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도시 벗어나…몸과 맘을 다스리다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 제주 애월읍에서 ‘물뫼힐링팜’을 운영하고 있는 양희전 대표. 농업의 치유 가치를 내다보고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치유농업 기반 구축을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농장서 땀 흘리며 일하고
밥상엔 유기농 건강 먹거리
몸 좋아지는 걸 스스로 느껴

농업·농촌이 가진 치유의 힘
데이터로 정량화, 검증 시급
활성화 기반 뒷받침 돼야


최근 부각되고 있는 농업과 농촌의 가치 중 하나가 치유의 가치다. 팍팍한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도시민들에게 농업·농촌 자원이 정서적 또는 신체적으로 치유 효과를 내고 있는 사례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등 외국의 경우에는 농업이 가진 치유의 힘에 주목한 치유농장들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2013년 농촌진흥청이 ‘치유농업’을 정의하고, 이를 산업화하려는 기반 구축에 나서고 있다.

▲치유농업이란=치유농업은 쉽게 말해 농업·농촌 자원을 활용해 건강 증진을 돕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치유농업은 그동안 농업이 가진 다원적 기능 중에서 특히 교육과 치유의 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나라마다 사회적 농장(social farm), 돌봄 농장(care farm), 녹색치유(green care) 등 다양한 활동을 포함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국내의 경우 그동안 산림치유, 원예치료, 동물매개치료 등 세분화된 측면이 있었지만, 이를 통합하는 접근에 제약이 있어왔다. 특히 농업의 다원적 가치와 사회적 기능에 대한 도시민들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를 아우르는 개념 정립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2013년 농촌진흥청은 ‘치유농업’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이는 2018년 8월 30일 개정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 제43조의 2(치유농업의 진흥)’에 반영됐다.

김경미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관은 “우리나라는 세분화된 시장의 한계로 여러 소재(식물, 동물, 음식 등)의 통합적 접근에 제약이 있고, 제도적 기반 조성에 필요한 정책 개발도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치유농업이란 용어로 정의를 하게 됐다”며 “대부분의 국민이 쉽게 받아들이는 ‘힐링’(haeling)’이 좀 더 편하게 다가가고 농업의 역할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과 협의해 지금의 ‘치유농업(agro-healing)’으로 정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표사례/제주 물뫼힐링팜=제주특별자치도 애월읍 수산리에 위치한 ‘물뫼힐링팜’은 일찌감치 농업이 갖고 있는 치유의 힘에 주목했다. ‘물뫼’(지역의 순우리말)과 ‘힐링’(치유), ‘팜’(농장)을 합친 이름은 2008년에 붙였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만 해도 ‘힐링’보다는 ‘웰빙’이라는 말이 친숙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물뫼힐링팜을 운영하고 있는 양희전 대표는 머지않아 치유의 시대가 올 것이란 생각에 농업·농촌의 치유 기능을 구체화하는 데 매진했다.

양 대표는 1995년부터 대체의학을 공부해 오다 건강한 먹거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해외 사례에 눈을 돌렸고 서구에서 이미 치유농업 형태가 정착되고 있는 사실을 알고는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유기농 농사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5000여평의 땅에서 유기농 감귤을 비롯해 고구마, 유자, 옥수수, 한약재 농사 등을 짓고 있으며, 제주의 먹거리 문화 복원과 유기농업을 위해 제주도축산진흥원에서 제주토종 흑돼지를 지원 받아 15~20마리를 방목하고 있다.

양 대표는 “대체의학을 공부하다보니 중요한 것이 먹거리 섭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건강한 에너지를 가진 먹거리를 먹어야 세포가 건강해지고, 그 다음에 대체의학을 써야 치료가 되는 것이지 건강한 먹거리가 없는 치료는 그 순간만 취하는 것”이라며 “1997~98년 당시 유기농 먹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유기농 먹거리 기반을 구축해보고 ‘힐링센터’ 개념을 입히자는 생각에 유기농 농사에 뛰어들게 됐고, 물뫼힐링팜의 시작이 됐다”고 말했다.

매년 2000여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농장이 알려지면서 단순 체험을 원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지만, 물뫼힐링팜은 ‘우프(Will Workers on Organic Farms·WWOOF)농장’으로 명성을 얻었다. ‘우프’는 숙식을 제공 받은 대가로 농장 일을 거들어 주는 사람들이 찾는 농장을 말한다. 짧게는 1주일, 길게는 한 달 넘게 이곳에 머무른다. 이들은 농장일을 하며 땀을 흘리고, 마을 사람들과 교류를 통해 자존감을 높이고 정서적 치유를 받는다. 건강한 먹거리 재료로 만든 음식도 섭취하고, 명상을 통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본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지난 10여년이 넘는 동안 600명이 다녀갔다. 처음에는 외국인 배낭여행자들이 주였지만, 2010년 들어 국내에도 많이 알려지면서 국내 ‘우프족’들이 크게 늘었다.

양 대표는 “젊은 친구들이 도시에서 상실감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다. 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면역 질환을 겪는 젊은이들,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해 정서적으로 불안한 이들이 여기 와서 같이 지내면서 치유되고 자기 감성들이 살아나는 사례들이 많아지면서 농업·농촌의 치유 기능에 확신이 들었다”며 “이곳에서 농장일도 하고, 산약초 풀을 뜯어 비빔밥도 하고, 명상도 하면서 자기 스스로 몸이 굉장히 좋아지는 것을 느끼고, 또 다시 찾아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물뫼힐링팜이 말하는 활성화 방안은=국내 치유농업 활성화를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 농촌진흥청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정착단계,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발전단계, 2023년부터 안정적 시행 단계 등 3단계로 나눠 활성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데, 가장 시급한 것은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부분이다. 특히 농업·농촌이 가진 치유의 힘을 데이터로 정량화해 검증하는 부분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 양희전 대표의 얘기다.

양 대표는 “보건 당국이나 의료계에서 정량적으로 농촌의 치유요소에 대한 효과를 검증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젖소 먹이주기를 해 봤더니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되더라, 또는 농촌에 얼마간 머물렀더니 혈압이나 당뇨 수치에 도움이 되더라 등의 것들이 검증돼야 사회적으로 소모되는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농촌 지역의 가치도 알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촌 소멸과 공동화를 얘기하고 있는데, 치유농업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갖춰져야 지속가능한 농촌의 치유 가치 자산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치유농장들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제도적으로 마련해 줘야 한다”며 “또한 농촌 구성원들도 자체적으로 마을가꾸기에 노력해야 한다. 밭 주변만이라도 자구적 노력을 한다면 도시에 지친 사람들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고, 이런 것들이 농업·농촌이 가진 치유의 힘을 알릴 수 있는 자원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농림축산식품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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