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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여성농업인 생활수기 공모전 수상작①] 감곡마을로 시집와서 출세한 여자

성의정/경남 의령/일반부문 최우수상

대기업 다니며 독신 꿈꾸다
언니 소개로 시골 청년 만나
한 달 만에 결혼, 의령으로
한우 키우고, 옥수수 농사도
 
새마을 부녀회 활동 등 통해
여성농업인과 활발히 교류
마을 어머니 지원 등에 업고
2011년, 여성이장으로 뽑혀

‘인생전시회’ 등 마을 위한 노력
입소문 타고 20여회 방송 소개 
농장 블로그는 ‘SNS마케팅상’    
최근엔 ‘작은 한과 농장’ 만들어

나는 지금으로부터 19년 전 친언니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한 달 만에 농촌마을인 경남 의령군 감곡마을로 시집을 왔다. 대기업을 다니며 독신으로 살겠다던 내가 농촌 총각에게 시집을 온 일은 가족들과 친구들에겐 놀라운 사건이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도시생활과 동생들 뒷바라지하던 친정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의 이상형과는 전혀 다른  농촌 총각에게  점점 빠져 들었다. 검게 그을린 그의 피부가 성실함을 말해 주는 것 같았고, 남자다운 모습이 나를 설레게 하였다. 그와의 대화 속에서 일찍 홀로되신 시어머니에 대한 잔잔한 사랑이 느껴졌다. 나에게도 홀로 계신 친정엄마가 계셨기에 시집가서 시어머니 모시고 정말 잘 살아야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먹었다. 앞으로 나에게 닥쳐올 고난은 전혀 예감하지 못하고 꿈에 부풀어 남편의 손을 잡고 감곡마을로 향했다.

남편은 20여 마리의 한우를 키우느라 마을에서 비켜난 곳에 축사를 지었고, 축사 옆 벽돌로 지은 단칸방에서 우리는 신혼살림을 차렸다. 산 밑 외딴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지만 신혼 내내 10분 거리에 있는 어머니댁에서 아궁이에 불을 떼가며 밥 해먹는 문명생활을 해야만 했다. 처음엔 재미 삼아 밭일도 따라 나섰다. 일을 시키는 대로 곧 잘 하니 나에게 점점 많은 일들이 주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농사일들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시집와서 남편에게는 빚이 5000만원이 있다는 것과 아주버니들 명의로 된 땅을 빼면 300평이 유일한 남편의 땅이었다. 그야말로 가난한 집 막내아들에게 시집와서 도시에 나가 있는 장남 몫까지 집안 대소사를 챙겨야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감곡마을 홀로되신 어르신 20여분이 살고 계셨고,  마을 앞으로 낙동강이 굽이 쳐 흐르고 있었다. 바다를 좋아했던  나는 시집와서 큰 물난리를 여러 번 겪었다. 태풍 ‘매미’가 마을을 덮쳤고, 마을 앞 제방이 터졌다. 농경지가 물바다가 되었다. 크고 작은 물난리를 매년 겪으면서  쓰러진 벼를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일으켜 세워야만 했다.

시설하우스로 찰옥수수 농사를 짓던 우리집은 봄이면  바람과 싸워야 했다. 바람이 회오리를 쳐서 비닐을 찢어버리고 쇠 파이프로 만든 옥수수하우스를 무너뜨렸다. 바람이 그렇게 무서운 존재인지 나는 농사를 지으면서 알게 되었다. 산 입에 거미 줄 칠 수 없어 우리 부부는 새벽까지 날을 새며  복구를 해야 했고, 농사가 잘못될 때 마다 나는 농사짓는 남편을 원망했었다.
 


그때는 몰랐었다. 내가 선택한 농촌의 삶이 그리 만만한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살면서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었다. 날이 갈수록 나는 여기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마을 앞을 지나가는 버스를 보며 친정집이 그리워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날. 몸이 아파도 쉴 수가 없었다. 옥수수하우스에서 옥수수 옆순을 따느라  마을어머니들이 일을 하셔서 들밥을 해야 했다. 점심을 가지러 온 남편에게  먼저 짜증을 내었다. “내가 이집 부엌댁이냐, 촌에 데리고 와서 네게 해준 게 뭐가 있냐”라고 말했다. 남편은 내말이 끝나자 애써 지어놓은 음식을 엎어버렸고, 유리그릇이 깨지면서 나의 발가락에서 피가 나기 시작하였다. 점심을 가지러 온 남편이 늦어지자 시어머니께서 오셨다.

엉망이 된 음식을 보시더니 “촌으로 시집 온 여자 중에 일 안 하고 밥 안 하는 여자가 있더나, 다 너거들 잘 살라고 이 고생을 하는데, 밥하는 게 귀찮거든 하지마라, 나도 이제부터 일 안할란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머리가 아파왔다. 남편이 미워지고 시어머니께 서운한 마음이 들어 한동안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았다.

이후에도 남편은 몇 천 만원의 농기계를 외상으로 들고 오기를 반복하며 빚을 늘려갔다. 남편이 농기계를 사오는 날이면 어머니의 화살은 나를 향했다. 남편이 정말 미워졌다.

이런 저런 시골살이로 견딜수 없는 절망이 빠졌다.  남편과 헤어질 생각으로 마산 동생 집으로 보따리를 쌌다.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나는 감곡마을로 돌아와야 했다. 나의 배속에는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세 아이가 태어났고 나는 외로웠던 마음을 어린 아이들에게 의지하며 살았다. 농사가 만평으로 늘었고 젖먹이 막내를 가슴에서 떼어내고 들로 나갔다. 농사 일이 많이 힘들었지만 10년 만에 30평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지었다.

단칸방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자면서 부딪혔던 일들이 새집을 지어지면서 조금씩 해결되었고,  끝이 없을 것 같은 시집살이도 할머니의 손주사랑에 조금씩 너그러워졌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마을회의가 소집이 되었다. 젊은 사람이 없는 감곡마을에서 나는 어르신들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었다. 마을어르신들께서 새마을지도자를 맡아서 해보라고 하셨다.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뜻에 따르기로 했다. 새마을 부녀회 활동으로 다음 해는 자원봉사회원과 학교 운영위원장까지 맡아서 하게 되었다.

밖으로 나가면 힘든 농사일과 시집살이 할 시간이 줄어들 거라는 불순한 생각으로 시작한 활동이었지만,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외출이 뜻밖에 이웃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여성 농업인들을 만났다. 그녀들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존재하고 활기가 넘쳐났다. 나와는 정 반대의 모습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녀들과의 만남은 늘어갔고 나는 그녀들에게서 경험담과 노하우를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에게서 격려와 응원을 받고 있었다. 나와 같이 농업의 길을 걷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는 게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2011년은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 해였다. 마을이 생기고 남성들만 해오던 마을이장 자리를 마을어머니들의 손으로 여성이장을 뽑으셨다. 마을어머니들께서 열심히 활동하는 나를 눈여겨보시고 어머니들의 심부름꾼으로 만드셨다. 여성이 이장을 한다는 것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고 믿고 있는 농촌이었다.

3년간 이장직을 해 나가면서 나는 마을어머니들의 마음을 얻기 시작했다. 농촌마을에서 어르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생명과 안전을 지켜드리는 것이었다. 자녀들을 도시로 떠나보내고 혼자 계시니 생명의 위협을 늘 느끼며 살고 계신다. 밤새 잘못되시거나 응급상황에 놓이는 일들을 지켜봐 온 나는 의령군에서 최초로 시행하여 전국에서 벤치마킹하는 공동거주제를 2011년도에 감곡마을로 유치시켰다.  

7명이상의 마을어머니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의 건강을 챙겨주시고 위급상황에 처하면 마을 젊은이들에게 알려 오신다. 집집마다  들던 에너지가 절약되는 효과도 크고 혼자 지내면 입맛이 없어 식사를 거르시는데 함께 먹으니 밥맛이 꿀맛이라고 하신다.

여러 어머니들이 함께 살고 계시니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었지만, 반평생을 함께 살아오신 가족 같은 사이라 금방 풀어지셨다.

늦은 나이에 대학 진학을 했다. 봉사와 이장직을 잘 수행하기 위해 배워야 했다. 맞춤형복지를 제공하기 위해서 먼 길을 오가며 사회복지와 보육교사, 심리상담사 자격을 갖추었다. 그리고 농식품부 여성리더십아카데미 과정부터 의령군 농업기술센터 교육과정을 매년 받고 있다. 알면 알수록 길이 보이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선명해 지기 때문에 나는 배움의 길을 늘 걸어왔다.

마을의 위험한 환경들을 개선함은 물론이고, 내가 배운 것을 마을어머니들께 다시 가르쳐 드린다. 건강박수와 한글, 전통놀이, 향토음식과정 등을 가르쳐 드렸다. 어머니들의 특징을 살려 캐릭터를 개발하고 마을 홍보대사로 임명하여 역할을 드렸다.

2012년도에는 마을이장에서 6개마을 개발사업인 연화동권역사업 추진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내가 큰 자리를 맡아 집을 비우며 봉사하는 동안 남편은 늘 힘들었다. 권역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위원장이 심사를 받아야 하는 날  남편이 농기계 사고로 손을 크게 다쳤다. 봉합수술과 신경수술을 하는 남편 곁을 지키지 못하고 나는 심사를 받으로 갔었다.

남편의 희생은 있었지만 큰 사업의 위원장으로 6년간 나는 책임을 다해 왔다. 가구수 가장 적고 힘없는 감곡마을이 주민이 행복한 감곡마을로 바뀌면서 경상남도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에 출전하여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어머니들 살아생전 좋은 추억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 의령 의병박물관에서 ‘인생전시회’를 열어드렸다. 배고프고 힘들었던 시절을 살기 좋은 오늘로 만들어 주신데 감사드리며 나만의 효도를 해 드렸다. 자녀들이 어머니들의 인생전시회에 참석하여 추억의 시절들을 되돌아보며 딸로 아들로 며느리로 어머니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런 일들이 알려지면서 농민신문에서 취재를 왔고, 전국방송사에서 출연제의가 줄을 이었다. 2011년도부터 20회 넘는 방송을 출연하여 감곡마을을 홍보하고 농산물판로를 개척해 왔다. 그리고 어머니과 잊지못할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SBS 창사특집 5부작 ‘최후의 권력’에 감곡마을 할머니들과 여성이장 이야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감곡마을이야기가 책으로 발간되고 제작사는 그해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마을에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재능기부 해주려는 국악팀과 감곡마을 농산물을 사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하였다.

올해 나는 네이버 블로그 ‘성의정농장’으로  정보화농업인대회 SNS마케팅 활용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시골 사는 이야기를 전하던 블로그에서 고객들이 바른 먹거리에 대한 정보를 얻고  나를 격려하고 응원해 준다.

고객들이 직접 농장을 찾아오고, 나의 농산물을 믿고 지인들에게 소개하는 애정고객이 많이 생겨났다. 고객들에게 받은 사랑을 나는 재능기부로 다시 나누고 있다.

농촌 여성들에게 리더십 노하우를 전하고 농산물 직거래 방법을 가르치는 여성농업인 강사로도 활약 중이다. 의령군의 여성농업인들과 밤을 잊은 농부들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인 정보를 나누며 함께 하는 농업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올 해 감곡마을 어머니들과 작은 한과 공장을 지었다. 어머니들은 당신의 힘으로 노년을 뜻있게 보내고 싶어 하신다. 나는 그런 어머니들의 심부름꾼으로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다.
지역사회에 봉사활동 한지 어느덧 13년이 되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만큼 남편이 농사일이며 집안 일, 아이들 일까지 더 챙겨야 했었다. 농기계를 여전히 많이 사대고 정리정돈은 안 되는 농부지만 우리 남편은 품이 큰 진짜 남자다.  아내의 능력을 개발해주고 응원해 주는 멋진 남자다.

늘 바쁘게 사는 나를 보며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성의정 나 안 만났으면 시집도 못가고 노처녀로 살았을 긴데 감곡마을로 시집와서 출세했다”고 나를 놀려댄다. 나는 농촌마을로 시집와서 정말 출세한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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