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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초 만난 ‘도매시장 시설현대화’

‘국비 지원 대신 융자’로
기재부 사업 전환 움직임
재정자립도 낮은 지자체는
사업 미루거나 포기할 수도
노후 시설·장비 개선 외면 우려


예산 당국이 농수산물 공영도매시장 시설현대화사업(이하 도매시장 시설현대화사업)을 융자 중심의 사업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도매시장 시설현대화사업이 암초를 만났다. 이럴 경우 국비 지원이 없어지게 되면서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들, 다시 말해 도매시장 개설자들 입장에서는 시설현대화사업을 정책 후순위에 두거나 자칫 사업 신청을 포기하는 사례까지 나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현재 진행 상황은=도매시장 시설현대화사업은 노후화된 도매시장의 시설·장비를 개선하고 환경변화에 따른 필요 시설 구축 등을 통해 도매시장 내의 농산물 물류 및 유통 효율화 제고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사업 대상자인 중앙도매시장 및 지방도매시장 개설자는 전문기관을 통해 도매시장 시설현대화사업 타당성 검토 등에 대해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연구용역 결과가 타당성이 있을 경우 세부사업 추진 계획서를 수립해 사업을 신청하면 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농식품사업 시행지침이 확정되면 해마다 3월 공고를 통해 시설현대화사업 모집 공고 절차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그보다 5개월이 지난 8월 현재에도 모집 공고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aT 관계자는 “정부(농식품부)로부터 모집 공고에 대한 확정이 나지 않았다. 정부의 결정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농식품부의 2018년도 농식품사업 시행지침서에 따르면 올해 도매시장 시설현대화사업은 이른바 국비 지원인 국고 30%, 지방비 30%, 융자 40%의 재원을 통해 올해에만 245억2700만원의 예산이 편성돼 있다. 또한 2019년 이후에는 약 3600억원의 재정이 투입될 계획이라고 나와 있다.

그럼에도 올해 도매시장 시설현대화사업의 모집 공고조차 이뤄지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예산 당국인 기획재정부가 이 사업의 국비 지원을 융자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국고 30% 전액을 융자로 전환할 것인지, 또는 일부의 국비 지원을 남겨두고 융자의 규모를 확대할 것인지가 분명치 않지만 융자 전환의 움직임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예산 당국의 입장이 융자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융자 전환의 규모가 얼마인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사업의 주체인 농식품부가 공고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 관계자 역시 “기재부에서 이 사업(도매시장 시설현대화사업)을 융자 중심으로 하려는 생각인 것 같다”며 “농식품부에서는 보조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려되는 상황은=이처럼 도매시장 시설현대화사업의 융자 중심 전환 소식이 알려지면서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시설현대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 있는 지자체들은 사업 추진 결정이 미뤄지는가 하면 일부 지자체는 속칭 사업 계획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시설현대화사업에 선정돼 사업이 추진 중이거나 완료된 도매시장은 3곳에 불과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도매시장이 시설현대화사업의 대상이다. 이들 도매시장은 설계된 후 많게는 30년, 적게는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보니 시설이 낙후되거나 현대화된 농산물 유통에 필요한 시설인 저온저장 시설 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부족 시설을 도매법인이나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임시방편에 그치고 있다.

당장 전문가들과 업계는 도매시장 시설현대화사업 추진이 예산을 이유로 발목이 잡힐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출하자인 농업인들과 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농산물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한 전문가는 “도매시장은 불특정 다수인 농민들이 맡긴 물건이 판매되는 공적 기능을 하는 곳이다. 이런 도매시장이 시설이 낙후돼 농산물의 가치가 떨어져 소비자들이 외면한다면 농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궁극적으로는 소비자들도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도매시장 시설현대화사업의 국비 지원이 줄어들게 되면 지자체들이 시설현대화에 관심을 갖겠냐는 우려도 크다. 당장 시설현대화를 위한 타당성 연구용역까지 마친 한 지자체는 기재부의 국비 지원이 줄어든다는 결정에 사업 추진이 어렵지 않겠냐는 얘기를 했다. 또 다른 지자체는 aT의 공모가 확정되면 신청을 하려고 했지만 현재로선 사업 추진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지방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의 입장에서는 국비 지원이 단비와 같은 존재였지만 이마저 없어지면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A 지자체 관계자는 “지방비 30%도 자체 예산으로 감당이 힘들어 도에서 지원을 받아야 가능하다. 그런데 국비 지원이 없어진다면 사실 사업 추진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B 지자체 관계자는 “연구용역 결과 도매시장 이전을 계획하고 있는데 1000억원 이상의 사업비가 들어갈 예정이었다”며 “기재부의 방침이 서지 않아 공모 신청도 하지 못해서 사실상 중단이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전문가들은 도매시장의 역할이 단순히 농산물을 거래하는 시장이 아니라 국가의 농산물 정책을 수행하는 공적인 유통 경로이면서 공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도매시장 설립에 정부의 예산이 투입되고, 도매시장의 운영을 법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예산 부처가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설현대화에 적은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현재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를 보면 국비 지원이 없이는 아마도 정책에서 후순위에 밀릴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중앙 정부의 공영도매시장의 공적 기능을 놓겠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도매시장은 농산물 유통을 위해 필요한 기간시설로 특정인을 위한 시설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매시장을 지을 당시부터 정부가 지원한 것”이라며 “기재부도 도매시장이 농산물 유통에 있어 국가적으로 중요한 요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민 기자 kimym@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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