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 친환경농산물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 위원장

급식·군납 통해 최소한의 소비 유지하되
소비자 눈높이 맞는 상품 만들어야
국산 ‘감자칩’ 개발사례 벤치마킹 필요


들판이 황금색으로 바뀌어 간다. 풍년이면 그저 좋았던 어릴 적 기억은 사라지고 언제부턴가 수확기가 되면 걱정부터 앞선다. 벼 수확기에 쌀값도 걱정이지만 재고가 쌓여 힘들어하는 밀도 걱정이다. 연간 식용으로만 200만톤 정도를 수입하는데, 2만톤도 되지 않는 재고 때문에 농민들의 가슴은 타들어 간다. 밀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어떤 작물도 수입과 가격에 자유로울 수 없어 농부로서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정부가 먼저 나서서 ‘급식이나 군납 등에 우리밀을 우선하고, 일본처럼 수입밀 관세로 생산자를 지원하여 수입밀과 자국밀의 가격 차이를 없애서 자급률이 일정수준으로 유지되게 하겠다’ 는 등 선제적 대책을 먼저 발표할 수는 없는지 원망도 해본다. 밀의 소비는 대부분 빵이나 면이다. 국내산 밀의 소비 촉진을 위해서는 빵이든, 면이든 소비주력의 상품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급식이나 군납 등을 통해 최소한의 기초 소비와 생산을 유지시키고 일반 소비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세워야 한다.

8~9년 전에 100% 우리밀 빵공장과 제과점 사업을 시작한 적이 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니 우리밀의 특성에 맞는 조리, 발효, 레시피 등 체계적인 자료들이 없었고, 우리밀로 빵을 만든 경험 있는 제빵사도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제빵 기술과 레시피는 수입밀로 균질하게 제분된 밀가루와 그 특성을 중심으로 된 첨가물, 발효제 등의 보조 원료가 개발돼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처음 식빵 하나부터 시작해서, 글루텐이 부족해서 만들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일반 제과점에서 볼 수 있는 어지간한 품목들까지 80여 종을 만드는데 3년 정도 걸렸다. 속이 편하면서도 맛있고 가격도 만족한다는 등 전반적으로 고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기에 큰 희망을 보았지만 그 후 여러 가지 이유로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겪었다.

빵은 밥과 다르다. 빵은 밀가루의 품위, 발효미생물, 온도 등 여러 상황에 따라 살아있는 생물처럼 맛이나 품질이 달라진다. 주원료인 밀가루와 보조원료들이 균질화되지 않으면 결국 경험있는 제빵사가 순간, 순간의 노하우로 해결해나가야 한다.

우리밀을 꼭 선택하는 소비자도 있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는 가깝고, 맛있고, 쫄깃하고, 저렴한 상품을 찾는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의 빵맛을 본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비추어 보면 단순히 우리밀이라는 이유만으로 먹히기는 어렵다.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우리밀 원료의 상품들도 저기 어느 포지션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목표 상품의 특성에 맞는 균질화된 원료, 국내산 보조원료, 발효와 조리법 등 공정의 단순·간편·효율화, 그리고 시장의 특성을 세밀하게 분석해 최소 3년 정도를 목표로 사업화를 해야 한다. 모 대기업이 실패했으니 안 된다는 생각은 동의하기 어렵다.

글루텐이 없어 면으로 가공이 힘들다는 메밀도 100%면을 만드는 제분기계도 있고, 국산 쌀에 전분이나 글루텐을 섞지 않고도 쫄깃한 면발을 만들어 상품화되어 나온 것도 있다. 안된다는 이유만 찾으려 들면 한이 없을 것이다. 생산원가를 낮출 수 있는 방법도 지속적으로 연구 노력해야 하지만, 수입밀 전부를 우리밀로 바꿀 욕심이 아니라면, 내 경험으로는 가격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사례로 감자칩 사례를 들고 싶다. 2010년 이전의 생 감자칩 시장은 대부분의 원료를 수입 감자로 생산하던 감자칩(지금은 거의 국내재배)이 독주를 했다. 연중 국내산 공급이 가능한 수미감자를 칩으로 개발하던 모 회사는 전분보다 당분의 함량이 높아 칩으로 튀겨지는 온도에서 시커멓게 변하고, 저장 후에도 전분과 당분이 균질한 원료공급 등의 문제들을 해결 해야만 했다. 결국 당분이 타기 직전의 온도에서도 튀겨지는 ‘진공 프라이어’라는 고가의 장비를 도입했고, 저온 보관 후 전분과 당분을 환원시키는 환원당 기술개발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출시 5년 만에 한때 국내 스낵시장 1위를 차지했다. 연간 약 1만2000톤의 감자를 수매하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산지 가격유지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목표 시장을 정확히 설정하고, 상품과 시장에 맞는 기술과 장비 그리고 원료의 수급 계획 등을 좀 더 체계적으로 세워 민·관이 함께 한다면, 밀뿐만 아니라 주력의 식용 곡물들만이라도 좀 더 높은 자급률을 유지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