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30일 관악구 주민들이 상주시 농민들을 만났다. 대화와 이해를 바탕으로 지역 내 공동체를 넘어 도시와 농촌의 공동체간에 서로 ‘윈윈’하는 길을 찾는다.

2018년 한국. 서울과 수도권은 과밀하다. 실업이 늘고 환경생태와 먹을거리 안전의 위협 속에서 살아간다. 반대로 농촌은 농촌경제 악화와 고령화, 인구감소로 소멸론이 대두된다. 공동체가 해체되고 공적인 가치가 무너지는 것은 도시나 농촌이나 매 한가지다. 서울로 집중되는 성장 전략으론 결국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도시와 농촌이 서로 지탱해줘야 사회도 건강하게 발전한다. 서울시의 사례를 통해 도농상생의 가능성과 방향을 알아본다.


●관악과 상주의 만남

행정 아닌 지역공동체가 주도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와
얼굴있는 생산자 만남 추진

회원제 생활플랫폼 ‘위즐’ 통해
온오프 직거래 장터도 활발
상호신뢰 바탕 ‘윈윈’ 길 찾아


뜨거웠던 지난 여름. 관악구에 사는 주민들이 버스를 대절해 경북 상주의 ‘상주환경농업학교’를 찾았다. 서울시 ‘도시-농촌 상생공동체 사업’의 일환으로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의 만남’을 위해서다.

40여명의 관악구 주민들은 농민들의 안내에 따라 친환경 우렁이 농법의 논을 비롯해 상주 일대의 농사를 두루 탐방하고, 꾸러미사업을 하는 언니네 텃밭 봉강작업장에 이어 친환경 블루베리를 재배하는 대환농장에서 수확 체험도 했다.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로 지은 점심식사, 금방 만들어 나온 뜨끈한 손두부와 막걸리 한 잔, 그리고 블루베리와 햇감자도 한 아름씩 선물 받았다.

참가자들은 “현장에 가 보니 소비자에게 좋은 농산물을 주겠다는 선한 마음으로 열심히 힘들게 생산해주시는 농민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면서 “개방농정으로 인한 농민의 위기, 지방소멸의 위기를 도농상생의 방식으로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도시-농촌상생공동체사업은 판에 박힌 행정주도가 아닌, 지역의 주민공동체들이 스스로 제안해 도시와 농촌의 공동체간 상호 교류하는 방식이다. 관악구에서는 협동조합 관악위즐을 중심으로, 관악사회복지, 관악도시농업네트워크, 관악주민연대 등 4개 단체가 ‘관악지역상생사업단’을 꾸렸다. 상주에서는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을 비롯해 상주친환경농업인협회, 상주공동체환경학교, 상주공동체귀농지원센터가 참여하고 있다. 

조원희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은 “상주는 오래 전부터 민간의 자율적인 노력으로 지역먹거리체계 활성화, 도농교류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고, 로컬푸드를 중심으로 지자체, 마을공동체, 중간조직과 협력해 지역공동체 운동으로 발전해가고 있다”며 “농촌공동체 운동의 지속을 위해서는 도시공동체와 연대가 필수”라며 참여 배경을 설명했다. 관악구와는 그동안 언니네텃밭, 행복중심생협을 통해 교류를 해 왔고, 이번에 협동조합 관악위즐과 뜻을 같이 하게 된 것이다. 마을공동체운동이 탄탄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관악과 상주이기에 가능한 일이고, 직거래를 가능케 하는 위즐 플랫폼의 뒷받침 속에 이뤄지는 일이다.

‘위즐’이란 ‘서로가 위하고 즐겁게 사는 삶’이란 뜻이다. 위즐은 지역공동체경제를 지향하는 회원제 생활플랫폼으로 독점자본이 아닌 생산자와 소비자 상인 모두에게 이익을 주자는 모델이다. 회원이 플랫폼의 운영비를 지불함으로써 유통마진의 거품을 없앤 가격으로 소비하고, 생산자에게도 적정 이윤을 보장하는 방식. 관악과 상주는 이런 도농교류 행사 외에 9월3일~17일 사이 위즐의 온라인 플랫폼과 관악구의 사회적경제 및 마을장터인 ‘꿈시장’ 행사에서 동시에 온오프라인 직거래장터를 열었다. 위즐을 통해 원하는 농산물을 선주문하고, 물품은 관악의 공동체들이 있는 공간에서 수령하는 방식이다. 꿈시장에서 직접 상주 농산물을 직거래하기도 했다.

상주 농민들은 지난해 7월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을 창립한데 이어 9월21일에는 로컬푸드직영매장을 오픈한다. 상주로컬푸드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농민들의 쌈짓돈으로 만들고 운영된다. 친환경 방식의 소량 다품종 생산을 통해 다양한 상품을 출하, 농민들에게는 안정적인 소득창출 기회를 제공하고, 소비자는 적정가격에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받는다는 취지다. 상주농민들은 향후 로컬푸드 직매장을 지역 푸드플랜과 연계 발전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관악과 상주는 이 사업을 통해 희망을 품지만, 그렇다고 당장의 이익만을 기대하지 않는다. 일단 서로를 이해하고, 도시와 농촌의 공동체간에 상생을 위한 생태계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서로 만나 도농상생을 공감했어요. 서로의 신뢰를 더 탄탄히 쌓아가고, 관계가 발전해가면서 조만간 먹거리 소비문화와 유통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상생공동체를 꿈꿔봅니다. 도시 소비자들에게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농촌의 생산자들에게는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는 변화를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홍선 관악위즐협동조합 이사장의 말이다. 

이번 교류를 현장에서 안내한 김정열 상주로컬푸드 이사(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는 “관악 주민들의 호응을 보면서 지역 내 협력이나 농민간의 협력만큼 농촌과 도시공동체간 교류의 가능성을 봤다”면서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도농연대를 통한 먹을거리 생산소비체계의 확산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서울에 사는 청년들이 제주에 내려가 한 달간 체류하면서 농사일이나 농촌활동을 돕는 청년형 제주 워킹홀리데이 사업에 참가한 청년들.

●지역상생교류사업 성과와 과제
‘서울과 지역의 동행’ 목표 20개 사업 성황

서울시, 2012년부터 팔 걷어
5개구·농촌 5곳 ‘1:1 매칭’
광역 12·기초 38곳과 협약도

식생활·아토피 치유 체험 등
만족도 긍정평가 64.5% 달해
민간부문 역할 확대 등 과제


도시-농촌 상생공동체사업은 서울의 5개구와 농촌의 5개시군 농촌의 주민공동체간 1:1 상호 매칭을 통해 두 공동체가 함께 추진할 지역상생사업을 자유롭게 제안하고 추진하는 사업이다. 관악과 상주 외에도 강북구와 평창군, 서대문구와 완주군, 성동구와 포천시, 은평구와 홍성군의 공동체들이 협약을 체결하고 먹거리, 역사문화, 도시농업, 공동체 청년, 건강 등 다양한 키워드의 농산물 교류 및 체험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의 지역상생교류사업은 서울과 지역, 도시와 농촌 등 심화돼 가는 지역간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됐다. 높은 구매력과 풍부한 인적자원을 보유한 서울시가 서울의 수요와 지역의 자원을 상호 활용하는 호혜적인 협력으로 서울과 지역이 동행하자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2012년부터 지역상생교류사업을 이전의 광역자치단체보다는 기초자치단체로, 사업분야는 주민들의 실생활과 연결되는 분야로 다양화했다. 2016년 5월에는 상설지원조직으로 ‘지역상생교류사업단’을 설치했다. 2017년말 현재 서울과 포괄적인 상생교류협약을 체결한 지자체는 광역 12곳, 기초 38곳이다.

현재 지역상생교류사업은 5개 분야 20개 사업에 달한다. 도심형 농부의 시장, 설추석 명절 장터 운영, 김장문화제, 서로 월장, 서로 살림 등은 안전한 먹거리 분야이고, 농어촌 체험교류활성화 분야에 서울-지역간 문화예술 상호교류, 식생활 현장 체험교실, 아토피 치유 체험 프로그램, 지역관광지 홍보 등이 있다. 유휴자원 발굴 및 협력 차원에서 지역 폐교 활용 자연체험 캠핑장, 체류형 귀농지원, 지역대학생을 위한 주거공간 마련 등이 추진되고, 도시 중장년층 일자리 창출, 귀농귀촌 희망가족 맞춤형 영농교육 지원 등 도농연계 일자리 창출도 지원한다.

서울시가 지난해 공무원, 활동가, 관련 네트워크 구성원을 대상으로 지역상생교류사업 이해당사자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이 사업에 대한 총체적인 만족도는 만족 49.3%, 매우 만족 15.2%로 64.5%가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보통 28.9%, 불만족은 5.9%였다.

다양한 사업 속에서는 개선해야 할 점도 나타난다. 일부 사업의 경우 일회성, 형식적인 사업으로 원점 재분류가 필요한 상황이고, 각각의 사업이 분절적으로 추진돼 시너지를 효과를 내려면 통폐합도 필요하다. 또한 공공부문의 역할을 줄이고 기획, 선정, 집행까지 민간부문의 역할을 늘리는 고민이 이뤄지고 있다. 서울과 지역의 행정간, 서울시 내의 부서 간 소통도 과제다.

사업방향은 수혜에서 호혜로, 일방에서 쌍방향으로 전환하는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농촌(지역)이 도시(서울)에 요구하는 것은 농산물의 판로제공과 부족한 인력자원 지원이 많다. 반대로 서울이 농촌에 요구하는 사업은 안전한 먹거리, 부족한 일자리 발굴, 안전하고 깨끗한 휴양공간의 제공 등이다. 확대 강화해야 할 사업으로는 공공급식, 상생공동체, 일손교류, 상생상회, 민간네트워크 구축 등이 꼽힌다.


●인터뷰/유정규 서울시 지역상생교류사업단장
“지역 살리기는 서울의 책무”

단기적 성과 중심 사업은 금물
‘사람과 사람’ 관계 만들기 중요

유정규 서울시 지역상생교류사업단장(경제학 박사)은 “지역상생사업은 서울의 책임이자 행복한 서울, 나아가 한국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출발”이라고 설명했다. “급속한 성장으로 서울과 수도권으로 사람과 돈이 모여드는 동안 지방과 농촌은 과소화, 공동화 됐고, 서울이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온 결과 이제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서울의 지속가능한 발전도 어려워집니다. 이것이 서울시에서 지역상생사업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2016년 5월2일에 출범한 사업단의 역할은 크게 지역상생교류사업의 발굴 및 지원, 지역상생교류 관련기관·단체 간 협업네트워크 운영, 지역상생교류분야의 자원조사 및 정보제공, 지역자원 전시·홍보 공간 개설 및 운영 등이다.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상생교류사업의 추진 상황을 진단하고, 참여주체들의 의견을 조사,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모니터링과 컨설팅사업, 지역별 세미나 개최, 중간지원조직과의 네트워크 형성 등 행정에서 직접 추진하기 어려운 민관거버넌스 구축사업 그리고 지역상생과 관련한 신규 사업의 발굴 및 운영 등이 중요합니다.” 

지난해부터는 자치구 단위의 활동조직과 연계, 중소가족농 생산물 판로지원사업과 도농일자리교류를 위한 시범사업을 기획·추진해 오고 있다. 올해에는 공동체의 주도적 참여를 전제로 하는 도농상생공동체 연계사업을 새롭게 시작했다.

유 박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교류”라고 했다. “진정한 상생을 위해서는 서울 시민이 지역의 실정을 이해해야 하며, 지역 주민들도 서울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호이해 위에 서울과 지역이 실질적인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상생사업이 만들어지고, 실행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먹거리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상생사업은 서울시민과 지역주민의 이해가 일치할 수 있는 분야로, 단순한 먹거리 판매사업이 아닌 생산하는 농민과 그것을 필요로 하는 시민의 관계 형성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유 박사는 “서울시 주도의 일방적·시혜적 방식에서 연계협력 지자체와 상생하는 호혜적인 방식으로, 단기적인 성과 중심사업에서 지속가능한 정책사업으로, 개별 사업적 접근에서 패키지 사업방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사업의 시너지효과를 높이고, 주민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전제로 하는 민관협력체계 강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그는 “사업단 역시 한정된 인력과 제한된 예산, 대외적인 인식 부족, 자체역량의 한계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이러한 과제는 서울시 혹은 사업단 자체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서울시와 지역의 행정, 서울시민과 지역주민, 그 밖의 다양한 관련 주체들의 노력이 함께 할 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심을 당부했다.

이상길 논설위원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