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원 관내 주력품종인 오대벼를 수확하고 있는 장면. 이 논에서 벼를 재배하고 있다는 농민 A씨는 40kg를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8000원가량 오른 조곡매입가격에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중생종을 중심으로 2018년산 벼 수확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농협의 벼 매입가격 결정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여주지역 농민들이 실제 소매점에서 판매되는 가격을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도정율과 가공비용, 손익분기점 출하가격 등을 감안해 적정 수매가를 농협 측에 제시하면서 조생종인 히도메보레는 7만4000원, 주력인 추청은 7만원에 매입가격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에 앞서 6만5000원에 매입가격을 결정했던 이천지역농민들은 매입가격 재설정을 요구하고 나섰고, 제일 먼저 매입가격을 정한 철원지역에서도 실제 소매로 판매되는 가격 대비 농협의 매입가격이 낮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매입가격이 낮은 충청권 등에서도 6만원대 이상에서 매입가격 논의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매입가격 재결정 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매입가격 결정을 두고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통계청의 벼 재배면적 조사결과치 대로하면 올해도 신곡수요량 대비 생산량이 과잉될 것이라는 점에서 수확기 산지쌀값이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 농민들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절반 가까이 벼 베기 마무리
계약재배분 1kg당 1550원 확정
“생산비 못미친다” 불만 여전


▲철원지역=지난 14일. 오대벼 산지인 철원지역의 들녘은 절반 가까이 벼 베기가 마무리된 상황을 나타내고 있었다. 들녘에서 벼를 베고 있는 농민 A씨는 올해 철원지역에서 정해진 매입가격에 불만이 높았다. 전년에 비해서는 상당 폭 오른 가격이긴 하지만 실제 소매단계에서 판매되고 있는 가격과 비교할 경우 너무 낮게 매입가격이 책정됐다는 것이다. 철원지역은 지난해 5만4000원이던 계약재배 분 벼 매입가격을 올해 6만2000원으로 올렸다.

A씨는 “올해 계약재배물량에 대해서는 kg당 1550원, 수탁의 경우 1350원으로 가격을 정했는데, 실제 신곡을 도정해 팔리고 있는 쌀값은 20kg을 기준으로 6만4000원”이라면서 “이 같은 판매가격이면 현재보다 매입가격을 훨씬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정수율을 68%로 낮춰 잡을 경우라도 쌀 20kg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벼 30kg정도가 필요한데, kg당 1550원에 매입하기로 했으니 원료곡 가격은 4만6500원가량이 되는 셈이라는 것이다. 이를 기준으로 20kg 기준 가공·판관비와 소매점 마진 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보다 매입가격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가미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오대벼인데, 상대적으로 저가미 시장을 형성했던 남부지역의 매입가격이 6만원대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소식이어서 논안이 예상된다.

A씨는 또 “이건 계약재배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고, 수탁의 경우에는 1350원에 가격이 결정됐는데, 수탁물량도 농협이 도정해 판매를 하는 경우도 있고, 이 경우에는 수익이 더 많이 나게 된다”면서 “2017년산의 경우 조곡 물량이 부족하면서 수탁한 물량을 도정해 판매하면서 이익을 봤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농민 B씨는 “1550원이라고 해봐야 쌀값이 폭락하기 전인 4~5년 전 매입가격이고, 더 나가서 이야기 하면 20~30년전 오대미 가격”이라면서 “20~30년전과 비교하면 비료값은 10배가량, 농약을 비롯해 수확비 등을 감안하면 생산비가 얼마나 올랐는지 감을 잡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 7만원대 매입가격을 결정한 여주시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 매입가격을 반영해 납품가격을 재설정하면서 포장재도 바꾸고 이미지 변신 중이다.

여주/시중 판매가 기반 쌀값 역추적…40kg 7만원대 관철

도정률·가공비율 등 종합분석
구체적 자료 내놓자 농협 수용
충청·호남권까지 영향 미칠 듯


▲여주지역=벼 매입가격 논의에 불을 지핀 곳은 여주지역이다. 지난해 주력품종인 추청 매입가격을 40kg을 기준으로 6만1000원으로 정했다가 올해는 7만원으로 높이면서 인근 이천지역은 물론, 상대적으로 매입가격이 낮은 충청권·호남권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여주지역 벼 매입가 결정에는 농민들이 소비지 쌀값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도정율과 가공비용, 손익분기점 출하가격 및 농협출하가격 등을 감안해 수매가를 역추적 한 자료가 7만원대로 매입가격을 확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다른 지역에 미치는 파장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여주지역에서 벼 농사를 짓고 있는 전용중 전농 경기도연맹 사무처장은 “산지쌀값 변동추이와 실제 시중에서 판매되는 여주쌀의 가격, 그리고 도정율과 가공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매입가격 결정과정에서 농협 측에 제시를 했고, 이 자료는 이전 농협 측이 매입가격 결정과정에서 제시했던 양식과 같은 것이었다”면서 “당초 분석에서는 조생종인 히도메보레 같은 경우에는 매입가격을 8만원으로 해도 충분하다는 결론이었고, 추청도 7만5000원까지 가능하다는 게 분석 결과였다”고 말했다.

그는 “여주지역보다 앞서 결정된 철원지역의 경우도 40kg 조곡을 기준으로 6만2000원에 매입가격을 결정했는데 충청 등지에서도 6만1000원에서 6만4000원대에 매입가격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가격 재협상을 진행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여주지역의 경우 벼 매입가격은 품종에 따라 조생종인 히도메보레와 고시히까리는 각각 7만4000원·7만2000원, 중생종인 진상은 7만1000원, 만생종인 추청은 7만원으로 정해졌다. 이들 농민들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신곡 초도물량이라고 할 수 있는 히도메보레는 10kg을 기준으로 3만9266원에 소매판매 될 경우 수매가는 8만원, 주력품종이면서 만생종인 추청의 경우 10kg 소매가격이 3만3613원이면 7만원에 수매해야 한다.

이에 대해 여주시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 관계자는 “매입가 결정과정에서 농민들이 실제 판매되는 가격과 소매가격을 기준으로 도정율과 가공비용, 마진 등을 포함해 분석한 자료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면서 “전반적인 상황에서 ‘향후 생산량이 늘어서 산지쌀값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매입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일어나지도 않은 전망치로 설득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2017년산 공공비축미 공매낙찰가격이 평균 6만원을 넘었고, 산지쌀값 상황 등을 고려해 농민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명분이 없었다”면서 “현재 2018년산은 조곡이 들어오는 데로 도정해 판매되고 있으며, 납품가격도 매입가격을 반영해 결정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취재를 마치며
단순치 않은 쌀 해법은?


본격적인 벼 수확기에 접어들면서 농협과 농민들 간의 벼 매입가격 결정이 9월 농업현장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농협계통의 산지매입가 중 가장 높은 지역에 속하는 여주가 주력 물량이면서 만생종이어서 아직 수확도 시작되지 않은 추청 매입가격을 40kg 조곡 1등급(제현율 83% 이상) 기준 7만원으로 정했고, 상대적으로 매입가격이 낮은 축에 들던 충청지역을 비롯해 이남 지역 벼 매입가격도 6만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고 한다. 주장의 요지는 ‘예상과 달리 올해 벼 재배면적 감소치가 적고, 이에 따라 수요량 대비 생산량이 과잉되면서 향후 산지쌀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농협RPC의 경영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간의 벼 수급대책을 짚어보면 생산량이 많을 경우 정부와 농협중앙회는 매입자금을 더 풀어서 산지농협과 농협RPC 등을 통해 기존보다 더 많은 벼를 사들이도록 했고, 이런 재고량 과다는 산지쌀값을 더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지난해는 달랐다. 국내 주력 품종이라고 할 수 있는 만생종의 수확이 본격화되기 전에 정부가 9월에 공공비축미와 해외공여용 쌀 35만톤에 더해 37만톤을 시장에서 격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산지쌀값은 현재까지 지속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 논의가 필요한 대목은 산지농협의 매입가가 ‘높은 것 아니냐’게 아니라, 올 수확기 ‘어떤 수급대책을 추진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쌀 문제는 단순하지가 않다. 올해 논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쌀고정직불금 수령인원이 78만6000명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만큼 정책대상자가 많고, 정부 정책이 의도대로 현장에 적용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수급을 맞추기도 어렵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기후도 한 몫을 한다.

80kg 쌀 한가마니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최소 24만3000원 가량이라는 분석이 정치권에서도 제기됐다. 지난 5일 기준 통계청이 조사한 산지쌀값은 80kg으로 환산해 17만8272원. 통계청이 산지쌀값을 조사한 지난 2013년 7월 이후 그해 수확기 첫 조사치인 10월 5일자 18만3560원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가격이다. 하지만 생산비와 비교하면 6만5000원가량 낮은 것이고, 산지쌀값 조사치가 'RPC가 벼를 도정해 쌀로 납품하는 가격을 조사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훨씬 더 큰 차이가 난다. 그만큼 저평가 돼 있다는 뜻이다.

그럼 '적자가 나는데 어떻게 사나? 거짓말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나올 법 하다. 철원군 취재 과정에서 전남 함평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한 젊은 농민을 만났다. 자신의 지역보다 한 달 가량 수확기가 빨라 콤바인을 끌고 와 벼 베기 임작업을 한지가 11년째라고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함평에서 철원까지의 거리는 400km가량. 먹고 살기 위해 400km나 떨어진 타지에서 한 달을 보내는 것도 고역이겠지만, 절반에 가까운 농촌 고령화율을 보이는 상황에서 이도 하지 못하는 농민들의 상황은 또 어떨까? 

산지쌀값이 24만원이 되어도 밥 한 공기에 들어가는 쌀 원가는 300원. 지금 내 책상에는 1500원짜리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과 치아건강에 좋다는 1000원짜리 껌 한통, 그리고 스마트폰이 놓여 있다. 스마트폰 요금은 한 달 8만원 정도 나온다. 하루 2600원꼴이다.

이진우 기자 leej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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