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십 평생 살면서 내가 이렇게 좋아진 적이 없다.”

최근 많은 이에게 ‘인생작’으로 회자되며 인기리에 종영된 ‘나의 아저씨(tvN)’란 드라마엔 회사에서 잘리고 사업에도 실패해 사채 빚에 허덕이던 ‘상훈’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드라마가 전개되며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던 상훈은 청소 일을 새롭게 시작하며 조금씩 사회와 소통하고, (신용불량자라 통장을 만들 수 없어) 방 장판 밑에 돈도 모아간다.

그런 상훈이 어느 날 어렵게 모은 돈을 한 방에 쏟아붓는 결정을 하게 된다. 평생 서로 의지하며 살았던 손녀를 두고 세상을 떠나야했던 한 할머니의 장례식장을 찾은 상훈이 썰렁한 장례식장을 보고 수십여 개의 화환을 준비한 것이다. 그 손녀의 직장 상사였고 대기업 이사기도 한 상훈의 동생이 이 사실을 알고 “형이 쓴 돈 내가 줄게”라고 하자 그는 “노(No)노노노노. 이 감동을 훼손하지 말라. 오십 평생 살면서 내가 이렇게 좋아진 적이 없다. 나를 막 안아주고 싶다”고 밝히며 뿌듯해한다.

평생 쓸쓸하게 살아온 고인의 마지막 가시는 길마저 외롭게 할 순 없다는 그의 간절한 바람이 화환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것이 ‘꽃’이 아닌 ‘돈’이었다면 그런 감동이 느껴졌을까.

“화환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얼마 전 한 유력 정치인 자녀의 결혼식 청첩장에 달린 문구다. 정치인들의 애경사 청첩장뿐만 아니라 최근 지방선거 이후 진행된 당선자들의 취임식 초청장에도 이런 친절한(?) 설명 문구는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화훼업계에선 아직 꽃을 뇌물로 보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라며 씁쓸해하고 있다. 아니면 그 반대로 꽃은 돈이 아니라는 물질 만능주의가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무엇이 됐든 ‘일상에서의 꽃 생활화’로 기쁨은 크게 높이고, 슬픔은 깊게 나누는 문화 선진국을 대입해 볼 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화환만 정중히 받겠습니다.” 이런 안내 문구 어디 없을까.

김경욱 유통팀 기자 kimkw@agrinet.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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