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2~3일 전 불린 쌀을 머리에 이고 가는 할머니를 따라 나선다. 도착한 곳은 방앗간. 할머니 머리에서 내린 보따리에는 불린 쌀과 파랗게 삶은 모싯잎이 나온다. 모싯잎 송편은 맑은 초록빛이면서 가볍고 향긋한 푸른 향기가 난다. 모싯잎은 칼슘이 풍부해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고 식이섬유소가 변비도 예방한다. 특히 항균효과가 있어 송편이 쉽게 상하지 않는다. 추석이라고 하나 여름 끝 무렵의 더위가 남아있는 때에 송편을 보관하는데 도움이 된다. 쌀이 가루가 되면 무게는 가벼워졌지만 부피는 더 늘어나서 여분으로 가져간 보자기까지 동원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추석 전날은 아침부터 김나는 따끈한 물로 반죽을 한다. ‘익반죽’이다. 익반죽을 위해서는 끓인 물을 넣고 주걱으로 살살 섞어주고 나서도 반죽은 손으로 충분히 치대야 한다. 찹쌀이나 쌀은 찰기가 없어 찬물로 반죽이 잘 되지 않아 끓는 물을 부어줘야 끈기가 생기는데, 쌀을 끓인 밥에는 점성이 생기는 호화과정(Gelatinization)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쌀가루의 탄수화물은 호화에 필요한 최저온도인 60℃에 도달하게 되면 전분입자가 붕괴돼 투명한 콜로이드(Colloid) 용액이 되고, 수분함량이 늘어나서 떡, 밥, 죽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익반죽한 송편을 쪄냈을 때 겉 표면이 매끄럽고 씹는 맛도 쫀득쫀득해진다. 그냥 찬물로 반죽하면 송편을 쪄낸 뒤 참기름을 많이 발라도 익반죽한 송편보다 쫀득함이 덜하다.

‘소’를 넣을 때는 우리 형제가 좋아했던 깨 송편이 주요메뉴였다. 깨는 수분함량이 낮으니 설탕을 먼저 넣어 골고루 섞어주고 그 다음 꿀을 넣어 뭉쳐준다. 소를 넣은 송편을 주먹 안에 넣고 부드럽게 손에 힘을 주면 반죽이 소에 밀착되고 동시에 손가락 마디마디 모양을 가진 올록볼록한 송편이 완성된다. 그 다음으로 커다란 검정 무쇠 솥에 물을 붓고 시루를 얹은 후 위에 면 보자기를 깔고 송편을 쪄낸 다음 찬물에 담가 식힌 후, 나무소쿠리에 붙지 않게 고소한 참기름과 훌렁훌렁 섞어 놓는 것이 요령이다. 엄마는 그제 산에서 따다 놓은 솔잎을 씻어서 찜기 바닥이나 송편 위에 덮어서 같이 찐다. 어린 눈에는 먹지도 못하는 솔잎을 왜 같이 찌는지 이상해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과학적이었다. 솔잎은 송편의 향을 좋게 한다. 향기는 파이넨(α-pinene, β-pinene)이 주성분인데, 항균효과가 높다. 산림욕을 하러 가면 피톤치드가 많아서 건강에 좋다고 하는데 나무에서 나오는 이런 향기성분의 효과이다. 그리고 송편을 찔 때 솔잎을 같이 찌기 때문에 솔잎의 향기성분이 한 번에 추출되는데, 정유를 추출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인 수증기증류법(Steam distillation)과 같은 원리다. 뜨거운 수증기로 반죽도 익히고 솔잎에서 향기성분도 추출하니 1석 2조에 항균성분인 파이넨(Pinene)으로 송편을 빨리 상하지 않게 하니 매우 과학적이다.

최근형/국립농업과학원 농업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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