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꽃으로 뒤덮인 무밭…20년 농사에 이런 경우 처음”

▲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의 무 종자 피해로 의심되는 무밭이 흰 꽃으로 덮여있는 현장을 농가가 설명하고 있다.
▲ 위쪽이 종자 피해가 의심되는 종자를 심은 무밭, 아래쪽은 다른 종자를 심은 무밭이다.

2만3000평 밭 전체 추대 발생
같이 심은 다른 종자는 정상
종자회사는 “저온 피해” 발뺌
이달 중순 본격 출하철 불구
“당장 출하할 게 없어” 농가 허탈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20여 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사람들이 무밭을 보고 메밀밭이 아니냐고 하는데 정말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입니다. 그런데 종자회사에서는 피해 보상에 대해 한 마디 말도 없습니다.”

지난 7월 4일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의 한 무밭. 약 7만5900㎡(2만3000평)의 무밭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마치 메밀꽃이 핀 것처럼 보이는 이 무밭은 5월 10일 파종한 것으로 정상적으로 자랐다면 곧 출하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농가 K씨는 이러한 상황을 두고 종자에 의한 피해라고 확신하고 있다.

▲농가의 주장은=K씨는 20여 년 동안 농사를 지어 왔다. 강원도 봉평군에 배추와 무를 심어 왔고 올해는 고성군 토성면에 무와 배추를 심었다. K씨가 고성에 심은 무 종자는 지역 본부장이 추천해 준 S회사의 품종이다. 당초 다른 회사의 품종을 심으려고 했지만 평소 가깝게 지내던 지역 본부장의 추천으로 심었다.

그런데 이 품종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5월 10일 파종을 한 후 6월 중순부터 추대가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1주일이 지나면서 무밭 전체로 추대가 올라온 것이다. 그 결과 현재는 2만3000평의 무밭이 온통 하얀 꽃으로 뒤덮였다.

K씨는 종자에 의한 피해라고 보고 있다. 다른 품종을 심어도 추대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보통 일부에서만 발생한다. 그러나 이번과 같이 전체에서 추대가 발생한 것은 처음보기 때문이다.

K씨는 “그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처음 보는 일이다. 종자를 공급해 준 회사의 직원도 밭 전체에 추대가 올라온 것은 드문 일이라고 했다”며 “이것이 종자 피해가 아니면 무엇이겠냐”고 반문했다.

종자 피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S회사의 품종과 같은 시기에 심은 다른 회사의 품종이다. K씨는 지난 5월 10일 총 8만9100㎡(2만7000평)에 무 종자를 심었다. S회사의 종자를 7만5900㎡(2만3000평)에, 다른 회사의 종자를 1만3200㎡(4000평)에 심었다. 그런데 S회사의 종자에서만 추대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다른 회사 종자의 무는 전혀 피해가 나지 않았다. 이 두 회사의 종자를 심은 무밭의 상황은 육안으로도 확연히 구분된다.

K씨는 “같은 날 같은 밭에 심은 다른 품종에서 만약 같은 피해가 나왔다면 다른 요인이 있을 것이라고 보겠지만 한 품종은 추대가 올라오는 현상이 발생했고, 다른 품종은 전혀 피해가 없다면 분명히 종자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종자업체 대응에 울분=이러한 현상에 대한 해당 종자업체에서의 대응은 K씨의 울분을 더욱 자아내고 있다. 추대가 발생한 현상 이후 두 차례 현장을 찾았다는 종자업체 담당자가 종자의 문제라기 보다는 환경적 요인을 얘기했다는 것이다. 바로 저온 현상을 지적했다는 것.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5월 10일 파종을 한 시기 고성과 가까운 인제 관측소의 기온은 5월 21일 3.5도, 22일 4.3도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고는 평균 10도 안팎을 유지했다. 저온 피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라는 측면이 있다. 여기에 강원도 봉평의 해발 600m 지역에도 같은 날 다른 품종을 파종했지만 추대가 올라오지 않았던 점을 볼 때 해발 40m 지역인 고성 지역의 저온 피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는 얘기다.

S종자업체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제품 출고 당시 통과 기준에 맞는지 확인도 하고, 연구소에서도 종자 문제인지 테스트를 진행 준비 중에 있다”며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는지도 확인하는 등 최대한 상황을 풀어나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추대 발생으로 K씨가 입은 피해가 매우 크다. 당장 7월 중순부터 출하할 무를 전혀 출하할 수 없기 때문이다. 4만3000평에 심은 무가 정상으로 출하된다고 가정하면 5톤 트럭 기준 약 70~80대 분량이다. 현재 가락시장 5톤 트럭 1대당 600만원의 시세를 반영해 정상 출하를 가정하면 4억원 이상의 피해가 예상된다. 여기에 종자비와 인건비 등까지 포함하면 피해는 더 커질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재 종자회사가 피해 상황을 두고 원인을 찾고 있다지만 그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농가가 떠안아야 할 처지에 있다.

K씨는 “솔직히 너무 허탈하다. 농민들에게 종자를 판매할 때와 달리 지금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건 아니지 않나 싶다. 앞으로 어떻게 종자회사를 믿고 종자를 심을 수 있겠나”고 말했다. K씨의 아내는 “밭을 일구는 과정에서 애를 많이 먹었다. 그런데 추대가 올라온 밭을 보면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다”며 “거대 종자회사를 상대로 힘없는 농민들은 하소연 할 곳조차 없다. 종자회사는 본인들 책임이 아니라고 빠져 나가려고 하는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농가에게 온다. 우리와 같은 농민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해 주길 당부한다”고 호소했다.

김영민 기자 kimym@a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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