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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고랭지 재배 현장은] “밤마다 쪽잠 자며 밭에 물 대주기···수급 차질 없을 듯”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졌던 7월의 마지막 날, 국내 최대 배추·무 취급 전문 도매시장법인인 대아청과 관계자들과 평창 진부·대관령, 강릉 대기리·안반데기 등 강원도의 주요 고랭지 작물 산지를 찾았다. 하루 최저 기온이 30℃를 넘어 초열대야까지 나타난 2일 밤엔 다시 야간작업장을 찾아 작업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에 고랭지 재배 현장에서 만난 농가와 산지유통인, 농협 관계자들은 유례없는 무더위와 사투를 벌이면서도 밤을 새 밭에 물을 뿌려가며 폭염을 이겨내고 있었다. 여기에 최근 비까지 내려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큰 우려보다는 작황이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한 달 전 파종·정식이 돼 이제 막 생육이 진행되고 있는 작물을 중심으로 9월에 나올 물량은 홍수 출하의 우려도 있었다. 야간작업장에서 만난 산지유통인들은 배추와 무의 생산구조를 정확히 인식하고 알려야 한다는 당부도 전했다.
 

▲ 강릉 대기리의 한 배추밭에서 도매시장과 산지유통 관계자들이 고랭지 배추 출하와 관련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대아청과 동행 취재
무더위에 결구 늦어졌지만
작황 크게 나쁘지 않아
8월 말 이후 물량 회복 무난
되레 9월엔 홍수출하 걱정

관리비용 증가 부담 커지는데
일부 물가 상승 호들갑 허탈
‘소비 찬물 끼얹을라’ 걱정


“폭염으로 결구가 늦게 되는 등 생육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다만 언론에서 그렇게 호들갑 떨 정도로 물량이 망가지지는 않았고, 추석과 김장 물가 걱정이라고 설레발도 치는데 9월엔 오히려 물량이 몰릴 우려도 있습니다.”

안반데기와 대기리를 중심으로 56만여㎡ 규모의 고랭지 배추와 무를 재배하고 있는 조용학 씨는 9월에 출하될 안반데기 배추 물량을 바라보며 이 같이 말했다. 조 씨가 바라본 안반데기 배추밭에선 뙤약볕을 비웃기라도 하듯 정식한 지 한 달 즈음 지난 고랭지 배추가 푸른빛을 띠며 보기 좋게 자라고 있었다.

조 씨는 “몇 해 동안 가뭄을 겪으면서 고랭지 지역의 관개 시설은 상당히 잘 갖춰져 있다. 매일 밤 차에서 두 시간씩 쪽잠을 자며 물을 대주면서 작물을 지켜내고 있고, 어제 내린 비로 일정 부분 해갈도 됐다”며 “8월엔 결구가 늦어져 물량이 지연 출하돼 가격이 오를 수 있지만 8월말 이후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오히려 ‘집중호우 뒤 폭염’이라는 이상 기후만 없다면 9월 출하될 곳은 현재 양호한 작황 속에 재배면적이 증가했고 8월에 나올 물량의 출하도 지연되고 있어, 현재로선 9월엔 물량이 몰릴 우려가 물량이 부족할 전망보다 더 앞선다”고 설명했다.

최효섭 농업회사대농영농법인 대표도 “가문 것은 어떻게든 살려낼 수 있지만 호우엔 장사 없다는 옛 어른들의 말처럼 최근의 폭염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8월 말 이후 비가 자주 내리는 것”이라며 “비로 인해 무름병이 발생하는 것보다 최근의 폭염이 오히려 낫다. 폭염으로 고랭지 산지가 무너졌다고 우려를 너무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들이 걱정하는 건 ‘치솟는 관리 비용’과 ‘언론의 편향된 보도’에 있었다.

평창 진부에서 만난 권오덕 씨는 “관개 시설과 자재비, 인건비 등 평(3.3㎡)당 적어도 1000원에서 2000원 정도의 후기 관리비가 더 들어간다”며 “특히 출하가 지연되면서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산지유통인 조수영 씨도 “물량이 줄어들진 않아도 배추와 무 크기는 잘은 물량이 많을 것 같다”며 “관리 비용은 많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자칫 소비와 시세가 받쳐주지 못하면 어려움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속에 수급 정책의 중심을 비축보다는 관개 시설 및 자재 지원 등 산지 지원에 둬야 한다는 조언도 나오고 있다.

김명배 대아청과 팀장은 “위급한 상황을 대비해 비축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산지에 와보니 농가와 산지유통인들은 비축보다는 생산 지원이 수급 정책에서 더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다”며 “당장 올해도 관개시설 지원이 잘 된 곳은 큰 무리 없이 생육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언론에서 제기되고 있는 ‘폭염에 고랭지 무너지고, 추석, 더 나아가 김장 물가까지 우려된다’는 식의 보도도 고랭지 산지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유영환 대관령원예농협 조합장은 “8월말 이후엔 물량이 회복되고 9월엔 오히려 물량이 늘어날 수 있다”며 “특히 농산물값은 수십 년간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 (배추와 무 가격이 소비자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된다고) 배추와 무 가격이 조금 올라 당장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여론이 조성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도 최근 배추와 무 가격 상승은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대체제 물량 증가와 낮은 시세 등 여러 정황을 봐도 배추와 무에 너무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정수 대아청과 대표는 “앞으로 날씨라는 변수가 있지만 적어도 8월말 이후면 상황이 평년 수준과 비슷하게 흘러갈 것 같다. 그렇게 큰 우려를 내세우며 소비를 떨어트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며 “특히 여름철 주 소비 채소류이자 배추와 무 대체 품목이기도 한 열무와 얼갈이 등 대체 채소 물량이 많고 이들 품목의 시세도 낮아 최근의 채소 상황이 가격 상승으로 고민할 단계는 아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일부 언론에서 비교하고 있는 평년값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현재의 농산물 평년값은 국민적인 아픔으로 소비가 극도로 침체됐던 2014년(세월호 사고)과 2015년(메르스 사태) 농산물 가격이 포함된 시기의 평년값으로 농산물 평년값이 상당히 낮게 책정돼 최근 조금만 농산물 가격이 올라도 상당히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다만 시장에선 ‘조기출하’를 독려할 필요성은 있다고 당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산지의 어려움은 알고 있지만 순차적인 출하가 정말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며 “뒷시세를 기대하고 출하를 늦추기보다는 조기 출하 독려가 지금 시점엔 더 요구된다”고 산지에 당부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 지난 2일 오후 11시 평창군 진부면에서 유통인 이정상 씨가 외국인 근로자들과 함께 무와 배추밭에 물을 주는 중에 양수기에 주유를 하고 있다.

●야간 작업장에선
“중간유통상인이 폭리? 포전매매 오해 씻어야”

농가 자금력·정보 파악 한계
80% 이상이 포전계약 거래
무·배추 생산구조 제대로 알고
소비자 인식 개선 시급


일부에서 제기하는 중간 상인들이 큰 폭의 마진을 취한다는 얘기는 배추와 무의 생산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일이다. 초열대야 현상까지 나타난 지난 2일 밤 고랭지 산지의 작업 현장에선 이런 잘못된 인식을 개선해야 정부 정책이나 소비자 인식도 바뀔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해가 지기 시작하자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고랭지배추 농가들은 야간작업을 위해 밭으로 모여들었다. 햇볕이 뜨거운 낮에 무 배추밭에 물을 주면 식물 잎에 떨어진 물이 뜨거워지면서 작물이 피해를 입기 때문에 밤에 작업을 하는 것이다.

무 16만9000㎡, 배추 3만3500㎡를 경작하는 이정상 씨는 6명의 내외국인 근로자와 함께 14대의 양수기를 설치하고 스프링클러를 이용해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작업을 했다. 이들의 밤샘작업은 90분 단위로 양수기에 급유하고, 스프링클러를 이동시키고, 과열로 고장 난 양수기를 고치고, 물 호수가 터지면 수리 하는 것이다. 야간 물주기 작업은 적어도 2∼3일에 한 번씩 해야 하며 1회 비용은 인건비와 유류비 등으로 150만원 정도 들어간다.  

같은 시간 강릉시 왕산면 안반데기 배추밭에서 박모 씨는 조금 다르게 물주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 물이 없어 1만6000ℓ 물탱크가 장착된 트럭을 이용해 7km 떨어진 곳에서 물을 운반하고 다시 이곳에서 양수기를 이용해 밭에 뿌렸다. 작업비가 2배로 들어간다.

뜻밖에도 이날 야간작업을 실시하는 무와 배추밭 주인들은 이정상 씨와 박 씨를 포함해 80% 정도가 농사와 유통을 같이하는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소속 유통인들이었다. 한 여름에 공급되는 무·배추의 90%를 차지하는 강원도 고랭지채소 농업의 특징은 현장에서 농지를 소유하거나 임대한 농업인들이 봄부터 모종과 밭갈이작업을 해 밭에 모종을 옮겨 심은 후 20일을 전후해 80% 정도가 포전매매형식으로 중간 상인으로 불리는 유통인들에게 매매되기 때문이다. 매매 이후에 물을 주고, 약을 치고, 영양제를 공급하는 등 모든 작업을 포함해 마지막 수확해 도매시장에 출하하는 것까지 유통인들이 실시한다.

정식 후 17일된 배추밭 1만4200㎡를 유통인에게 매매한 진부면 이웅재 씨는 “현실적으로 자금력과 시장정보를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는 농업인들이 무 배추를 끝까지 생산해 출하하는 위험을 감수하기는 어렵다”며 “농가들은 정식 후 일정한 가격이 형성되면 유통인들에게 넘기고 당귀와 고추 등 다른 농사에 전념한다”고 설명했다.

백현길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장은 “고랭지채소 농업의 이런 이중적 구조 때문에 가뭄이나 폭염대책이 무와 배추로 효율적으로 투입되지 못하는 맹점이 있고, 일부에선 유통인들이 마진을 많이 받는다는 오해도 생긴다”며 “정책당국은 현장의 이런 문제들을 파악해 안정적이고 근원적인 수급대책을 세워야 생산자와 소비자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백종운 기자  baekj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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