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농업·농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농업의 공익적 가치 헌법반영 정책토론회’에선 헌법 개정과 관련된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농업계의 요구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김흥진 기자

제20대 후반기 국회가 새롭게 재편되면서 여야 정치권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단된 헌법 개정 논의를 재점화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다. 이에 발맞춰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농업계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행보도 재개되고 있다.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인화 민주평화당(전남 광양·곡성·구례) 의원 주최로 열린 ‘농업의 공익적 가치 헌법반영 정책토론회’ 내용을 중심으로 헌법 개정과 관련해 전반적인 상황과 향후 농업계의 대응 방향 등을 정리했다.


농업 공익적 기능에 주목
대통령 개헌안에 반영 성과
정치권 개헌안에도 담겨 

농어촌 지속가능한 발전 보장
농어민 삶의 질 향상 등 담아야

상호준수의무 명확히 하되
시혜 아닌 권리개념으로 접근
헌법 토대 농정개혁 초점을


▲중단됐던 개헌 논의, 다시 수면 위로=지난해 30년 만의 개헌 성사 여부를 놓고 각계각층의 관심이 정치권으로 향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을 이끌어낸 ‘촛불민심’이 각 분야의 목소리로 분출되며 국민 주도의 개헌 실현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감이 컸지만, 결국 여야 정치권이 권력구조 개편에 이견을 보이며 6월 지방선거 동시 개헌 국민투표가 무산되면서 개헌 성사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하지만 7월 들어 20대 후반기 국회 진용이 새롭게 짜이며 또다시 개헌 논의의 필요성이 정치권에서 언급되고 있다. 정략적 의도가 엿보인다는 견제 시각도 있지만,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를 다시 꺼내려는 움직임에 대해 농업계는 일단 반기고 있다.

김지식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다행인 것은 20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이 마무리되고 나서 문희상 신임 국회의장님을 비롯해 여야 각 정당의 대표 혹은 원내대표님들이 헌법 개정 추진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이와 관련된 논의를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라며 “이번에야말로 5000만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헌법 개정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기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농업계가 지금까진 소기의 성과를 냈다=앞선 개헌 논의 과정에서 보여준 농업계의 행보는 일단 소기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내려진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농업계의 핵심 요구가 대통령 개헌안과 정치권의 개헌안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큰 진통과 이견 없이 반영됐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해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농업계가 힘을 결집했고, 농협 등이 중심이 돼 1100만명 서명을 받는 등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공을 들인 결과였기에 의미가 더욱 크다.

특히 정치권의 개헌 논의에서 사실상 ‘가이드라인’이 될 것으로 점쳐지는 대통령 개헌안에 해당 내용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개헌이 성사될 경우 농업계의 요구가 관철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큰 상황이다.

개헌안에 농업계의 요구를 반영해 청와대에 제출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의 부위원장을 맡았던 하승수 변호사는 이날 토론에서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헌법에 명시하자는 것에 대해 자문위원들이 대체로 공감했다”며 “농업이 공익적 기능을 하고 있느냐에 대한 반론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농업이 우리나라 공동체 수준의 공익적 역할을 다 못하고 있더라도 농업이라는 존재가 공익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부분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명시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개헌안이 청와대에 제출됐고, 올해 3월 발표된 대통령 개헌안에는 “제129조 1항 국가는 식량의 안정적 공급과 생태 보전 등 농어업의 공익적 기능을 바탕으로 농어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농어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원 등 필요한 계획을 시행해야 한다”는 조문이 담겼다.

정치권이 마련한 개헌안에도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명시하는 내용 등이 다수 반영됐다. 사동천 한국농업법학회 회장(홍익대 법대 교수)은 이날 발제 자료에서 범농업계 추진연대가 요구한 4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치권의 개헌안 내용을 비교<표 참고>했다.
 


▲추가 보완해야 할 내용 있다=개정 헌법에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명시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이 농업계의 목소리다. 30년 만의 개헌 기회인만큼 대통령 개헌안에 담긴 내용을 바탕으로 이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들이 많다.

사동천 회장은 향후 헌법 개정 방향에 대해 “공익적 기능 제고만을 헌법에 담을 것이 아니라 현안 문제 및 미래지향적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종합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며 “추상적인 헌법에 어떤 키워드를 담을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사 회장은 공익적 기능 외에도 중요한 키워드로 △농어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 △식량안보, 경관보전 등 농어업·농어촌의 공익적 기능 및 지원 △농어민의 삶의 질 향상(소득보장, 권익신장 등) △자연재해 등으로부터의 손실 보전 등을 꼽았다.

유찬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업은 특성상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역기능에 대한 제재도 없지만, 순기능에 대한 지원도 없다. 농업의 외부효과가 공공재 성격을 띠기 때문에 순기능과 역기능을 얼마나 조율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사회적 공감대를 얻고자 한다면 순기능뿐만 아니라 역기능도 담는 노력이 필요하다. 보상을 앞세운 논리보다는 역기능도 있는데 이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투자를 더 해달라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한민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헌법 개정과 관련된 논의가 본격 재개된다면 ‘상호준수의무’와 ‘농업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의 논리가 더욱 명확하게 논의되고 반영돼야만 하며,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제대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토론회 좌장을 맡은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프랑스가 헌법 개정을 하면서 농어촌·농어민에 대한 지원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마치 국가가 혜택을 주는 시혜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어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며 “공익적 기능을 얘기하는 것은 농업인들이 ‘플러스 알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받아야 하는, 시장 메커니즘으로 보상받지 못한 부분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농업인의 권리를 실현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헌법이 갖고 있는 특수성과 법체계를 고려해 농업계의 핵심 요구를 명확히 반영하는 측면이 현실적이라는 법학계의 의견도 있다.

고문현 한국헌법학회장은 “헌법이 국가의 최고법이자 국가의 기본방향과 골격을 정하는 기본법이므로 헌법 속에 너무 자세한 규정을 담지는 말고 중요한 근거와 방향만 제시하고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법령에 위임하는 것이 전체 법질서의 통일성과 체계성에 더욱 더 부합된다”고 말했다.

▲향후 대응 방향은=우선 개헌 성사 여부가 최대 관건인 만큼 정치권이 국민의 개헌 여망을 받들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노력에 농업계도 일조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와 함께 헌법 개정 논의에 대비해 농업계의 요구를 구체화하고 정리하는 조문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하승수 변호사는 “지금 개헌이 어려운 것은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반영하느냐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다. 정당들 간에 권력구조에 대한 입장이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당장 개헌 논의가 다시 불붙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개헌 논의가 다시 본격화될 것을 대비해 농어업의 공익적 기능을 헌법에 명시할 수 있도록 국민적인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고, 헌법 조문에 담겨야 할 핵심적인 문구에 대해 토론을 해 나가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기훈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정책과장도 “정치권과 단체, 학계 등의 개헌안을 어떻게 견고하게 만들고 논의해야 할 것이냐 부분이 중요하다”며 “여전히 농업인의 상호준수 의무, 국가의 재정 의무 등이 헌법에 반영될 것인가 논란이 있는데, 이번 기회에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면서 조문화 작업을 계속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상희 교수는 “헌법학회 학자들이 모였는데, 농업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었다.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노력이 더 이뤄져야 하고, 헌법은 방향성이고 지침이자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에 헌법에 관련 내용이 담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토대로 얼마만큼 국가기관의 정책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에도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이어 “농업 부분이 헌법 제9장 경제 분야에 들어가 있다. 농업을 경제의 하위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농업은 경제를 떠나서 우리 국민 모두가 어떻게 사는가를 다루는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라면서 “이번 사안을 관련 집단의 이익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국민 모두의 삶, 대한민국의 발전 방향을 결정하는 본질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