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마을 자원들
공동 이용자인 농민들이 관리·유지 마땅
농촌 공동체의 자율성 믿고 존중해야


환경을 지키자는 목소리는 도시나 농촌이나 날이 갈수록 점점 커진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서울시에 살면서 자동차 매연으로 인한 대기오염을 걱정해도,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대책을 요구하는 것, 시민사회 공간에서 열리는 캠페인에 참가하는 것, 일상적인 소비 생활의 패턴을 바꾸려고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것 외에 도시민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또 있을까?

그런데 농민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농업생산 활동이 펼쳐지는 장소, 즉 농경지와 농업 인프라 구조 그 자체가 경작 생태계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농민이 자신과 가족의 살림살이를 유지하려고 일하는 평소의 방식이 환경에 직접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농민은 그 과정을 고스란히 인지한다. 논에 농약을 치면 개구리 울음 소리가 줄어들고, 한정된 공간에서 특별한 노력 없이 가축을 아주 많이 기르면 온 동네에 냄새가 진동한다.

농민이 자신과 가족의 살림살이를 유지하려고 행하는 생산 활동의 장소가 곧 인위화된(또는 인간이 관리하는) 생태계이기 때문에, ‘농업환경(agri-environment)’이라는 별도의 범주가 성립한다. 농업환경을 잘 가꾸고 유지하려는 실천은, 사람의 손길이 가지 않은 자연환경을 있는 그대로 보전하려는 실천과는 달리, 독특한 성격을 지닌다. 농업환경은 사람의 생산 활동과 자연의 생물학적 재생산 과정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장소다. 농업 생산 활동은 사람에게 충분한 생산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자연을 재생산하는 것도 필요하다. 가급적 자연을 풍요롭게 하고 증진하며 다양하게 해야 한다. 자연(自然)이라는 말 뜻 그대로, 스스로 그러하도록 두면 농업 생산을 이루기 어렵고, 오직 농업 생산 극대화만을 추구한다면 자연의 다양성과 재생산을 저해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목할 것은 ‘시선을 놓치는 현상’이다. 실천, 논쟁, 정책 등의 시선을 따라가면 종국에 만나게 될 것은 농업환경이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농산물의 안전성도 농가 소득도 농업환경을 보전하려는 그 모든 노력의 ‘시선들’이 모이는 끝점에 있을 수는 없다.

그 소실점에는 농업환경이라는 추상 개념에 함의된 물질적 현실의 구체적 사례, 즉 농사짓는 땅과 주변의 땅, 물, 동식물, 흙, 미생물 등으로 이루어진 특정한 장소가 놓여 있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까닭이 있다. 이른바 ‘친환경농업’ 정책의 역사가 약 20년으로 결코 짧지 않은데도 정부, 시민, 농민 등의 시선과 논의는 소실점에 있는 ‘농업환경’에 이르지 못하고 안전성 인증제도, 친환경농산물 가격 또는 유통 구조, 농가 소득 보장을 위한 정책 수단 등등의 논의에서 맴돌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친환경농산물의 안전성, 친환경 농산물 생산비, 유통경로나 인증제도 등에 관한 온갖 말들을 평소에 자주 듣지만, 어느 지역의 농경지 주변 식생이나 동물상이나 경관이나 수질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드디어 정부가 농업환경보전 프로그램을 추진할 조짐을 보인다. 충남 보령, 전남 함평, 경북 문경 등지에서 각각 1개 마을을 시범연구 대상 마을로 정했다고 한다. 견고한 논리적 토대 위에서 농업환경보전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이유를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농업환경보전 프로그램은 토양·용수 등 농업환경과 생태계의 보전과 농촌경관을 개선하기 위한 지역 주민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점검·관리하는 사업으로 현 정부의 국정과제이자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핵심 과제”(농림축산식품부)라는 언급에서 드러나듯, 중요성만큼은 크게 강조된다. 그런데 정부가 농업환경보전 프로그램을 제대로 형성하려면 반드시 전제해야 할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다. 농촌 지역사회 주민의 공동 노력과 자율성이다.

며칠 전 문자 메시지 알림이 휴대폰에 떴다. 마을길 주변 풀을 깎고 화단도 꾸며야 하니, 화요일 낮에 나오라는 전갈이다. 옆의 면(面) 어느 리(里)에서는 ‘마을 풀 깎는 날’ 울력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벌금 몇 만 원을 물리기로 했단다. 누군가는 ‘나하고 상관없는 일을 왜 해야 한단 말인가?’라며 불참하고, 다른 주민 다수는 불참자의 ‘공동체-감수성 부족’을 불편하게 여기는 풍경이 연출되는 시골 마을이 적지 않을 테다.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다며 근심하는 사람이 많지만, 농촌에서 일 돌아가는 방식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수가 없다.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닌데 마을에 속해서, 내남없이 쓰는 장소, 시설, 경관이 농촌에는 여전히 많다. 딱히 이용자만을 가려내 이용료를 받자고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공공기관이 그 모든 장소와 시설과 경관을 직접 관리할 수도 없다. 결국, 잠재적·현재적 공동 이용자인 농민들이 함께 관리하고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농촌 지역공동체가 농업환경을 보전하지만, 농업환경을 가꾸고 유지하려는 활동이 지역공동체를 강화할 수도 있다. 공동 활동과 공동체의 결속은 서로 되먹임한다.

농업환경은 농사와 공동체 활동이 펼쳐지는 장소다. 그러므로 쉽지는 않겠지만, 농촌 지역사회의 자율성과 공동체 성격을 존중하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농업환경보전 정책을 준비해야 할 터이다. 그 이유는 셋이다. 첫째, 행위 유형별로 단가를 산정해 지급하는 방식은 농민이 스스로 살아가는 장소에 대한 자발적 관심을 고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농업환경보전 정책의 대상이 되는 장소, 시설, 경관 등은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이른바 커먼즈(commons)이기 십상이어서 공동 활동과 규칙을 예비하지 않고서는 가꾸고 보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 지역마다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는 농업환경을 보전하려는 실천도 지역의 실정에 맞게 다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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