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차산업은 가공·직판·외식·체험·숙박 등 다양한 사업을 융복합해 추진해야 하는 사업인 만큼 관련된 규제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건축법’ ‘식품위생법’ ‘공중위생관리법’ ‘관광진흥법’ 등 적용받는 법률도 많고, 또 농촌지역의 특성상 토지용도에 따른 행위제한으로 사업 다각화에 걸림돌이 많다는 현장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농식품부가 지난해 ‘농촌융복합시설제도’를 도입, 생산관리지역 등에서는 음식점·숙박시설 등의 설치가 가능하도록 입지규제를 완화했지만 현장의 불만은 여전하다. 지역별로 농촌융복합시설이 생산관리지역보다 농림지역에 조성된 곳이 많아 법이 개정되었다 하더라도 규제 완화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경북도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촌산업활성화현장포럼이 공동으로 지난 13일 경북 의성에서 개최한 제65회 농촌산업 활성화현장포럼에서도 이같은 지적이 나왔다. 이번 포럼에서는 영주의 미소머금고, 의성의 한국애플리즈, 청도의 네이처팜 등 경북지역내 우수 6차산업 사례발표와 함께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박찬설 미소머금고 대표·영주
상품성 떨어지는 하위 20%물량
‘고구마빵’으로 고부가 창출
음식점 허용 등 규제완화 절실
2000년 영주로 귀농해 고구마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 1만평으로 시작, 현재 계약재배(7만~8만평)까지 합해 약 15만평에서 연간 800~1000톤의 고구마를 수확하고 있다. 고구마는 저장 중 감량과 부패가 심해 수확 후 관리가 매우 중요한 작물이다. 귀농 전 고압가스 냉동기사로 13년간 농산물 저온저장고를 관리해 왔던 노하우를 살려 최대 800톤 규모의 저온창고를 신축, 장기 보관이 가능해졌다.
문제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하위 20% 물량. 시장에 출하하면 오히려 마이너스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고구마빵’이었다. 2004년부터 시제품 개발에 착수, 2007년 말 국내 최초로 ‘고구마 빵’ 12종을 만들게 됐다. 이후 기술혁신 중소기업(INNO-BIZ) 인증, HACCP 인증 등을 획득하고 2015년엔 체험관도 오픈, 고구마빵·케이크·쿠키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두 가지 실수=처음엔 제품을 만들기만 하면 다 팔릴 줄 알았다. 그런데 만들고 보니 판매가 너무 어려웠다. 처음 가격 결정을 잘못한 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 중간 유통마진을 없애 소비자에게 저렴하게 팔겠다는 생각에 너무 낮게 책정한 것이다. 이 때문에 유통업체를 통한 판로 개척에 지금도 애를 먹고 있다. 또 하나는 제조공장과 냉동창고, 매장 등 부속시설을 건축하면서 효율적인 공간 배치를 미리 생각하지 못한 점이다. 머릿속에 작업 동선에 대한 고려만 있었다. 건물을 따로 분리했다면 하지 않아도 됐을 소방설비에 1억원 가까이 들었다. 매장 규모가 작은 것도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지금 고치려면 7억~8억 가까이가 든다. 그러니 처음부터 신중해야 한다. 새로 사업을 시작할 때, 이런 부분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이 필요하다.
▲향후 과제=현재 농림지역은 농산물 제조시설에 대한 건축은 허용되지만, 판매장이나 휴게음식점은 허가가 나지 않고 있다. 지금 있는 매장에서는 완제품만 팔 수 있는데, 즉석에서 빵을 굽거나 고구마라떼·아이스크림 등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수익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농지는 물론 보호해야 하지만 기왕에 공장이나 체험장 등 6차산업 관련 제조시설 허가가 난 지역의 경우에서는 음식점이나 숙박체험 시설을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줄 것을 건의한다.
■한임섭 한국애플리즈 대표·의성
국내 최초 사과와인 전문 양조장
황토옹기독 사용해 제품 차별화
와인만들기 체험 통해 수출 견인
대한민국 대표 사과 주산지인 의성에 자리잡은 ㈜한국애플리즈는 사과와인 전문 양조장이다. 1996년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주류제조면허를 취득해 97년 사과와인제조시설을 완비, 99년 국내 최초의 사과와인 ‘한스오차드 애플와인’을 첫 출시했다. 소주타입의 와인에 사과, 오렌지, 생강, 복숭아 등의 농축액을 더한 ‘The 찾을수록’, 탄산이 가미된 국내 최초 정통 사과사이다 ‘애피소드’ 등도 인기제품. 2014~16년 국내에서 과일향 소주가 인기를 끌었을 당시엔, 하루 8만6000병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24시간 풀가동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황토옹기독으로 차별화=유럽의 오크통 맛은 떫은맛, 신맛, 쓴맛이 섞여 우리 입맛에 잘 맞지 않다. 그래서 법인을 설립할 때부터 지하 숙성실을 만들고 380리터 짜리 맞춤형으로 만든 황토 옹기독을 사용해 차별화했다. 옹기독에서 와인을 숙성하면 숙성효과가 좋을 뿐만 아니라 잡맛이 없어진다.
▲나만의 와인 만들기 체험과 수출=한국애플리즈 제품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가 좋다. 실제 12개나라 100여개 도시에 제품을 수출 중이다. 최근 태국의 테스코편의점 1500개 매장, 중국 RT마트 430개 매장도 뚫었다. 무엇보다 초기에 장사가 잘 안돼서 고민 끝에 2005년 나만의 와인 만들기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했던 게 주효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와인을 만들어보는 체험으로 사과 따기부터 와인을 병에 담아 코르크 마개로 닫은 후 밀봉해 자신의 얼굴 사진이 들어간 라벨을 붙이는 작업까지 이어진다.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서 다녀간 관광객들이 현지에 돌아가면 우리 와인을 많이 찾는다. 최근 과일 소주 ‘붐’이 태국, 시드니, 독일 등으로 옮겨갔는데, 그 흐름을 재빠르게 따라가 시장을 개척, 재미를 보고 있다.
어릴 적 방학 때 고향집에 오면 아버지가 똥장군을 지게 했다. 이게 가득 담지 않고 덜 담게 되면 오히려 건들건들 거려서 옷을 다 버리기 십상이다. 사업도 어설프게 시작하면 큰 낭패를 당한다. 똥장군 지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 늘 최선을 다하겠다.
■예정수 네이처팜 대표·청도
자체 연구원 만들어 알앤디 집중
고비용 시설 무리한 투자 안해
감 가공품 다양화로 농가와 상생
㈜네이처팜은 감의 고부가가치화를 목표로 지난 2010년 6월 설립됐다. 청도 반시는 씨가 없어 주로 홍시로 먹는데 10월 한 달 동안 집중 출하돼 저장이 어렵고 계절적 실업이 반복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에 다양한 사계절 상품을 개발하고 소비 계층을 확대, 미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반건시, 감말랭이, 아이스홍시를 비롯해 감 껍질을 활용한 천연 당시럽, 탄닌, 유기질 비료와 감식초, 감잎 추출물 등의 상품화에 성공했다.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이같은 제품 다양화를 위해 중요한 건 연구개발 투자다. 귀농 전 천연물가공회사의 연구소장으로 오랫동안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2013년 자체 부설연구소를 만들었다. 식품공학전공 7명, 응용미생물전공 1명을 두고 있다. 대신 고비용 장치시설에 대한 무리한 투자는 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다. 원산지 사업, 노동집약적인 사업만 청도에서 하고 나머지는 전부 다 과감하게 협력업체를 찾아 아웃소싱했다. 2009년 3300만원으로 시작한 매출은 고속성장을 이어가 지난해 67억원까지 늘었다.
▲지역농가와 상생=회사 조직도를 보면 가장 큰 특징은 농가지원팀이 있다는 점이다. 농가 교육에서부터 원료 매입, 품목협의회 운영 등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580 농가에서 1550톤, 금액으로는 17억500만원 어치의 원료감을 수매했다. 감말랭이 매입량은 350톤, 42억원에 달한다. 이외에도 반건시, 풋감, 감껍질 등을 합하면 총 720농가, 65억원 규모다. 생산자 입장에서 감 전용 채반과 대차를 개발해 생산성 향상과 함께 불량률 감소에도 일조했다. 올해부터는 BtoB 사업에 올인할 생각이다. 기능성 소재 및 식품 원료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핵심이다. 올해 매출 100억, 수출 100만불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농업이 너무 어렵다지만 발상의 전환을 하면 충분히 고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종합토론
“소규모 6차농가 정책 소외 없게해야”
재인증 심사시 매출기준 불합리
고용효과 평가도 현실과 안맞아
근로시간 52시간 탄력적용 절실
이날 종합 토론은 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원의 사회로 진행됐다. 지역의 6차산업 인증업체들은 현장에서 겪고 있는 애로점들을 쏟아내고, 포럼에서 제기된 의견들이 중앙정부에까지 전달돼 실질적인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주요 발언내용을 정리했다.
▲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원=세 분 다 귀농하셔서 도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6차산업 쪽에서 남다른 차별성을 갖고 계신 것 같다. 지역에 있는 6차산업체가 대기업과의 조인없이 8만병 정도의 생산능력을 가지고 시장에서 독자적인 마케팅 파워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예 대표님 같은 경우도 본인이 알앤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문 연구진들과 다양한 아이템들을 만들고 계신 점이 인상적이다. 6차산업은 농산물을 기본 원료로 하는 것이라서 신제품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경환 한국농촌경제복지원 원장=세 업체 모두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와 있는 것 같다. 특히 네이처팜이나 한국애플리즈 같은 경우 수출에서도 큰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6차산업은 기본적으로는 1차산업에 종사하는 농가들에게 도움이 되고, 서울로 가는 돈이 지역에 머물도록 하는 게 목표다. 입지규제 문제는 다른 지역에서도 계속 제기되고 있는 문제로 알고 있다. 규제 개혁의 경우 한꺼번에 해결되기는 어렵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지속적으로 건의해 현장 요구가 수용되었으면 좋겠다.
▲유재상 경북도 농업정책과 6차산업 지원팀장=그동안 6차산업 정책이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반을 조성하는데 집중했다면, 민선 7기에는 그 기초 체력을 바탕으로 판매에 주력해보고자 한다. 이는 농업 현장의 가장 절실한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농민이 생산하면 다 팔아준다는 개념으로 접근할 계획이다. 농식품부에서 6차산업지구 조성사업을 추진 중인데, 사실 6차산업은 지역적으로 집단화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보다는 인증 경영체 단위로 접근,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해 농식품부와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류재천 토마토밥상 대표(고령)=고령에서 유기농 딸기와 토마토를 재배하면서 잼가공을 하고 있다. 연간 1억 정도 매출을 올리는데, 이 중 가공품 매출은 1~2000만원 정도 밖에 안된다. 6차산업 농가의 40%가 1차 산업 위주고, 1억 미만이 30~40%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지원사업에서 이런 1차 중심의 소규모 6차산업 농가는 소외되고 있다. 일괄적으로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소규모 농가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좀 더 융통성 있게 정책 추진을 해주기 바란다.
▲박진환 WE와이너리 대표(영천)=최근 6차인증자 갱신을 신청해서 심사를 완료했다. 그런데 연 매출이 평균 농가소득에 해당하는 3700만원을 넘기도록 해놓고, 갑자기 사업자가 2~3개인 경우 한 개의 사업자 매출만 인정하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저 같은 경우 체험관광까지 연계하다보니 식당 운영이 필요해 별도의 사업자를 냈는데, 식당 매출은 인정을 안해준다는 거다. 저는 다행히 규정을 충족했지만, 지역에 이 조항 때문에 탈락한 농가들이 있다. 사전 공지도 없이 인증 한 달 전에 이런 조항을 들이미는 건 말이 안되는 처사다. 또 국가정책으로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면서 평가기준에 고용효과가 들어간다. 한 사람을 쓸 경우 최소 2000만원 이상의 인건비가 들어가는데,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현장 이야기를 듣고 개선대책을 찾아달라.
▲예정수 대표=FTA 되고 나서는 농산물도 글로벌 경쟁이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국제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공장의 경우 인력이 40명 정도다. 사람들을 다 데리고 있을 필요는 없는데 가을·겨울에는 100명 정도가 있어야 하니까 데리고 있다. 감 가공할 때는 3개월 정도 밤을 새서 일해야 할 정도로 인력이 달린다. 그런데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묶으면 농식품가공업체는 죽으라는 거랑 똑같다. 농업부문은 계절적 실업이 많은 곳이다. 이런 부분을 좀 고려해서 탄력적으로 적용했으면 좋겠다.
▲나영강 경북농촌융복합산업지원센터장=양대 메이커가 독과점하고 있는 제빵시장에서 지역의 농가들을 아우르면서 살아남은 미소머금고나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국애플리즈, 홍시에서 벗어나 다양한 감 가공품을 생산하고 있는 네이처팜까지 다들 대단하다. 6차산업 하시는 분들이 매우 어렵지만, 어떻게 지역 농가들을 조직화하고 참여형으로 만드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조직하고 연대하는 부분에 더 많이 신경을 써서 지역참여형 6차산업을 많이 만들고 판로 문제에 대한 대안도 찾아볼 계획이다.
▲김용렬 농경연 선임연구원·포럼회장=오늘 나온 이야기가 농식품부에 바로 전달되도록 조치하겠다. 주 52시간 문제는 계절별로 탄력 적용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규제 개혁 과제를 모으고 있는 과정이다. 시간을 두고 계속 말씀해 달라. 합리적인 대책을 찾도록 노력하겠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