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농연중앙연합회 집행부가 11일 한국농업연수원에서 열린 ‘이경해 열사 15주기 추모식’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WTO(세계무역기구)가 농민을 죽인다”라고 외치며 멕시코 칸쿤에서 산화한 이경해 열사의 15주기 추모식이 11일 엄수됐다. 고인이 목숨으로 일깨우려 했던 ‘개방 농정의 폐해’는 생애 마지막 순간이었던 2003년 9월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에 이르기까지 ‘FTA’(자유무역협정)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농정의 폐부를 관통하며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내적으론 농정 대개혁을 위한 ‘골든타임’을 이대로 흘려보내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더해져 이날 추모행사에선 이경해 열사의 정신 계승과 더불어 ‘변화’와 ‘실천’을 부르짖는 목소리들이 많았다.

-일시 : 2018년 9월 11일
-장소 : 한국농업연수원(전북 장수군 장수읍 발방골길 72)
-주최 :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주관 : 한국농업경영인전북도연합회, 한국농업경영인장수군연합회
 


#추모행사

유족 등 300여명 찾아
고인에 대한 그리움 넘어
농업회생 주역 의지 다져


이날 오후 2시부터 거행된 추모식은 이경해 열사의 유족들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발걸음을 한 한농연 및 농업계 관계자 300여명이 자리한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김지식 한농연중앙연합회장 등 한농연 전현직 임원, 이명자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장 등 한여농 임원, 최정호 전북도 정무부지사, 장영수 장수군수, 김종문 장수군의회 의장 등 군의회 의원들, 장수군 관내 농민단체 대표들이 참석했으며, 김치구 한농연중앙연합회 대외협력부회장이 사회를 맡았다.

이경해 열사의 생애를 조명하는 추모 영상을 시작으로 추모 묵념과 최흥림 한농연장수군연합회장의 약력 보고, 김병일 한농연중앙연합회 수석부회장의 추도시(作 민족문학작가회 정도상) 낭송이 이어지며 장내 분위기가 고조됐다.

각계의 추모사는 고인에 대한 애틋함이 절절히 담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성과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로까지 확장됐다.

김지식 회장은 “1990년대부터 우리 농업은 시장 개방의 물결 속에 미국과 중국, 캐나다 등 52개국과 FTA를 체결했고 지금도 이스라엘, 에콰도르 등과 협상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며 “개방에 따른 수입농식품의 범람은 국내 농산물의 생산 위축은 물론 가격하락과 농민 축소로 이어져 대한민국 농업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농업은 바람 앞에 놓인 촛불처럼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경해 열사님의 열정과 헌신을 본받아 우리 전국 14만 농업경영인들이 농업 회생의 주역이 돼야 한다고 본다”며 “이번 15주기 추모식을 통해 열사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모두 국민과 함께하는 농업, 농민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결의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성태근 한농연전북도연합회장도 추모사를 통해 “변해야 한다. 한농연이 먼저 변해야 농업, 농촌, 농업인이 변할 것이고, 지역이 변하고 나라가 변할 것”이라며 “오늘을 기점으로 우리 농업경영인 동지들이 더욱더 힘을 합쳐서 농업인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최정호 전북도 정무부지사는 “추모식에 오니 이경해 열사의 정신을 어떻게 하면 계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전북도정이 잘하고 있나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 됐다”며 “전북도에 맞는 정책과 제도, 농법을 도입해 가면서 농촌이 발전하고 농민이 지속가능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이경해 열사의 길을 계승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영수 장수군수는 “저는 정치적으로 (이경해 열사의) 전북도의회 의원 후배다. 또 산업경제위원장을 뒤이어 맡았다. 이경해 열사의 뜻을 이어받아 땀의 가치, 제값 받는 농촌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소명감이 어깨를 무겁게 한다”며 “이제 농정을 맡은 한 사람으로서 그 긴 한 숨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우리 농가들의 소득 향상을 위해 항상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종문 장수군의회 의장은 “세계 농민의 선두에서 농산물 개방 저지를 위해 평생을 농민운동에 몸 바치신 고 이경해 열사님의 이역만리 멕시코 칸쿤에서의 외침은 영원히 우리의 삶과 함께 하고 있다”며 “고 이경해님의 정신을 우리는 가슴 속 깊이 간직해야 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유족들을 대표해 단상에 오른 이경해 열사의 둘째 딸 고운 씨는 참석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이경해라는 사람은 여기 계신 개개인들, 농민 여러분들만큼은 정말 가슴 깊이 사랑을 했던, 그래서 지금도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들도 농업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힘을 내고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힘을 북돋았다.

추모식이 끝난 뒤에는 추모걷기 및 묘역 참배가 진행됐다. 묘역과 그 입구 일대에는 “쌀값 보장”, “농민세상 만세”, “식량주권 실현”, “농민기본권 보장”, “후계농육성 법률 제정”, “열사정신 계승” 등의 만장이 바람에 펄럭이며 추모객들을 맞았고, 한농연장수군연합회는 추모객들에게 장수 지역 특산물인 사과를 나눠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 추모객들은 추모식이 끝난 뒤 추모걷기 및 묘역참배를 통해 고인을 추모했다.


#추모기념강연/이홍기 한농연 초대회장
“대접받는 농업 되도록 한농연 역할 다해야”

“이경해 열사의 뜻을 이어받아 한농연이 중심이 돼서 대접받는 농업이 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경해 열사와 함께 활동하며 한농연 조직화에 힘을 쏟았던 이홍기 한농연 초대회장은 추모식에 앞서 진행한 기념강연에서 두 가지 부분을 강조했다. 이중 첫 번째로, 농업·농촌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농업홀대’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농연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이홍기 전 회장은 “초대회장으로 한농연 활동 역사를 지켜봐 왔다. 이제는 한농연이 보다 성숙된 조직으로 변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한농연이 힘을 모은다면 열사님의 훌륭한 활동과 업적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오늘날 농업 현실은 처참하다. 한농연 조직이 처음 출발할 때는 농업 인구가 1200만명이었는데, 현재는 급격히 줄었다. 그럼에도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한농연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한농연과 농민 단체들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 농업을 좀 더 챙기고 먹거리를 생명산업으로 발전시킬 것이란 기대에 많은 성원과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역대 정권을 보더라도 이렇게 농업을 홀대하는 정권은 없다고 생각한다. 한농연이 강하게 나서야만 대접받는 농업, 대접받는 한농연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동시에 이 전 회장은 이경해 열사 묘역의 성역화 작업도 앞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라고 꼽았다.

그는 “이경해 열사의 정신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농민들에게 큰 울림을 줬고, 이를 앞으로 더욱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면서 “지금부터라도 전세계 농민들이 찾을 수 있는 묘역이 될 수 있도록 성역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이경해 열사 묘역 성역화 추진위원회를 만드는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이경해 열사 약력

1947년 전북 장수 출생
1974년 서울농업대학교 졸업(현 서울시립대학교)·서울농장 설립(장수읍)
1982년 농업계학부출신 100명 영농후계자 선정
1987년 전북농어민후계자협의회 회장
1988년 FAO ‘올해의 농부상’ 수상
1989년 전국농어민후계자협의회 회장
1990년 한국농어민신문 초대회장·스위스 제네바 UR반대 할복 기도
1991년 전북도 도의원(제4·5·6대)
1992년 민주당 제14대 대통령선거대책 중앙위원
1995년 전북도의회 산업경제위원장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농어촌특별위원회 부위원장
2001년 일본 도쿄 총리관저 항의 단식농성·스위스 제네바 WTO본부 앞 1인 단식농성
2003년 9월 11일 제5차 WTO 각료회의 개최지 멕시코 칸쿤에서 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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