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위원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에 농민운동가 출신인 최재관씨가 임명됐다. 뒤이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임명될 모양이다. 이로써 청와대 농어업비서관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지방선거 출마로 비롯된 농정공백 사태는 3개월 만에 해소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농정 개혁의 골든타임에 발생한 농정컨트롤 타워의 부재가 가져온 충격파를 감안 할 때 농어업비서관 인선이 너무 늦었지만, 이번 최재관 비서관 임명은 다행이란 평가다. 이재욱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소장은 “시대상황과 농업을 잘 아는 신임 비서관에게 기대가 크다”며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게 됐으니 대통령이 농업문제를 잘 이해하고 농업과 먹을거리의 주권을 실현하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 소장은 지난 5월21일부터 청와대 국민게시판에 농정공백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고 농특위 설치를 서둘러 달라는 국민 청원을 냈었다.

많은 이들이 최 비서관에게 “지연과 학연을 떠나 농업계의 의견을 두루 청취하고, 소통하면서 함께 고민해온 농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문제의식으로 청와대 사람들을 설득해 가길 바란다”고 조언한다. 이는 전농 정책위원장, 여주친환경급식센터 소장, 식량닷컴, 자치와협동 대표로 농민과 함께 현장에서 활동하다가 농정의 핵심부에 들어간 그에 대한 기대이자 초심을 잊지 말라는 충고일 것이다.

사실 민주화 이후인 90년대부터 농업분야에서도 관료나 정치인이 아닌 학자나 운동가 출신이 정무직이나 외부 공모 같은 형식으로 정부에 들어갔어도, 세간의 기대와는 달리 극소수를 제외하곤 농정개혁에 큰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일부는 정부 성격의 한계로, 또 일부는 관료체제를 넘지 못하고, 또 상당수는 기존 체제에 포섭돼 농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반대로 나름 개혁성을 발휘했던 극소수의 성과는 정파가 달라서, 견해가 달라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 결과로 농정은 여전히 관료와 관련기관 종사자들이 장악하고 있고, 농민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산주의, 성장주의, 경쟁력 지상주의 농정체계는 강화되고, 극소수의 기업농과 농기업을 위한 농정이 오히려 공고해졌다. 농협은 농민의 협동조합보다는 임직원과 금융자본의 주식회사에 가깝게 변하고 있다. 정부와 농협에 개혁의 쓴 소리를 하던 학자들은 은퇴했고, 그 뒤를 잇는 후학들은 보이지 않는다. 농민운동은 단결투쟁보다는 각자도생이 익숙하다. 이런 토양에서 농정개혁은 요원할 수 밖에 없었고, 무기력과 패배주의는 점차 커갔다.

다행히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경쟁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농정에서 지속가능한 농업, 직불제 중심 농정으로 바꾸는 농정대개혁의 마지막 기회가 온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유독 농업분야만 적폐 청산 없이 오히려 농정공백으로 문재인 정부 1년을 맞았을 뿐이다.

새로 임명된 최 비서관은 그 자신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관여했으면서도 농민시민사회 진영에서 문재인 정부의 농정대개혁을 촉구하는 입장에 서 있던 이다. 농정개혁 실종의 문제점, 지금이 소멸 위기에 처한 농촌을 되살릴 농정대전환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농어업비서관 자리는 장관도, 차관도, 수석비서관도 아닌 1급 비서관이다. 그러나 그 자리는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 농민을 대변하라고 만든 막중한 자리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지난 10년 동안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만들어 온 잘못된 농정을 철저하게 뜯어 고치겠다”며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농어민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농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농업비서관을 임명하겠다”고 공약했다. 그가 할 일은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대로 농업을 직접 챙기고, 농정 대개혁에 나서도록 신명을 다해 보좌하는 일이다. 그 역시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농업의 가치가 인정받고 농민이 대접받는 세상을 위해 농정의 기본 틀부터 바꾸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간다”는 말을 남겼다.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이 임명되자 다음 순서로 어떤 인물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임명될지 관심이 쏠린다. 그리고 과연 새로이 구성될 농정컨트롤타워가 향후 농정을 어떻게 이끌지 궁금해 하고 있다.

새로운 장관과 농어업비서관은 철저한 개혁의지로 농정의 적폐를 청산하고 농정대개혁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개혁의 길에는 숱한 장애가 있을 것이고, 그동안 쌓이고 쌓여 시스템으로 굳어진 관료주의의 벽을 넘어야 한다. 이를 극복하는 힘은 바로 농정의 주인인 농민들과 국민의 지지에서 나온다. 농민과 시민사회, 양심적인 전문가들과의 협치를 통해 대세를 장악해야만 농정개혁이 가능하다. 관료의 농정이 아닌 농민의 농정이 되려면 대통령이 약속한 ‘대통령 직속 농어업특별기구’ 설치가 시급하다. 장관과 농어업비서관이 한 목소리로 대통령 특별기구 설치를 요구해서 관철해야 한다.

불가능해보이던 한반도 평화의 길이 문재인 정부의 간절한 노력으로 열리고 있듯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농어업비서관이 진심으로 임한다면 대통령 특별기구도, 농정대개혁도 충분히 가능하다. 새롭게 구성되는 농정컨트롤타워의 의지와 노력에 농민의 행복과 농업의 미래가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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