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식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오른쪽 두 번째)과 가세현 한국농업경영인경기도연합회장(왼쪽 두 번째) 등이 최근 복숭아 폭염 피해를 입은 장호원읍 석재인 농가를 방문해 피해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 봄 이상저온 냉해 이어
지속된 폭염에 가뭄까지…
1그루 20박스 나오던 게
지금은 7~8박스도 겨우 수확
그나마 솎아내다 보면 ‘한숨만’

실질적 혜택 없는 탓에
재해보험 가입 안해 더 걱정
“품질저하 따른 수익감소 보장”
보험손해평가방식 개선 촉구


“태풍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큰 피해 없이 비도 적당히 내리고 더위도 한풀 꺾여 한 시름 놓았습니다. 하지만 올봄 냉해에 이어 최근 지속된 극한 폭염과 가뭄으로 제대로 된 상품 과일이 없어 걱정입니다.”

이천시 장호원읍 진암리에서 1만9800㎡(6000평) 규모의 복숭아 농사를 짓는 석재인(54)씨는 깊은 시름에 빠졌다. 석 씨의 과수원은 올봄 이상저온으로 수정불량 된 과실은 폭염에 썩어 낙과되고 미처 자라지 못한 과실은 일소(햇볕 데임)현상으로 부패해 상품성 있는 복숭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땅에 떨어져 썩고 있는 복숭아를 하염없이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던 석씨는 “올 봄 개화기 때 동해를 입어 수정불량으로 뻥과현상(핵할·씨가 벌어져 썩는 현상)이 나타나고 찜통더위와 가뭄 탓에 성장을 멈춘 이후 열매가 제대로 자라지 않아 상품성 있는 복숭아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 했다.  

700여그루 나무 중 60% 이상이 폭염·가뭄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석씨는 “보통 나무 1그루에서 20박스(1박스 4.5kg) 이상 나와야 정상인데, 지금은 7~8박스 정도 수확한다”며 “그나마 수확한 것도 선별과정에서 또 솎아내 올 농사는 망친거나 다름없다”고 푸념했다. 이맘 때 쯤이면 석씨의 선별장에는 상품성 있는 복숭아 대과가 꽉 채워져 한창 작업을 할 시기인데 텅 비어있었으며 자리 한 켠 에는 알이 작고 썩어 솎아낸 복숭아만 덩그러니 쌓여 있다.

이천시 설성면 송계리에서 1만㎡(3000여평)의 복숭아 농사를 짓는 한관수(57)씨도 사정은 마찬가지. 한씨도 올봄 냉해로 착과가 안된 상태에서 폭염과 가뭄이 지속된 탓에 기형·조숙과가 속출하고 일소·뻥과현상으로 나무에 매달린 채 썩거나 낙과됐다.

한씨는 “식물의 경우 낮에 광합성으로 모은 에너지를 밤이 되면 영양분으로 바꾸는 데, 가뭄·폭염과 열대야가 반복되면서 잎이 숨 쉬는데 급급해 열매에 양분을 공급하지 못한다”며 “나무와 잎이 영양분을 제대로 축적하지 못하다 보니 성장이 멎어 열매가 작고 부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천시 장호원·설성면 일대 복숭아 농가들은 가뭄과 폭염피해로 절망하고 있다. 예년에 비해 수확량이 60% 이상 줄었고 그나마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상품과는 태부족이다.

이 일대는 지난 1월 영하 15도를 밑도는 초강력 한파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복숭아나무가 동해를 입은 상태에서 개화기인 4월 7∼8일에는 영하의 기습한파가 몰아쳐 꽃이 얼어붙는 등 수정 장애가 발생했다. 이후 짧은 장마를 거친 뒤 연일 40도를 오르내리는 가마솥더위와 가뭄이 지속되면서 복숭아가 큰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더욱이 이곳 복숭아 농가들은 농작물 재해보험 혜택이 없다는 이유로 보험 가입율도 저조해 고충이 더 심하다.

석씨는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보험이어야 하는데 정부의 생색내기 정책으로 보험회사 배만 불려주는 꼴” 이라고 비판했다.

농가들은 “태풍, 우박 등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과수가 낙과하거나 유실돼 실제 피해 규모를 확인할 수 있지만, 폭염·가뭄은 피해를 산정하기 어렵다”며 “폭염 등으로 발생한 과수 손해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면 품질 저하에 따른 수익 감소를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보험 손해 평가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폭염피해 현장을 함께 방문한 김지식 한농연중앙연합회장은 “이상기후에 의한 자연재해이기 때문에 농자재비 및 영농자금 상환유예, 농작물 재해보험 제도개선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 농협 등에 강력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세현 한농연경기도연합회장도 “경기도와 경기도의회, 경기농협 등에 복숭아 피해농가 지원 대책을 적극 건의하고 한농연 차원에서 복숭아 유통소비촉진 운동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천=이장희 기자 leejh@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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