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대규모 자본 중심 경제체제에서
낮은 수익성으로 고통 받는 농업·농촌
협동과 사회적 경제에서 답 찾아야


문재인대통령이 사회적경제를 몇 번 언급하고,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에서 사회적가치를 얼마나 실현했느냐에 100점 중 20점이나 배정하는 행정안전부의 평가편람이 발표되면서 현 정부에서 사회적경제는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사회적가치 전담 부서가 만들어지고, 현장의 사회적경제조직들에게 어떤 활동과 사업을 할지 묻고 다니고 있다. 공무원 교육을 연구하는 어떤 박사는 요즘 새롭게 만들어지는 공무원 교육프로그램에는 대부분 ‘사회적경제’와 ‘4차산업혁명’이란 말이 들어간다고 전했다.

그런데 그동안 오랫동안 장관과 농정비서관이 공석이어서 그랬는지 농식품부와 농업계에서는 이런 급작스러운 변화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다. 여러 사람들에게 들리는 바로는 청와대에서 주도하는 사회적경제 드라이브에서 농식품부는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농식품부도 이런 평가에 대해 억울하거나 서운할 수 있다. “협동조합의 맏형이라는 농협을 지도 감독하는 것만 해도 힘들다.” “사회적경제란 말이 나오기 전부터 영농조합법인, 농업회사법인, 들녘경영체, 농촌공동체회사 등 지금 보면 사회적경제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농촌사회에 대한 여러 정책이 모두 알고 보면 사회적경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애정어린 눈으로 보자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농민들의 눈이나 비농업계의 눈으로 본다면 이런 말들은 그렇게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에게 다가와 꽃이 되었다’라는 시구처럼 의미를 부여하여야 정체성이 만들어지는데, 그동안의 정책방향을 보면 이들 정책들을 사회적경제로서 의미부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폐쇄적인 공동체를 만드는데 기여하게 하였다.

영농조합법인 육성 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회적경제라고 말하기 무색하다. 영농조합법인의 개인 투자한도는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아, 사실상 개인사업자로 전락한 경우가 많은데도 지도감독은 소홀했다. 법인을 운영하면서 민주적 역량을 키우는 것도 정책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일본의 집락영농을 벤치마킹한 들녘경영체도 마을공동사업 활성화라는 본래의 취지는 망각하고 단순한 쌀 산업 경쟁력 강화에 매몰되었다. 농촌공동체회사도 지원만 받고 뿔뿔이 흩어져 있다.

농협마저도 수십년간의 제도적 특혜에 힘입어 많은 자산과 체계적인 사업시스템을 가지게 되었으나 조합원을 중심에 놓은 민주적 운영을 한다고 하기 어렵다. 지도감독 기능을 가진 농식품부의 영향력도 갈수록 축소되는 듯해 보인다.

대규모 자본 중심의 경제체제에서 이윤을 창출하기 어려운 산업으로서의 농업과 공간으로서의 농촌은 금융업이나 도시와 정반대의 자리에 설 수 밖에 없어 소외되고, 낮은 수익성에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농업과 농촌은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언제나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가 가장 많이 꽃피는 공간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가장 규모가 큰 협동조합은 농업협동조합이고, 사회적경제가 지역을 살린 사례의 상당수는 농산어촌 지역이었다. 농업농촌에게 사회적경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것이고 익숙한 것이다. 계와 두례, 향약은 우리가 자랑스러워 할 전통적 협동조직이며, 농민들은 언제나 함께 살 길을 찾아왔다.

지난 두 정부의 농업정책은 외부의 자본을 유치하여 농업을 살리겠다는 데 초점을 맞춘 면이 없지 않았다. 자본금이 1000억원인 농업회사법인의 경우, 농업인들이 8억만 출자하면 99.2%의 지분을 재벌이 가지고 있어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친 것만 보더라도 기존 농정의 지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재벌과 멀리 있어야 하는 농업정책이 오히려 재벌이 농업에 침투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으로 작동한 아이러니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농민이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농업관련 정책과 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작업을 해야 한다. 다행히 농식품부는 사회적농업 정책을 도입하여 농정패러다임의 변화에 첫 발을 내 디뎠다. 하지만 사회적농업 정책을 사회적경제 활성화의 면피로 삼으면 안 된다.

협동과 사회적경제가 우리 농업농촌의 오래된 전통이듯이, 앞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필수적인 요소라는 철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농정패러다임을 변화시켜야 한다. 긴 공백 후 임명된 이개호 장관의 농정철학의 시금석은 결국 농업정책과 사회적경제를 얼마나 조화시켜 내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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