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주여성의 수가 2006년 정점에 다다른 이후 10여년이 지났다. 이들은 이제 한국 농촌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자리매김 하고 있으며, 공동화·고령화 돼 가는 농촌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본보는 농촌사회에 뿌리내린 다문화 여성농업인을 만나 그들의 정착과정과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그리고 다문화 여성농업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전문가 의견을 듣고 관련 정책도 살폈다. ‘농촌의 희망, 다문화 여성농업인’을 2회에 걸쳐 연재한다.
 

▲ 중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와 한국 생활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효휘(사진 오른쪽) 씨.

●한국생활 11년차 인천 강화군 이효휘 씨
“논 넓히고 트랙터도 사며 고생 끝 소소한 재미 느껴”

농사일은 힘들었지만
시댁과 큰 마찰 없이 정착
한글수업 고급반까지 마치고
아이들 숙제 도와주기도 척척

출산도우미·방문지도사 등
다문화여성 지원정책 큰 도움
더 많은 이들이 누렸으면…


“중국에서 시집을 왔을 때에는 농사 기반이 하나도 마련돼 있지 않아 남편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고생한 끝에 트랙터도 사고 논도 넓혀가며 소소한 재미를 느꼈고, 한국 생활도 잘 정착했습니다.”

올해로 한국생활 11년차에 접어든 이효휘(35·리셔휘) 씨는 현재 남편 이상록(43) 씨와 함께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6만6115m2(약 2만평) 규모의 쌀농사와 조사료(연평균 4800롤)를 생산하고 있다. 그는 호주 어학연수 중이던 남편 이상록 씨의 중국 지인 소개로 연애를 시작했고, 2007년에 결혼해 한국으로 왔다.

중국 헤이룽장성(흑룡강성) 하얼빈시 인근에서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이효휘 씨는 농사의 ‘농’자도 알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농사기반도 약하고 언어와 문화가 생소한 곳에서 농사를 짓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남편과 함께 봄, 여름에는 아침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논을 돌보고 인근에 위치한 공장에 다니며 돈을 벌었다. 가을·겨울에는 인근 논을 돌며 조사료를 생산하는 일을 반복했다. 특히 강화도의 겨울은 찬바람이 유독 심한데, 옷을 여러 겹 입고 조사료를 생산하고 운반하는 일이 무엇보다 힘들었다는 것이 이효휘 씨의 설명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농사일은 힘들었지만 시댁과 마찰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효휘 씨가 시댁 및 주변 친인척에게 잘 한 것도 있었고, 중국이 한국과 문화적 차이가 많이 없는 것도 좋은 점으로 작용했다.

이효휘 씨는 “다문화 가정 중 시댁과 같이 살면서 고부간의 갈등이 많은 것을 봤는데 다행히도 결혼 초기부터 독립해서 따로 살았다”면서 “나 역시 남편과 농사일을 열심히 하고, 집안행사도 먼저 나서서 하니 시댁에서도 인정해주고 좋아해주셔서 다행히 갈등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농사일도 직접 농기계를 운전하는 등 열심히 일한 결과 주변 어르신들도 좋아하시고 이제는 조사료 일거리를 몰아서 주실 정도”라고 말했다.

이효휘 씨가 정착 초기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언어’였다. 남편과는 중국어와 영어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었지만, 한국어가 서툴다보니 일상생활이나 농사일을 할 때 힘든 점이 있었다. 또 서툰 한국어로 인해 아이들의 교육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노심초사했다는 것이 이효휘 씨의 설명이다.

이효휘 씨는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기 위해 지역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오랜 기간 한글 초·중·고급반 수업을 들었다. 그 결과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하고, 아이들의 숙제도 문제없이 도와줄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그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데 있어 정부의 다문화 여성농업인을 위한 정책도 도움이 됐다. 특히 출산 시 2주 동안 도우미를 보내주는 ‘출산 도우미’ 사업과 아이들의 숙제와 책읽기 지도 등을 도와주는 ‘방문지도사’ 사업은 힘든 농사일에도 불구하고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좋은 정책이었다는 것이 이효휘 씨의 평가다.

정부의 다문화 여성농업인 관련 지원 정책과 관련해 아쉬운 점도 있었다. 현재 다문화 여성농업인의 한국 생활 정착을 도와주는 좋은 정책이 여러 개 있지만, 홍보가 부족한 까닭에 정작 도움이 필요한 다문화 여성농업인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지역에서 다문화 여성농업인 관련 정책 시행 시 이를 견제할 수 있는 기구도 부족한 점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이와 관련 이효휘 씨는 “정부에서 다문화 여성농업인의 한국 생활 연착륙을 위해 다양하고 좋은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홍보나 정보 공유가 잘 되지 않아 아쉽다”면서 “정부가 좀 더 정책 홍보와 정보를 공유해 많은 다문화 여성농업인들이 혜택을 받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효휘 씨는 향후 계획으로 쌀농사와 조사료 판매 등을 통한 연매출 1억원 달성을 꼽았다. 지금까지 남편과 함께 논을 넓히고 트랙터를 하나 둘 구매해 농사 기반을 다졌다면, 이제는 기반을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게 이효휘 씨의 목표다. 이와 함께 인구가 줄고 고령화된 농촌 지역에서 농업 종사자들이 보다 편하게 농사일을 할 수 있도록 남편과 함께 자동화기계를 개발해 저렴한 가격에 보급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다.

이와 관련 이효휘 씨는 “요즘 농촌인구가 줄고 고령화돼 일할 사람이 부족해 아쉽다”면서 “남편이 기계를 개발하는데 관심과 재능이 있는데 함께 노동을 최소화할 수 있는 농기계를 많이 개발하고, 또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농사일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기여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착하고 있는 다문화 여성농업인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이효휘 씨는 “누구나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접하면 낯설고 힘들기 마련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면서 “특히 언어부터 완벽하게 체득해야 농사일이나 자녀 교육도 잘 할 수 있으니 본인도 노력하고, 남편도 옆에서 많이 도와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다문화가족 농촌정착지원과정’ 교육에서 부모와 자녀가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도농협동연수원/다문화가족 농촌정착지원과정교육
‘3대가 함께’…딱딱한 교육 벗어나 놀이처럼

관련 지원법·금융 교육은 물론
타국가 문화 익히는 체험교육도
심리상담으로 가족관계 돈독히
연간 1000명 교육 ‘만족도 높아’


연간 1000명, 10년간 1만명. 농협중앙회 도농협동연수원에서 다문화가족 농촌정착지원과정 교육을 받은 이들의 숫자다.

농협중앙회 도농협동연수원은 지난 2009년부터 농촌 다문화가족의 안정 도모 및 농업·농촌 구성원으로서의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교육을 위탁받아 ‘다문화가족 농촌정착지원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은 농촌지역 다문화가족과 지역주민 등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현장과정(1박2일) △심화과정(2박3일) △청소년캠프(2박3일) 총 3가지로 구성돼 있다.

가장 핵심인 심화과정에서는 다문화 여성대학 교육생이나 결혼이민여성 기초농업 교육생 및 수료자, 이민여성 1:1 맞춤농업 교육생 및 수료자를 대상으로 농업·농촌의 가치 이해와 다문화가족 구성원 간 갈등해소, 문화체험을 진행한다. 

지난 10일 농협대학교 내에 위치한 도농협동연수원에서 열린 심화과정 12기 교육을 찾았을 때에는 기존의 다른 교육과 분위기가 달랐다. 다문화 여성농업인뿐만 아니라 자식과 시부모까지 3대가 참여해 딱딱한 교육보다는 ‘놀이’에 가까운 교육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이번 교육에서는 다문화 여성농업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다문화가족 관련 지원법과 한국의 농업·농촌 이해, 금융 등의 간단한 교육만 이뤄졌다. 이후에는 온가족이 참여한 작은 체육대회와 여러 나라의 문화를 익히는 체험식 교육이 진행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심리 상담을 통한 ‘가족관계 향상 및 회복 프로그램’이었다. 그간 바쁜 농사일로 인해 가족 간 대화 부족으로 발생한 오해와 불만을 심리 상담을 통해 해소하는 프로그램인 까닭에 참가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고, 교육 만족도도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서울 내 유명 관광지인 국립중앙박물관과 롯데월드 스카이타워 등을 함께 구경하며 가족 간 결속을 다지는 시간도 마련됐다.

교육에 참여한 코사카 미유끼 씨는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갖게 해줘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며 “주변의 다문화 여성농업인들도 꼭 연수에 다녀왔으면 좋겠다”라고 후기를 밝혔다.

이와 관련 교육을 담당하는 박유경 도농협동연수원 교수는 “딱딱한 교육보다는 가족의 연대가 더 튼튼해질 수 있는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연수를 구성한 것이 특징”이라며 “농촌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족이 연수를 통해 더욱 건강한 가족을 이루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미니인터뷰/권갑하 도농협동연수원장
“2박3일 생활하며 오해와 갈등 해소, 치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가족 간 화목을 이뤄나갈 때 행복한 가정은 물론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권갑하 도농협동연수원장은 ‘다문화가족 농촌정착지원과정’의 가장 큰 목적으로 다문화가족의 화합을 꼽았다. 이 같은 이유에서 도농협동연수원의 ‘다문화가족 농촌정착지원과정’에는 자녀와 부부, 조부모 등 3대가 함께 입교해 2박3일 동안 함께 생활하며 교육을 받는다. 교육 역시 딱딱한 주입식 강의 보다는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이해하고, 오해와 갈등을 해소하며 치유하는 게 목표라는 것이 권갑하 원장의 설명이다.

권갑하 원장은 “연수라고 해서 가르치려 해선 안 된다”라며 “연수에 참여한 다문화 가족이 같이 호흡하고 어울리는 과정에서 스스로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수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세족식’을 꼽았다. 시어머니가 결혼이민여성의 발을 씻어주는 프로그램인데, 씻어주는 과정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서로 부둥켜안고 울며 가족 간 갈등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다는 게 권갑하 원장의 설명이다.

권갑하 원장은 앞으로도 ‘다문화가족 농촌정착지원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해 다문화가족이 농촌에서 잘 적응하고 뿌리내릴 수 있도록 일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권갑하 원장은 “기존의 다문화가족이 영농과 농촌 생활의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새로 농촌에 정착하는 다문화가족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연수의 질을 높이는데 매진하겠다”라고 말했다.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농림축산식품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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