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사안마다 이해 관계자 충돌 불가피
당연했던 농정의 전제부터 의심
꾸준하고 집요하게 논의 불 지펴야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낱말에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라는 풀이를 달아놓았다. 확고부동한 물리학 법칙으로서 200년 넘게 군림하던 뉴턴(I. Newton)의 이론이 아인슈타인(A. Einstein)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붕괴된 사태를 두고 ‘패러다임 전환’의 한 사례라고 부른다.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말은 참으로 엄중하고 심각한 주장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한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근본에서부터 바꾸자는 말인데, 그 어떤 독재자도 성공하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수십 톤 바윗덩이 같은 무게를 지닌 말도 입에 든 수박씨 뱉어내듯 가볍게 굴리는 기묘한 능력이 있어서, 대통령 선거 전후로 딱 1년 동안 ‘농정 패러다임 전환’을 말한다. 물론 농정 패러다임은 1990년대 이후로 바뀐 적이 없다. 이번에도 그랬다.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농정개혁위원회도 구성되어 운영되었고, 농정 패러다임 전환을 운운하는 연구보고서들도 심심치 않게 발간되었고, 많은 이들이 ‘농정 대개혁’을 정부에 요구하면서 기대를 걸기도 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듯, 농정 패러다임 전환 논의는 실종되었다. 체념하거나 분노하는 사람들 사이에 술자리 안주로나 활용될 뿐이다.

농정 패러다임을 바꾸자고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농업 부문과 농촌 지역의 상황이 원체 복잡다단하고 민감한 사안들에 노출된 지 오래되었다는 점에 있다. 돼지나 소를 많이 키우는 지역에서 같은 동네 사는 농민이 축사 신축이나 증축을 반대하는 펼침막을 내건 곳이 적지 않다. 악취, 하천 수질 오염 등의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 되는 것이라고는 축산밖에 남지 않았다’는 상황 인식 때문에 축산에 뛰어들거나 규모를 확대하는 이들이 많다. 농지를 둘러싼 경합도 심해지고 있다. 자본 없는 청년들이 농업에 진입할 수 있게 돕자는 취지로 정부가 밀어붙여 농지은행이 ‘2030 농지지원 정책’을 추진하지만, 지속적으로 경지 규모를 확대하려는 쌀 전업농들이 반발한다. 안전한 먹거리를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는 점점 커져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나 농약 관련 정책은 갈수록 세밀하고 엄격해진다. 기술도 좋아져서 예전 같으면 검출할 수 없었던 0.004ppm 수준의 극미한 토양잔류 물질도 죄다 ‘색출’되는 지경이다.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들은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느냐’며 반발한다. 한쪽에서는 첨단과학기술로 무장한 스마트팜이 한국 농업의 나아갈 방향이라며 대규모 투자를 정당화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단돈 이십만 원이라도 있으면 굶어죽지 않을 것 같다며 ‘농민기본소득’을 달라고 한다.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지속가능성이 확보된다면서 태양광 발전 시설 도입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지만, 수천 평에서 수만 평 농지나 임야에 난입해 자리 잡은 검정색 유리판에 질색하며 반대하는 농촌 주민이 한둘이 아니다.

농정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주장은 엄청난 것이어서, 일단 논의가 시작되면 1년 정도 사이에 몇 차례 토론회 정도로 마무리 할 수 있는 게 아닌 듯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온갖 세력 사이에 대화의 접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이른바 전문가 체계(expert system)에 속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경직되어 있거나 줏대가 없어서 논의가 흐지부지 끝나고 말 수도 있다. 센 것과 약한 것,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 큰 것과 작은 것,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등등 동시에 존재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들이 병립(竝立)하는 상황이어서 헷갈린다. 그러나 ‘혼돈이야말로 새로운 패러다임 등장의 전조(前兆)’라는 점은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용어를 창안해 과학철학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토마스 쿤(T. Kuhn)의 지론이다. 혼란스러울수록 패러다임 전환을 논의해야 한다. 그것도 꾸준하고 집요하게 논의해야 한다. 혼란스럽다는 것은 기존에 통용되던 당연한 것이 더는 들어맞지 않게 되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농정 패러다임 전환 논의는 당연하다고 여겨온 농정의 전제들을 의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확증된 의견은 아니지만, 이 지면에서 상설하기는 어렵지만, 농업경영 규모를 확대하고 시장 경쟁력을 높여서 농업 경영체가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농촌도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는 그 당연한 생각을 의심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논의의 장(場)을 확실하게 마련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온갖 위원회쯤 만들어봐야, 심지어 아주 ‘특별한’ 위원회를 만들어도 농정 패러다임 전환을 충분히 논의할 만큼 오래가지 못하는 것을 너무 자주 경험했다. 여기에서 불신의 싹이 자라난 것 아닐까? 일단 형성된 농정 패러다임은 정당의 집권기간보다 훨씬 오래 군림할 것이다. 또 그래야 한다. 그러므로 농정 패러다임 논의의 장은 정치적 기류나 한때의 유행에 좌우되는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 그런 논의 구조를 한국 사회는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자꾸만 냉소에 기우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이미 꺼진 불에 다시 불 지피자는 말을 하는 듯해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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