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석 농촌진흥청 농업연구관

중앙도매시장 개설규제 ‘인정제’로 완화
제3자판매 금지 등 거래규제 대폭 완화
도매시장 공공적 기능 위축 비판 거세


얼마 전 일본에서는 농업인이 자유로운 경영환경을 조성하고 농업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하에 참의원 본회의에서 도매시장법 개정안이 최종 확정됐다. 일본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도매시장의 중요한 이용 주체인 산지와 소비지 모두 규모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농협은 1900년 산업조합이 결성되고 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직간접적 산지조직화 촉진 정책이 취해지면서, 현재도 60%에 이르는 농산물이 농협의 통제권 내에서 판매되고 있다. 또한 1970년대에 슈퍼마켓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소매점의 규모화·체인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그 결과 현재는 소매시장에서 채소·과일 전문점의 비중은 20%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도매시장을 둘러싼 유통환경의 변화도 도매시장 제도개혁의 과감성에 힘을 보태는 양상이다.

일본 도매시장법 개정은 개설자의 인허가 방식 개선과 거래규제 완화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법 개정에서는 중앙도매시장 개설에 대한 농림수산대신의 ‘인가제’와 지방도매시장 개설에 대한 도도부현지사의 ‘허가제’를 ‘인정제’로 개편했다. 즉 국가가 설정한 공통규정을 준수하고, 공정하고 안정적인 업무운영이 가능한 도매시장을 국가 또는 도도부현이 ‘인정’하고 ‘지도·감독’한다는 것이다. 또한 민간도 중앙도매시장의 개설자가 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도매시장의 구조와 시설 등에 대한 국가의 관여는 없어진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도매시장과 전혀 다른 다양한 복합시설이 들어설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 여기에 도매법인의 인허가에 관련된 국가 및 도도부현의 관여도 없어진다. 국가나 도도부현은 개설자의 ‘인정권’만을 통해 도매시장을 관리하고, 도매시장별 운영은 개설자의 자율성에 맡긴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일본의 도매시장 제도개선은 도매시장의 미래에 대해 국가가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또한 국가적 기간유통시설인 중앙도매시장을 민간이 개설하게 될 경우 기업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고, 이러한 과정에서 도매시장의 공공적 기능은 기대할 수 없다는 비판 또한 거세다. 이번 도매시장법 개정은 국가가 사실상 도매시장정책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일본의 도매시장 개혁에 대한 관심은 “도매시장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있는 시장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라는 점에 집중돼 있다. 오히려 지금까지 원칙적으로 금지해 온 △도매시장법인이 중도매인이나 매매참가인이 아닌 자에게 판매하는 행위(제3자 판매) △중도매인이 해당 도매시장의 도매시장법인이 아닌 자로부터 농산물을 구매(위탁판매는 원칙 불가)하는 행위(직접집하) △해당 도매시장에 반입되지 않은 농산물을 거래하는 행위(상물분리)를 허용하는 부분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높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는 유통환경 변화에 도매시장이 대응하는 과정에서 위의 세 가지 규제가 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 일본의 도매시장법 개정은 1999년과 2004년 도매시장법 개정 때와 마찬가지로 현실을 추인해준 방식의 법 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법 개정에서 제3자 판매, 직접집하, 상물분리는 시장별 특성을 고려해 개설자별로 정하도록 했다. 이 부분에 대해 산지의 관점에서는 도매시장별 통일된 거래규칙이 없어져 혼란을 초래하게 되며, 다분히 소비지 구매자에게 중점을 둔 도매시장 재편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또한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법인과 중도매인의 영역이 상호간에 오버랩 되어 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나라와 달리 산지와 소비지의 규모화가 상당부분 진행된 일본은 대량거래에 강점을 발휘하는 도매시장법인이 소량거래에 강점을 발휘하는 중도매인보다는 법 개정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산지가 어느 주체에게 농산물을 출하해야 보다 유리한 거래가 가능한지는 지금부터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한 가지 명확한 것은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간의 계열화를 통한 역할분담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번 법 개정을 통해 도매시장 종사자는 각자 도생해야하는 시대가 시작됐지만,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출하자나 구매자는 과감하게 도태시키겠다는 정치적인 의도는 농협의 개혁문제와 별반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점을 의식해서인지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있는 도매시장의 공적인 기능을 담보하기 위해 △거래수량의 많고 적음 등에 따라 도매법인이 출하자와 중도매인 등을 차별하는 행위(차별적 취급)와 △도매법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출하자로부터의 판매위탁 의뢰를 거부하는 행위(수탁거부)의 금지는 계속해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차별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수탁거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는 상황에서는 선언적 외침에 불가하다는 비판도 많다. 가령 도매법인의 특정 산지의 농산물 판매에 소극적인 활동은 실질적 수탁거부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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