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셀프 적용’…소비자 응원이 큰 힘이죠”

▲ 충북 음성에서 사람도, 가축도, 환경도 함께 행복한 <자연목장>을 만들어가고 있는 장훈·이연재(사진 왼쪽) 부부.

자연순환농법으로 흑돼지 키우며
소비자 직거래 ‘도르리’ 운영

농사만으론 먹고 살기 힘든 현실
"자존감 지키며 잘 버텨보자"
스스로 최저임금 적용 '새로운 도전'

 

충북 음성군 감곡면에 가면 아주 특별한 돼지 농장이 있다. 올해로 귀농 6년차, 장훈(39)·이연재(38) 부부가 자연순환농법으로 흑돼지 50여마리를 키우며 ‘도르리’라는 이름의 소비자 직거래를 하고 있는 자연목장. 

여기서 도르리란 ‘여러 사람이 음식을 차례로 돌려가며 내어 먹는다’는 뜻의 순우리말로 이곳에서는 한 달에 한 번(매달 넷째주 금요일) 5마리의 돼지를 도축, 구이용·볶음용·찌개용 각 600g 3팩을 한 세트로 묶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한다.

이 목장을 알게 된 건, 우연히 이연재 씨의 페이스북에 게시된 ‘도르리 가격 인상’ 공지를 보게 된 덕분이었다. 그녀는 글에서 요즘 ‘최저임금’과 관련해 오고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국가가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위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최저임금제도. 그런데 최저임금은커녕 연간 농업소득이 수년째 1000만원 선에 불과, 더 이상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 수 없게 되어버린 농민들의 처지에 대해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현실이 자꾸 겹쳤다.

부부가 고심 끝에 한 사람 몫의 2018년도 최저임금(7,530원)을 스스로 적용, 세트당 5만원이었던 도르리 가격을 10월부터 7만원으로 올리기로 결심한 건 그래서였다. 가격인상을 공지하며 그녀는 농업의 사회적·생태적 가치를 인정하는 제도와 분위기가 마련될 때까지 이 나라 농부로 자존감을 지키며 잘 버텨보겠다고 했다. 이들 부부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었다. 폭염이 기세가 여전했던 지난 9일, 농장을 찾았다.


-가격인상을 공지하면서 고민이 많았던 것 같은데.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을 스스로 결정할 수가 없잖아요. 직거래 등을 위해 가격을 책정하더라도 자신의 인건비는 일단 빼놓고 생각하죠. 현재의 벌이로선 이 일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계유지가 안 되니 그동안 고집해왔던 생산방식을 바꾸든지, 판매가격을 올리든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하든지 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혔는데, 일단 소비자를 믿어보기로 한거죠.”(이연재)

사실 이번에 가격을 올린 건 최저임금 때문만은 아니다. 자연목장은 돼지에게 신선한 풀과 함께 다양한 농산 부산물로 직접 만든 발효사료를 먹인다. 문제는 이때 들어가는 소량의 배합사료. 대부분 수입곡물에 GMO옥수수 함량이 높아 대체 사료가 절실했다. 수소문 끝에 최근 국내산 곡물함량이 80~90%나 되는 <오메가 사료>를 찾게 된 것. 가격은 기존 사료보다 1.2~3배 정도 비싸지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또 하나는 포장방법의 변화. 생고기를 배송해야하기 때문에 그동안 스티로폼으로 된 아이스박스를 썼다. “스티로폼 썩는데 500년!!!” 늘 마음이 무거웠다. 연재 씨는 최근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보면서 더는 미루지 말자고 생각했다. 정기배송 신청자에 한해 아이스박스 대신 보냉가방에 배송하고, 회수하는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수거시 발생하는 택배비는 자연목장이 부담할 계획이다.


-그러면, 가격을 올려도 크게 남지는 않겠는걸요.

“그래서 저는 처음에 반대를 많이했죠. 가격을 올리는데 누가 선뜻 좋아하겠어요. 보냉박스를 다시 보내는 것도 귀찮은 일일테고. 사료값이나 보냉가방 비용, 택배비 등을 감안하면 수익은 크게 늘지 않는데 소비자 부담만 키우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고요.”(장훈)


-그런데도 결국 따라오셨네요.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와이프 말이 맞으니까요. 우리가 귀농해 자연양돈을 하게 된 이유가 사람도, 가축도, 환경도 살리는 양돈을 하고 싶어서였거든요. 현실과 이상 사이에 매번 부딪히지만, 결국 옳은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죠.”(장훈)


-공지 이후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한두 명만 있어도 좋겠다 했는데, 벌써 정기배송 신청 인원이 10명이 넘었어요. 지금은 형편이 안 돼 신청 못하지만 응원한다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요. 사실 그동안 누구 하나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자들도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이연재)


-사육두수를 늘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여기서 더 늘리면 현재의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요. 풀이 나는 계절에 풀을 마음껏 주고, 스트레스 없는 건강한 돼지를 키우려면 지금으로선 이 정도가 최적의 두수거든요.”(이연재)


-그렇찮아도 들어오는데, 전혀 축사 냄새가 나지 않아 신기했어요.

“먹는 것과 사육환경 덕분이에요. 일반 양돈농가에서는 6개월 만에 110~120kg의 규격돈을 만들기 위해 고단백사료를 먹이는데, 돼지가 소화를 다 못 시키거든요. 배설물에서 악취가 나는 이유죠. 저희는 파리도 거의 없거든요. 농장을 방문하신 분들은 다들 놀라요.”(장훈)


-현재 가장 걱정되는 일이 있다면.

“대농 위주로 구조조정이 되다보니 쌀겨나 밀기울 등 사료에 들어갈 각종 곡물재료를 구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서 지금은 그게 제일 큰 걱정이고요. 우리는 괜찮은데, 나중에 아들 녀석이 하고 싶다는 거 못해줄까봐 그게 좀 불안하죠.”(장훈)

“먹고 사는거요. 하하. 지금으로선 먹고 살 수만 있으면 농촌을 떠날 이유가 하나도 없거든요. 최대한 지출을 줄이고, 농장 일에 집중해서 잘 버텨봐야죠.”(이연재)

부부는 주변의 농민 분들을 보면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이렇게 먹고 살기 힘든데 왜 계속 농사를 짓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이상을 꿈꿔야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죠.” “남들이 안하면 나부터 해야죠.” “분명 저희와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있을거에요.” 힘들다 하면서도, 항상 긍정으로 끝나는 그들의 말끝에 답이 있는 듯 했다.

앞으로 우리 농촌은 도시에서의 삶보다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돈 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꿈꾸는 이 젊은 부부에게 그 품을 내어 줄 수 있을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내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도르리 신청 블로그 https://m.blog.naver.com/xmr2/221327359131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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