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고향을 둔 60대 나이 우리세대는 어렸을 때 이맘때쯤이면 아버지와 이웃어른들의 논 밭가는 소리를 수없이 들으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기계문명이 발달해 지금은 농촌 어느 들녘을 가도 논밭에서 소모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필자는 사라져 버린 전통농경문화를 복원하고 전승·보존하기 위해 2009년부터 지역 경로당을 순회하며 겨릿소(겨리를 끄는 소) 밭가는 소리꾼을 발굴해 매년 지역 축제 때마다 ‘겨릿소 밭가는 소리 경연대회’를 주최하고, 선발된 소리꾼을 중심으로 ‘홍천군 겨릿소 밭가는 소리 전승보존회’를 창단해 활동해 오고 있다.

소는 쟁기질 꾼의 소리를 잘 알아듣는다. ‘이려’ 하면 가고 ‘워워’ 하면 멈춰 선다. ‘안소야, 마랏소야 한고랑 올라스거라’ 하면 한 고랑씩 올라선다. ‘해가 서산에 진다 빨리 가자’하면 속도를 낸다. ‘허후, 어후’ 하면 논밭머리에서 두 마리의 소는 발을 맞춰 뒤로돌아서 묵묵히 밭가는 연장을 끌고 나간다. 한참을 갈다 힘이 들어 ‘워워’ 하면, 소는 그 소리를 듣고 멈춰 선다.

이때가 소를 쉬게 해주는 시간이다.

쟁기질 꾼은 논밭머리에 앉아 걸쭉한 막걸리 한 대포를 들이키며 ‘저놈이 논밭을 언제 다 갈아엎나’ 하며 한숨을 푹 쉰다. 이때 소 두 마리는 멍에를 목덜미에 매인 채 부동자세로 서서 눈만 멀뚱히 뜨고 되새김질만하고 서 있다. 쟁기질 꾼은 절대 서두루지 않는다. ‘오늘 못 다하면 내일하지…’

하루 일을 마치고 마구간으로 들어온 소들은 저녁 여물을 허겁지겁 먹는다. ‘천천히들 먹거라 체할라. 그래야 내일 또 논 밭을 갈지’ 아버지의 말을 소는 알아들었는지 그저 여물 먹는 데만 열중한다.

이쯤에서 지금 시대를 돌이켜 보자. OECD 국가 중 한국인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한다. 또한 온 국민이 감정조절을 못하는 극단적 이기주의에 헤매고 있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빨리빨리 서두르는 성과위주의 사고로 인해 거기에 적응 못하는 젊은이들이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나 생각 된다. ‘나 아니면 안 된다’, ‘내 생각이 최고다’ 배려를 모르는 이 시대에 순리(順理)란 단어는 의미조차 없는 것 같다.

만약 조상님들이 논밭을 갈 때 성과를 올리기 위해 쉼 없이 소를 회초리로 때려가며 소리치면서 논밭을 갈았다면 다음날 소는 마구간에서 일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말 못하는 소도 한쪽소가 힘이 약하면 힘센소가 보조를 맞춰주며 논밭을 갈던 모습을 우리세대는 보면서 자랐다.

내 자식의 눈높이를 모르고 무조건 남보다 앞서는 것이 최고인줄 아는 이 시대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 논밭갈이 하는 쟁기질 꾼의 소리처럼 서두르지 말고 아이들을 쉬게 하며 키워봅시다. 조금 속 상해도 옆 사람에게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르쳐 주며 아이들을 키워봅시다. 말 못하는 가축과 논밭을 갈면서 힘든 고생을 낙으로 승화시키며 살아오셨던 조상님들의 지혜를 생각해보며, 옛것을 되살려 새로운 것을 창조해 보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새기는 우리가 됐으면 좋겠다.

홍천 겨릿소 밭가는소리 전승보존회 조성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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