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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건강한 농가를 위한 ‘가족경영협약’
   

김경미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관

처음엔 여성농업인 지위 향상 일환 시작
성과 나누면서 상호 책임의식 공유
가족간 갈등 줄이고 경영 합리화 ‘효과’


“박사님, 귀농․귀촌 농가 교육이나 청년농업인 교육에서 제가 꼭 가족경영협약을 하라고 말했어요. 저에게 성공사례 발표하라고 하기에, 우리집 가족경영협약한 내용을 말하고, 가족이 함께 즐겁게 농사지으려면 이게(협약이) 정말 중요하다고 제일 먼저 말하고 시작해요. 농사짓기 시작하면 가족끼리 갈등이 많은데 반드시 서로 역할을 나누고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2006년 충남농업인교육관(지금의 교육복지관)에서 가족경영협약 워크숍에 참석했던 청양의 김기수․정귀례 씨 부부는 협약을 맺었다. 그 때 받은 협약기념패를 지금도 그 농장에 가면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다. 농장소개 때도 가족경영협약 내용을 가장 먼저 소개한다. 체험과 양봉은 남편이, 고추장 등 가공사업장은 부인이 맡고 있다. 역할분담에 대한 책임경영을 통해 수익구조도 나아지고, 판매장을 만드는데 딸과 사위도 참여하게 됐다. 벌써 13년째 협약내용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해가는 그 농가를 보면서 한 편으로 마음이 뿌듯해진다. 도대체 그 협약이 무엇이기에?

가족경영협약이란 말은 어려워 보이지만, ‘(농업종사)가족+경영+협약(약속, 규칙)’으로 풀어서 생각하면 의외로 쉽다. 농사에 실제로 참여하는 가족끼리 농업경영의 목표, 경영계획 수립, 역할 분담, 이익의 분배, 경영이양, 농사 외 생활의 규칙 등을 정해 실천하도록 약속하는 문서를 만드는 것이다.

가족경영협약은, 농업경영체계를 근대화하기 위해 고민하던 1960년대 일본에서 민간주도로 진행된 부자영농협약이 그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유럽과 달리 법인체계를 갖추기에는 그 규모가 작고 가족중심의 경영이라는 약점을, 농업에 종사하는 가족끼리 서로의 역할과 임무, 수익의 배분 등에 대한 규칙을 명문화해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부자영농협약은 1990년대 들어오면서 세계무역기구의 출범을 앞두고 농가체질 강화를 위한 정책으로서 농림수산성에서 추진하게 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대부분의 농가는 부부중심의 노동력으로 경영되고 있었고, 특히 부인인 여성의 영농의욕이 농가성공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이 강조되면서 탄력을 받았다. 농업에 종사하는 가족은 누구라도 자유롭게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하고 의욕을 갖고 농업에 종사할 때 농업이 매력 있는 직업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농사에 참여하는 가족들의 근로조건, 이익의 분배, 경영참여와 역할분담, 장래 경영이양 등 다양한 문제를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풀어갈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장치로 가족경영협약(일본에서는 가족경영협정)으로 변화했고, 각 농업기술센터에서 기본적으로 가족경영협약을 지원하게 됐다. 1994년부터 2017년 3월까지 총 5만7166농가에서 협약을 체결했는데, 전체농가에 비해 그 비율이 낮지만 전업농가의 약 18~20% 수준에 이른다. 2007년부터는 가족경영협약을 기본으로 해 농가의 중장기경영계획 수립으로 기술지도방향이 바뀌었다. 이와테현 같은 경우는 처음에 가족경영협약을 하도록 한다. 다음으로 농가에서 재배하는 작목별 기술개발과 경영계획을 수립하도록 작목별 전문가가 컨설팅을 제공한 후 다시 경영전문가가 농가전체의 중장기계획을 조율케 하는 종합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의 가족경영협약은 여성의 참여기회 확보(식료농업농촌기본법 제26조), 농업의 지속적 발전시책, 양성평등 진흥(남녀공동 참획) 계획 등에 근거해서 추진되고 있다. 준법인농가로 세제혜택, 협약농가의 가족종사자는 인정농업인으로 경영개선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에 농업경영체 연구의 일환으로 연구자료가 소개됐으나 주목받지 못하다가 농촌진흥청에서 2000년에 여성농업인의 지위 향상 방안으로 검토됐고, 2004년 처음으로 대전에서 22농가 부부가 가족경영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 활동으로 2006년 급속히 증가했고 2007년 한국농수산대학에서 승계농 협약을 시도했으나, 농촌진흥청의 기능개편에 따라 여성농업인 연구기능이 약화되면서 그 맥이 끊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여성농업인의 입에서 입으로 가족경영협약의 매력이 전파되면서 경북, 강원 등에서 꾸준히 진행을 했고, 그 결과 약360여 농가가 협약을 체결했다. 일본은 1년 반 정도 교육을 거쳐 진행하지만 우리나라는 1박2일의 워크숍을 통해 진행하는데도 실천비율이 매우 높은 것은 여성과 승계자들의 요구가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본 전문가들의 평이기도 하다.

“가족끼리 농업에 대한 의논을 이렇게 하라는 방법을 배우는 교육이구만요.” 올해 6월 대전에서 이뤄진 교육에 참여한 한 경영주의 이야기다. 협약을 한 농가는 가족끼리 농업경영에 대한 대화가 늘었고, 경영책임 의식이 커졌고, 성과를 나누게 되니 보람이 있고 의욕이 높아져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된다고 했다. 사람답게 산다는 느낌을 느끼고 가족끼리도 화목해졌다고도 한다. 제4차 여성농업인육성 5개년 계획에서도, 농촌진흥청에서도 본격적으로 강사를 양성해 가족경영협약을 확대한다 하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농업을 잇기 위해 고향으로 간 승계자들도 부모와 갈등 때문에 영농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례도 많다 하니, 이번 기회에 행복하고 건강한 농가를 위해 가족경영협약에 대한 공론화를 기대한다. 여성과 승계자의 지위 향상이 아니라 합리적인 농가경영 개선 지원 정책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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