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부부, 사과 과수원서 내일을 찾다

▲ 충북 청주시 미원면에서 농업회사법인 ‘애쁘르팜’을 운영하고 있는 윤보근·정은혜 부부, 정지혜·박종관 부부.(사진 왼쪽부터)

시부모 농장 이은 동생 따라
언니네도 도시생활 접고 귀농

‘안전한 먹거리 만들자’ 원칙
제초제·비료 없이 사과 재배
100% 직거래로 인기만점
비트·옥수수·고구마 등
상품군 다양화…주문고객 유지


충북 청주시 미원면 어암리에 자리한 사과 과수원인 농업회사법인 ‘애쁘르팜’엔 20~30대 청년농업인 4명의 땀과 노력, 사랑, 꿈들이 싱그러운 사과처럼 영글어가고 있다. 2014년 결혼한 1991년생 동갑내기 부부 윤보근·정은혜 씨가 부모의 뒤를 이어 사과 과수원을 시작한 지 5년차를 맞은 올해, 정은혜 씨의 언니 부부인 1986년생 동갑내기 박종관·정지혜 씨도 도시 생활을 접고 이 곳에 합류했다. ‘흙수저’라는 말이 요즘 젊은 세대의 단면을 드러내는 부정적인 의미의 ‘꼬리표’로 따라붙고 있지만, 애쁘르팜엔 ‘흙’(농업)에 자신들의 청춘을 담은 또 다른 의미의 ‘흙수저’를 자처한 청년농업인들이 있다.

이 일대에서 태어나 자란 윤보근 씨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귀농한 부모님을 따라 이 곳에서 성장한 정은혜 씨는 초등학교 동창이자 첫 사랑이다. 부모에 이어 농업에 뛰어들 결심을 한 남편 윤 씨는 농업고등학교, 한국농수산대를 다니며 꿈을 키웠다. 부인 정은혜 씨도 귀농한 부모님이 양채류를 재배하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터라 농사에 관심이 많았다. 둘 다 자연스럽게 인생 설계를 농업 분야에서 찾았다. 남편 윤 씨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사과 과수원을 기반으로 ‘애쁘르과수원’을 시작했다. ‘애쁘르’란 이름은 남편 윤 씨가 지었다. ‘애플’을 빠르게 읽으면 나는 소리에서 착안한 재치 있는 이름이다. 이들의 얘기는 방송과 대중 매체 등을 통해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결혼 5년차인 올해, 이들 부부에 든든한 동반자들이 생겼다. 정은혜 씨의 언니 부부인 1986년생 정지혜·박종관 씨(정지혜 씨는 ‘빠른 87년생’이라고)가 지난 6월부터 사과 농장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됐다. 일손을 돕기 위해 종종 들렀던 언니 부부가 도시 생활을 접고 귀농을 결심한 것이다. 남편 박종관 씨의 결정이 중요했다. 부인 정지혜 씨도 동생 정은혜 씨와 마찬가지로 귀농한 부모의 영농일을 도와주며 자라 낯설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박 씨는 농업과 전혀 관련이 없었던 삶을 살아왔었기 때문.

“처음엔 일손을 도와주러 몇 번 오다가 ‘같이 농장 일을 하면 어떨까’하는 ‘농담 반, 진담 반’ 얘기가 나왔는데, 점점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자라온 환경은 농업과 전혀 관련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답답한 도시 생활이 싫기도 했었고요. 처제 부부가 과수원을 가꾸며 ‘알콩달콩’ 살아가는 것을 보고,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리게 됐어요. 이 곳에 온지 두 달이 조금 넘었지만, 도시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없어졌어요. 다만 여름철 날이 덥다보니 새벽 일찍 일하고 밤늦게 일하고 있어 고되긴 하네요.” 박 씨의 말이다.

이렇게 의기투합한 4명의 청년농업인들은 지난달 ‘애쁘르팜’이라는 이름으로 농업회사법인으로의 전환을 마쳤다. 본격적으로 영농 활동에 전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정부 정책 지원자금을 받기 위해서다. “청년농업인들의 큰 어려움 중 하나가 초기 정착 자금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에요. 그나마 저희의 경우는 사과 농장이라는 기반이 있어서 수익을 내고 있지만, 무턱대고 귀농한 청년들은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겁니다.” 윤보근 씨는 이렇게 말한다.

일꾼이 2명 더 늘어나니 좋은 점이 훨씬 많단다. 정지혜 씨는 여러 장점 중 하나로 분업화를 들었다. “동생 은혜는 판매를 전담하고 있고, 저는 디자인 쪽 관심이 많아서 팜플릿 제작이나 홍보 업무를 나눠서 하고 있어요. 제부와 남편은 영농일을 분담해서 하고 있고요. 아무래도 동생 부부끼리만 하면 한계가 있는데, 가족들이고 마음이 잘 맞다보니 4명이서 역할 분담하는 분업화가 잘 이뤄지는 것 같아요. 물론 동생 은혜와 제부가 많이 중심을 잡아주고 있지만요.”

애쁘르팜은 사과(8000평), 비트(3000평), 옥수수, 고구마 등을 재배하고 있고, 사과즙과 사과비트즙도 만들고 있다. 주품목은 당연히 사과다. 판로의 100%가 직거래인데, 사과가 나오는 시기가 한정되다보니 주문 고객들을 유지하기 위해 비트, 옥수수, 고구마 등을 함께 재배해 상품군을 다양화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올해 처음 재배한 옥수수는 이미 완판됐다고. 사과 품질도 뛰어나다. 이 일대가 고랭지 청정지역으로 630미터 해발의 신선봉과 달천 사이에 위치해 일조량이 많고, 일교차가 커서 사과의 당도가 높은 편이다. 여기에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제초제와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부모님이 운영하는 축사 퇴비를 직접 미생물로 거름을 만들어 사용하는 등 갖은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농산물우수관리인증(GAP)도 받았다.

“농사는 인성이라고 생각해요. 인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농부가 농사지은 농작물은 절대 소비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부모님께 배웠던 철학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쉽지 않지만 정직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정은혜 씨가 ‘야무지게’ 말한다. 은혜 씨는 이달 출산을 앞두고 있지만, 수확이 얼마 남지 않은 탓에 무거운 몸을 이끌면서도 농장 일에 열심이다.

애쁘르팜은 올해 5년차를 맞으며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자체적으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꾸준히 한 발씩 내딛었고, 그런 애쁘르팜의 사과를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올해는 쉽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올해 봄 냉해피해와 여름철 폭염으로 인해 수확량이 가장 많았던 지난해의 절반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애쁘르팜을 일구는 청년농업인들의 얼굴은 밝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일, 그리고 꿈이 있기 때문”이다. 애쁘르팜이 앞으로 더 기대되는 이유다.

청주=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농림축산식품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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