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기 논설위원·친환경농축수산 유통정보센터장

내년도 ‘나라 가계부’가 발표됐다. 매년 이맘때 발표되는 정부 예산안은 이듬해 나라 살림살이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 늘 관심거리다. 내년 정부 예산안은 470조5000억원이다. 올해보다 9.7% 늘었다. 이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키 위해 지출을 많이 늘렸던 2009년(10.6%) 이후 가장 높다. 올해 지출 증가율 7.1%보다 높고, 내년 경상 성장률 전망치 4.4%에 비해서는 2배 이상이다.

한마디로 초(超)슈퍼예산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확장적 재정지출’이라고 하는데, 나라가 경제적 위기 상황에 있을 때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책수단 중의 하나다.

그러나 농업예산은 어떠한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내년도 예산안이 14조6480억원으로, 전년 대비 1% 증가에 그친 것이다. 이렇다보니 국가 전체예산에서 농식품부 소관 예산 비중이 올 3.4%에서 3.1%까지 떨어졌다. 역대 최저치다. 물가 인상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예산이다. 우리 농업은 위기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물론 농식품부는 올해 쌀 변동직불금에 과다 편성했던 5025억원을 감액해 필요한 분야에 재투자했기 때문에 실질적 집행규모는 올해보다 6500억원이 증액된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변동직불금 예산 불용처리의 경우 이미 국회 예결위를 통해 일반예산으로 배정, 사용해왔기에 전혀 특별한 조치가 아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예산 운용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2022년까지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농수산분야 예산이 매년 1000억원씩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농업예산이 2022년에는 국가 전체예산의 2.57%까지 떨어진다. 전 정부의 무관심, 무대책, 무책임 등 3무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10년간 잘못된 농정을 뜯어고치겠다고 공언했던 문재인 정부도 농업예산 홀대가 여전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농정의 틀을 바꾸는 개혁도 지지부진하고, 전 정부에서 실패했던 농정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사실상 농업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인사청문회에서 농업예산 증액은 농민들의 자존심이라며 예산증액 노력을 다각적으로 전개하겠다던 이개호 장관 역시 약속을 못 지켰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가 성명서를 통해 생산자·소비자 물가 상승, 환율·유가·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농업경영 여건이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는데 예산 확충에 극도로 인색한 정부의 근시안적 발상을 강하게 비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정감사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산 심의에서 국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농해수위는 오래전부터 여·야가 없는 상임위로 평가받아 왔다.

여·야 모두 농민들의 이같은 불만과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상대적 박탈감과 실망감을 보듬어줘야 한다. 산업적 가치뿐만 아니라 우리 국토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며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우리 농업·농촌·농민이 더 이상 홀대 받지 않도록 이번만큼은 국회가 반드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농업예산의 추가 확보다. 반드시, 그리고 꼭 해내야할 정치적 과제이자 목표이다. 더 나아가 국가 전체 예산 증가율만큼 농업예산을 추가적으로 확보하게 된다면 금상첨화다.

농업은 국가 경제의 근간이자 토대다. 농업·농촌 살리기를 외면하고 국가 경제를 살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의 연구에 따르면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금액적으로 환산하면 244조원에 달한다. 또 농업예산 그 이상의 가치를 이미 창출하고 있다. 국가가 농업예산을 충분히 투입해야 할 명백하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더욱이 정책의 신뢰는 바로 예산과 직결돼 있다. 농업예산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고는 농정 대전환, 농업·환경·먹거리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지속가능한 농업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농정 목표 또한 결코 실현할 수 없다. 예산문제로 주요 농정현안이 표류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돌아온다. 국회는 국가 예산 증가율만큼 농업 예산을 늘려 달라는 농민들의 절규를 결코 외면해선 안된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