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성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최근 10여 년간 매년 가뭄 발생
농업인들의 고충 끊이지 않아

마르지 않는 ‘지하댐’ 개발 통해
농업·생활용수로 활용하면
농사짓는데 훨씬 편해질 것


‘농업인이 농사짓기 편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회의원 시절부터 한국농어촌공사의 사장으로 재임 중인 지금까지 늘 고민해온 문제다. 관건은 물이다. 물을 제때 필요한 만큼 농경지에 댈 수 있어야 농사짓기가 편하다. 하지만, 최근 10여 년간 가뭄이 매년 발생하면서 농업인의 고충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해 봄 영농기에는 누적 강수량이 기상관측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 충남 서해안과 경기 남부 지역은 농업용수는 물론 식수 부족 현상까지 발생했다. 올해 여름에도 사상 최악의 폭염과 함께 가뭄이 찾아온 바 있다.

이렇듯 반복되는 가뭄으로 저수지와 하천이 마를 때도 농업용수 이용에 어려움이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지하댐’이 있는 곳이다. 일례로, 충남 공주시에는 1986년 준공한 옥성 지하댐이 있다. 올해 여름 이곳 인근에 있는 동천 취입보(하천을 막아 수량을 확보한 시설)는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냈지만, 옥성 지하댐은 마르지 않아 하루 2만7900㎥의 물을 원활히 농경지에 공급했다. 다른 지역의 지하댐들도 인근 농경지에 필요한 농업용수의 약 30~45%를 공급하며 가뭄 해소에 큰 역할을 해왔다.

지하댐이란 말 그대로 땅 속에 건설한 댐을 말한다. 지하수가 흐르는 대수층에 물막이 벽을 세우면 수위가 높아져 대용량의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채워진 물은 집수정이라는 큰 우물을 통해 끌어들여 직접 활용하거나 인근의 저수지에 담는다.

지하댐 등으로 확보한 지하수는 폭염에도 증발로 인한 손실이 적고, 가뭄에도 비교적 일정한 수량을 유지한다. 땅 위의 물이 말라도 지하댐에는 늘 물이 모여 있다. 땅 속에서 여과되어 늘 깨끗한 수질을 유지하는 것도 큰 장점이다. 친환경 농산물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깨끗한 농업용수의 사용이 필수 조건이다. 국민이 신뢰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고 농가 소득을 늘리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개발비용도 저수지 등으로 지표수를 개발하는 것의 절반 수준으로 경제적이다.

보통 지하수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관정(우물)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관정은 인근의 좁은 지역에서 소규모로 활용되는 한계가 있다. 지하댐으로 지하수의 수위를 높이면 훨씬 많은 수자원을 확보하게 되고, 인근의 저수지 등과 연계해 더 넓은 유역 단위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여유 수량을 물 부족지역과 연계 공급하여 최근 빈번해진 국지적인 가뭄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해진다.

일본, 중국, 인도, 에티오피아 등 해외에서는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지하댐을 개발해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많은 지하댐을 설치하고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최근에는 미국 등의 다른 선진국에서도 적극적으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는 공주시의 옥성 지하댐을 비롯해 경북 포항시의 남송 지하댐, 전북 정읍시의 고천 지하댐 등 6개의 지하댐이 설치돼 있다. 이중 농업용수로 활용되는 5개소를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고 있다. 생활용수로 쓰이는 쌍천 지하댐은 강원 속초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가뭄을 겪으며 지하댐의 효과가 입증되자 최근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지하댐 건설을 추진하고 싶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실제로 속초시는 쌍천 제2지하댐 추가 설치를 추진 중이며, 이에 공사에서 기본조사를 실시하고 사업 타당성을 분석 중이다.

기후변화의 진행이 심상치 않다. 농업인들이 농어촌 현장에서 체감하는 정도는 더욱 클 것이다. 가뭄은 매해 겪는 일상이 되었다. 농업인이 희망을 갖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농업에 필요한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기본이다. 지구상에서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물 중에 하천과 호수 등의 지표수는 0.9%에 불과하다. 99.1%는 땅 속에 있다. 수자원 확보 공간으로서 땅 속을 주목할 때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깨끗한 물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흐르고 있다. 지하에 물을 채우면, 우리 농업인들이 농사짓기가 훨씬 편해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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