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영 한신대 교수

남북정상 만나 ‘비핵화’ 교착국면 타개
‘실질적 종전선언’ 역사적 합의 끌어내
이제 미국측이 ‘상응조치’ 내놓을 차례


반갑고 훌륭하고 멋지다. 남북 정상이 만나 교착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러쿵 저러쿵, 합의문이 있니 없니 예상도 많았지만 거의 다 틀렸다. 그렇다. 틀려서 더 고맙다.
그래서 이번 ‘남북 평양공동선언문’을 보자. 첫째는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합의했다. 무슨 말인가. 전쟁 안한다는 말 아닌가. 둘째는 ‘민족경제’를 발전시키기로 했다. 그래서 철로를 잇고 경제공동특구와 관광특구를 조성하기로 했다. 셋째는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인도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넷째는 다양한 협력과 교류인데 주로 문화예술분야 교류를 증진시키기로 했다. 이중엔 3.1운동 100주년을 남북이 공동으로 기념하기로 했단다.

다섯째는 비핵화에 관한 거다. 그래서인지 특별한 관심이 여기에 몰린다. 합의내용은 이렇다. 동창리 시설을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내용 자체는 새롭지 않다. 단지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이 새롭다. 그 다음 북한은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핵시설 영구폐기 의사를 밝혔다. 아마 이 조항이 이 번 합의에 미국이 가장 주목할 부분이라고 본다. 여섯째 합의는 김정은의 서울 방문이다.

다른 논의에 앞서 당시 6.12 북미정상 합의문을 상기해 두자. 당시 합의 내용은 4가지였다. ①새로운 조미 관계 수립, ②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 체제 (peace regime) 구축, ③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④ 미군 전쟁포로 유해 즉각 송환. ④를 제외하면 당시 합의의 구도는 이렇다. 북측이 요구한 ②항 평화체제와 미측이 요구한 ③항 비핵화가 실행되어 ①항 곧 새로운 북미관계로 간다는 의미다.

합의문만 보자면 북측이 요구한 평화체제와 미측이 요구한 비핵화는 등가적으로 그리고 ‘말대 말, 행동 대 행동’원칙에 따라 동시적으로 이행되어야 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북측이 취한 실질적 행동에 비해 미측의 행동은 매우 미흡하거나 사실상 하나 마나한 거라는 것이 북측의 불만이었고 이것이 북미회담 교착의 주된 원인이었다.

그래서 다시 만난 남북정상회담이 이 교착국면을 돌파할 혈로가 될 것인지가 우리 모두의 관심이었음에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보자. 이번 합의문에 명시되어 있는 남북한 군사적 적대관계 제거, 이산가족문제의 근본적 해결, 비정치적 남북한 교류협력, 김정은 방남 등은 특히나 미국의 간섭 없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문제다.

반면 이른바 ‘민족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는 다르다. 예컨대 남북철도를 잇기 위한 그 철로 자체는 유엔 제재 대상 품목이라 이것을 북측에 제공하는 것은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북한산 명태나 송이버섯마저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조건에서 민족경제 운운은 참으로 섣부른 생각이다. 유엔제재와 그 보다 훨씬 독한 미국의 대북제재는 여전히 꿈적도 안하는 상태에서 말이다.

그래서 이 역사적 합의에서 나의 시선을 끈 단어는 단연 ‘상응조치’였다. 그렇다. 이번 남북합의에서 북측은 이미 밝힌 바 있지만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과 영변 핵시설의 폐쇄를 언급했다. 동창리는 미 본토를 위협하는 ICBM을, 영변은 그 탄두에 들어가는 핵원료 곧 농축우라늄이 나오는 곳이다. 그래서 북으로서는 ICBM과 핵탄두를 내놓겠다는 말이다. 사실상의 비핵화다. 하지만 ‘상응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평양합의의 핵심이다. 아니 이는 6.12합의의 내용이었다.

북으로서는 비핵화의 실질적 핵심에 해당되는 것을 내 놓을 테니, 미국이 ‘상응조치’를 하라는 것이다. 우리 측에서는 저 위에서 본 평양합의문이 아니라 별도의 청와대 성명을 통해 이 합의가 ‘실질적 종전선언’이라고 밝혔다.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곧바로 종전선언이라고는 밝히지 않았지만 ‘실질적’인 거라는 우회로를 택한 셈이다. 이 말은 달리 말해 미측이 ‘상응조치’를 취하고 북측과 사실상의 ‘종전’을 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모든 것은 미측의 ‘상응조치’에 달려있다. 과연 그 내용은 무엇일까. 선택은 어떤가, 이제 온전히 트럼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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