 이후 상당한 사회경제적 변화가 있었는데도 여전히 농지정책에 대한 농업계 전체의 논의는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실제 농업정책의 방향을 논의하다 보면, 결국 농지의 문제로 돌아간다. 상속받은 농지의 취급문제와 농지은행의 운영 등까지 포괄하여 농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농민과 농지 정책에 대한 명확한 정비 없이, 6차산업이니 4차산업혁명이니, 스마트팜이니 하는 새로운 정책을 도입해 본들 일반화도 쉽지 않고, 농업농민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렵다. 농정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다시 근본에 대해 집중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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