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생전에 신 음식을 꺼리셨다. 아주 가끔 잡수시기는 했어도 썩 내켜 하지 않았다. 냉장고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냉장고에 넣은 김치가 이렇게 금방 시큼해지냐며 타박하실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김치가 시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추고자 김치 위로 소금을 훌훌 뿌리셨다. 그런 아버지에 비해 나는 신맛을 즐기는 편이다. 부모자식 사이라도 입맛이 똑같아야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신맛 나는 과일 하면 ‘매실’이 떠오른다.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고 미간이 찡그려진다. 생과로 매실을 먹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이런 반응을 보인다. 삼국지를 보면 조조가 대군을 거느리고 여름철에 남녘을 칠 때 목마르고 지친 병사들에게 매실 이야기를 해 크게 이겼다는 고사가 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망매지갈 또는 상매소갈이라고 하니 매실 효능이 알려진 것은 이전부터가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것은 학교에서 배운 사군자, 즉 매·난·국·죽 가운데 하나이며, 설중매나 한중매로 일컫는 매화가 고작이었다. 매실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살아온 셈이다. 그나마 ‘허준’이라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매실의 효능이 알려지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매실로 만든 음료나 가공식품을 자주 접하게 됐다.
우리나라 매실 생산량은 1995년 8000톤에서 2014년 4만9000톤으로 약6배가 늘었다. 그러나 매실의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많아 가격 폭락으로 이어져 소비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매실을 잘 모르던 나도 소비에 나서야할 판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몇 년 전에 가깝게 지내는 분이 느닷없이 같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해 따라 나선 적이 있었다. 한 시간 남짓한 거리였으나 여행기분을 내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 무리하게 일하고 주말에 푹 쉴 요량으로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셨더니 탈이 나버렸다. 차가 움직이고 움직이는 차는 흔들리고 흔들리는 차 안에서 내 머리도 흔들리고……. 빈속이라 속은 울렁울렁하고 급기야 비지땀까지 한 바가지 흘리고 있는데 조수석에 앉아 계시던 분이 물에 매실청을 타서 건네줬다. 속도 안 좋은데 이걸 마셔야 하나 하면서도 심한 갈증을 이기지 못해 몇 모금 슬며시 목으로 넘겨봤다. 갈증은 풀리고 속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염치 불구하고 조금 더 달라해 쭉쭉 마셨다. 차에서 내릴 쯤엔 언제 그랬냐 싶게 몸에 생기까지 돌았다. 이래서 다들 매실, 매실 하는구나 생각하며 그날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여행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다. 이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하면서 우리도 매실청을 담가먹자고 했다. 그때야 당장 매실이 없으니 아내도 거리낌 없이 매실이 나오면 담가먹자 했으나 그 후 몇 년이 흘러도 매실청을 담그지 못했다. 아내도 일을 하느라 바빠 정작 매실 철이 돌아와도 매실 철인지 모르고 보냈다. 하지만 올해는 꼭 매실청을 담글 생각이다. 올해는 매실 씨를 빼고 과육을 절단하는 기계를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매실 철을 잊고 넘길 리 없다. 아내 손을 빌리지 않고 내가 직접 담가 볼 작정이다.
이번 여름 고향 갈 때 가방에는 내가 만든 매실청이 들어 있을 것이다. 오가며 마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입 안에서 군침이 핑 돈다. 아버님 산소에도 들러 인사를 드려야지. 올해는 아들이 손수 만든 매실청을 올려볼까. 평생 꺼리던 신 것을 올리느냐고 호통을 치면서 관 뚜껑을 박차고 일어나시려나.[박종률 농촌진흥청 수확후관리공학과 농업연구사]
- 기자명 한국농어민신문
- 승인 2018.05.18 17:58
- 신문 3011호(2018.05.22)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