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농지원부 없이 영농계획서만 제출 불구
여전히 조합원…대의원·이감사 맡기도
농축협 ‘무자격 조합원’ 정비 서둘러야


내년 3월이면 다시 농협 조합장 선거가 돌아온다. 농협에서는 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관리 요청을 하는 등 실무적인 준비는 이미 본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단순한 실무는 챙길지 모르지만 정말 필요한 점검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얼마 전 한 농민을 만났다. 농업경영인군연합회장을 지내고 농민회에서도 활동한 농민인데, S농협의 조합원 관련 자료를 한 무더기 가지고 왔다. 농협 조합원 가운데 상당수가 농사를 짓지 않고 있다는 증빙 서류였다.

지난번 조합장 선거가 끝난 후 농협법 상 조합원이 아닌 자들이 투표를 해서 선거결과가 뒤바뀌었다며 수 십 건의 소송이 진행되었다. 실제 한 축협에서는 법원에서 40%가 조합원 자격이 없다고 판정해 주기도 했다. 농민조합원들의 축제가 되어야 할 조합장 선거에 무자격조합원이 얽히면서 법정까지 문제를 끌고 가는 사태가 전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농식품부와 농협중앙회는 당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 조합제도개선 TF를 운영하여 무자격 조합원의 정비를 철저하게 하기로 하였고, 중앙회는 지속적으로 일선의 농축협에 독려하고 있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정비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무자격조합원 문제로 농협의 운영민주화에 금이 가는 일은 없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그 농민이 들고 온 자료를 보니, 내가 너무 순진하고 안일했구나 자책하게 되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백명의 조합원들이 농지원부도 없어, “영농계획서” 달랑 1장짜리를 제출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심지어 2~3년 전에도 영농계획서만 제출하고 작년에도 영농계획서만 제출했는데도 여전히 조합원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런 농민들 중에 대의원도 있고, 이감사도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농협중앙회는 조합원 정비 관련 문서에서 영농계획서를 인정하면 안된다고 명토를 박아두고, 이런 경우에는 정비 대상이라고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일선 농축협에서는 중앙회의 공문마저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 백 명의 부실 무자격 조합원이 최소 3년 이상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농협법을 지켜야 할 조합장과 직원들이 불법 행위를 조직적으로 자행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문제에 대해 농협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없어 농식품부에 민원을 제기하니 농협중앙회로 이첩하고, 법적 소송을 걸어보니 심지어 법원에서도 판결을 미루고 있다며 안타까움과 분노를 토로하는 그 농민 앞에서 어떻게 해 줄 말이 없었다. 다른 농축협에서는 문제제기하는 농민조합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하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웃기면서도 슬픈 위로나 할 수 밖에 없었다.

4년전 선거에 비해 도시화는 더 진행되었고, 조합원들의 고령화는 더 심각해 졌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은 농협의 정조합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농협 정체성의 첫 걸음인데, 이런 기본조차 4년 전 선거에서 수십건의 선거 소송으로 망신을 당해 놓고, 아직도 제대로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농협의 정체성을 따지는 것도 이제 별 소용이 없어 보인다.

이번 국감에서 드러났듯이 농협에 대한 외부의 비판은 더 거세어 지고 있다. 이전에는 농협의 주인인 농민들이 모여 농협의 개혁을 주장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비판도 높아지고 있다. 농협중앙회장은 “국민과 함께 하는 국민농협”을 주창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농민들은 농협에서 더 멀어지고, 기대를 접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외부의 비판이 점차 거세어질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그렇다면 농협 내부에서 자체적인 개혁을 통해 약점을 줄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외부에서 들이대는 개혁의 칼날에 고스란히 몸을 맡겨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중앙회가 해결하겠다고 공언한 무자격조합원 정비도 현장에서는 허점투성이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자체적인 개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무더기 소송을 다시금 자초하지 않으려면 남은 2~3개월의 기간 동안 무자격 조합원 정비부터 철저하게 감독하고 단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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