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본·무기술·무연고>

▲ 지난 5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청년농업인연합회와 농어업정책포럼, 생생협동조합, 대안농정대토론회조직위원회, 국민농업포럼 등의 공동 주최로 ‘청년, 농업농촌 정책파티 : 100인의 식탁’ 행사가 열렸다. 

청년, 농업농촌 정책파티
“사업 위주 지원, 경쟁만 유발
현실적 문제 해결 안되고
정책 홍보에만 동원”
청년농업인 육성정책 쓴소리

가장 필요한 건 ‘살 집’
경험 쌓을 수 있는 시간 주고
지역발전과 균형 맞춰가야


“제가 귀농했다고 하면 주변에선 요즘 귀농 청년 지원 정책이 많아져서 좋겠다고 하는데,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아요. 무자본, 무기술, 무연고의 ‘3무’ 귀농 청년농업인이 혼자 힘으로 첫 발을 내딛기가 여전히 어렵거든요.” (김현희 순창귀농귀촌센터 활동가)

“처음에 1년간 농사를 짓다가 한계를 느꼈는데, 빌린 땅 주인이 나가달라고 하더라고요. 1년간 머물 곳을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요. ‘기반 없는 청년농부’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 어른들은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판타지 촌라이프를 꿈꾸는 청년들을 위해 ‘팜프라’라는 회사를 세운 이유에요.” (유지황 팜프라 대표)

“청년농업인들이 정부의 정책 홍보에 활용되면서 이미지 소비가 심해지고 있어요. 언론에서도 ‘연 매출 몇 억원, 청년농업인 대박’ 식의 홍보가 아닌 청년농업인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생각을 다뤄야 합니다.” (강선아 청년농업인연합회 대표)

‘전국 방방곡곡 저마다의 농(農)라이프를 만드는 청년’들이 한 자리에서 모여 자신들의 삶터인 농업·농촌에 대한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좌충우돌’ 적응기에 한바탕 웃음이 터지다가도 창농 중심의 청년 농업인 육성정책에 대해선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고, 공감의 박수도 터져 나왔다.

5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청년농업인연합회와 농어업정책포럼, 생생협동조합, 대안농정대토론회조직위원회, 국민농업포럼,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통일농수산이 공동 주최한 ‘청년, 농업농촌 정책파티 : 100인의 식탁’ 행사 자리에서다.

이 자리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행사 참석을 신청한 전국 곳곳의 100여명 청년농업인들이 모여 1부 청년 정책 토크쇼와 2부 정책네트워크 식탁이란 프로그램에 맞춰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정을 소화했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농업인 10명이 ‘선배 멘토’로, 전문가 집단으로 짜인 10명이 ‘정책 멘토’로 참여했다.

선배 멘토단은 강선아 청년농업인연합회(청연) 대표, 김후주 청연 정책국장, 차해영 생활밀착연구소 여음 대표, 이경은 청년정책연구자, 유지황 팜프라 대표, 김현희 순창귀농귀촌센터 활동가, 최지훈 베짱이 농부, 배건웅 븟 대표, 김주영 씨앗문화예술협동조합 대표, 강영수 희망토농장 이장 등이다.

정책 멘토단은 임경수 생생협동조합 상임이사, 김원일 슬로푸드문화원장, 박영범 지역농업네트워크협동조합 이사장, 정기수 국민농업포럼 상임이사, 정윤정 지역아카데미 부대표, 이병용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책연구관, 마상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 정민철 홍성군 젊은협업농장 이사, 김현곤 김현권의원실 보좌관, 김석기 농협미래농업지원센터 원장, 윤도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부장으로 구성돼 청년농업인들의 고민을 나누고 정책화 방안을 모색했다.

특히 선배 멘토들의 현장 경험을 녹여낸 발표에서 나온 청년농업인 육성 정책에 대한 지적에 대해 청년농업인들의 공감대가 높았다. 농촌 정착을 위한 정주 여건 등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 정부의 지원 정책이 사업 위주로 돼 있어 청년농업인들의 불필요한 경쟁을 유도하기도 하고, 청년농업인들의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지적 등이 인상적이었다.

김현희 활동가는 “저 역시 귀농을 해보니 탐색 단계를 위한 청년농업인 정책들이 많이 없었다. 무자본, 무기반, 무기술인 ‘3무’ 청년들이 농촌과 농업 정착을 위해선 지역을 탐색하고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집을 구하는 문제”라며 “이와 함께 너무 세세하게 틀이 짜여진 정부 사업이 오히려 청년농업인들의 꿈과 희망을 꺾어버리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김현희 활동가는 또 “지역에선 귀농귀촌을 인구 유입 차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2인 이상 가구 대상이 정책 우선순위가 많아 1인 청년 가구에 대한 지원이 사실상 없는 실정이며, 저 역시 정부 지원을 받지 못했다”라며 “이렇다보니 소외감과 모멸감을 크게 느끼는 청년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유지황 대표는 “청년농업인들을 위한 주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프라 기반 개선을 위해 ‘팜프라’라는 회사를 만들었는데, 이동식 목조주택을 이용해 청년농업인의 주거를 해결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며 “최종적으로는 소규모 주택 건축 방법을 매뉴얼화해서 청년농업인들이 직접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선아 청연 대표는 “청년농업인들을 서로 경쟁시켜서 정책 지원을 받는 지금의 시스템이 바꿔져야 한다”며 “우리 청년농업인들은 경쟁자가 아니라 동반자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주영 완주군 씨앗문화예술협동조합 대표는 “도시의 회의감 등에 지쳐 적극적인 선택으로 지역을 찾아오는 청년들이 있다”며 “행정에선 청년을 통해 지역을 발전시켜야 겠다는 인식이 있다면 청년들은 정부 행정에 청년들이 동원되고 있다는 인식이 있다. 지역 발전과 청년농업인들의 성장을 어떻게 균형을 맞춰서 갈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책 멘토 자격으로 발표한 정민철 홍성군 젊은협업농장 이사는 “다양한 청년농업인 육성 정책이 있고, 이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서로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청년들이 어느 사업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 경로가 달라진다”며 “농촌은 좋은 곳이라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를 공동 주최한 대안농정대토론회조직위원회의 정영일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오늘을 계기로 해서 하나의 협회를 조직해서 통일된 의사를 사회에 전달하고, 정책적으로 요구하기도 하고, 전문가들의 도움도 받는 하나의 채널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주최 측은 이번 행사를 통해 수렴된 의견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하고 실행될 수 있는 민간 중심의 네트워크를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청년농업인들과 선배 멘토, 정책 멘토들이 이날 함께 만든 정책 아이디어들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의 박진도 농어촌TF 위원장에게 전달됐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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