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기 논설위원·친환경농축수산 유통정보센터장

 

가을로 접어든다는 절기상 입추가 지난 7일 이었지만 폭염의 기세가 여전하다. 사상 최악의 살인적 폭염에 인명·재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4일 기준 열사병 등 온열질환으로 신고된 건수가 3095명으로, 이 중에서 사망자수가 38명에 달한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고령의 농민이거나 노약자들이다. 가축이나 농작물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 닭, 오리, 돼지 등이 폐사하고 과일이 터지거나 밭작물이 말라 죽고 있다. 지난 6일까지 무려 453만 마리에 이르는 가축이 폐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6.5%나 많은 수치다. 아침부터 내려쬐는 땡볕 앞에 속수무책으로 한숨짓는 농민들의 심정이 오죽할까.

이번 폭염은 개인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선지 오래다. 더 이상 개인적인 피해가 아닌 국가가 관리해야 할 자연재해, 사실상 재난임을 온전히 보여줬다. 정부와 국회가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하고,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폭염이 포함되도록 법 개정에 나설것을 공언한 만큼 이번 8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규정해 피해 농민들에게 국가 차원의 지원이 꼭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살인적인 폭염이 올해로 끝나지 않고 매년 상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폭염이라는 재난이 이제 변수가 아닌 매년 대비해야 할 상수가 된 셈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폭염의 주요 원인을 기후변화에 의한 온난화로 꼽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성장 중심의 산업화 촉진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기후변화, 이로 인한 온난화 피해가 이제 단순 경고를 뛰어넘어 현실화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금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예상치 못한 폭염, 폭우, 혹한들도 결국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온, 온난화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기후변화는 날씨 및 기후와 밀접한 우리 농업 특성을 고려할 때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최근에 발표한 기상청의 기후변화 보고서를 보면 우리 농업이 처한 상황은 심각하다.

30년 후 제주도와 올릉도에는 눈이 내리지 않고, 봄과 여름은 1개월 더 길어지고, 겨울은 1개월 짧아진다. 2090년에는 아열대 기후로 바뀌며, 2020년에 이어 2030년에는 작물재배가 어려울 정도의 가뭄이 예상된다. 작물의 주산지가 북상하고, 외래 및 돌발 병해충과 잡초가 더더욱 극성을 부리는 기존의 단계를 뛰어넘어 농업 생태계 자체가 뿌리채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국내 농업과의 상관관계를 이제까지의 학술적인 연구와 논의, 부분적 대책 접근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가져올 영향은 어떤 것이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보다 더 면밀하게 고민, 접근하면서 이를 총괄적으로 정책화할 때가 됐다. 농식품부, 농진청, 산림청, 기상청 등 관계기관의 유기적 협력체계 구축과 기후변화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적절한 품종과 기술 개발 등 종합적이고 중장기적인 대응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연차보고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미국, EU, 일본, 중국 등 51개국의 농업정책을 분석한 결과 기후변화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농업정책이 매우 미흡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후변화 대책을 농업 정책의 핵심으로 삼을 것을 권고했다. 맞는 말이다.

이번 폭염을 계기로 기후변화 대응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고, 국내 농업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 그것도 부정적 악영향이 많다는 점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농업정책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때가 됐다. 기후변화에 따른 각종 재난에 농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농산물의 안정적 생산을 도모해 나가는 것이 정부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에 따라 우리 농업의 미래가 좌우될 시기가 왔다. 이것이 이번 살인적 폭염이 우리들에게 준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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