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응모한 ‘농촌수기 공모’
잡지 이름도 기억 나지 않지만
마음 속 응어리 퍼내니 속 후련
차상 당선으로 3년 뒤 등단 발판

‘여성농업인 생활수기 공모전’
용기 없어 망설이는 분들
농촌 속 소소한 얘기들 담아
아름다운 도전하라 권하고 파 


오늘도 나는 토계리 농막에 올라왔다. 지금은 줄고 줄어서 천 여 평의 농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이곳은 내 장년의 일상이 그대로 녹아있는 공간이다.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 첫 수필집의 창작무대가 바로 여기다. 밭골마다 우리의 기쁨과 좌절이 지층을 이루고 세월도 타지 않은 채 내 기억의 창고를 넉넉하게 해 주고 있다.  

정확히 40년 전, 나는 과수농가의 안주인이고 소규모 양돈농가의 잡역부였다. 이른 새벽부터 밭으로 논으로 뛰어야 하고 돼지 사료 주기와 축사 청소까지 남편과 함께 해내야 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만능 일꾼이었다. 사과나무 450여주는 국광과 홍옥, 인도 세 가지 품종으로 가을에 수확하면 15kg 한 상자에 1500원에 팔려갔다. 저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봄에 팔면 잘 해야 2000원. 1970년대 이야기다.

아이들은 줄줄이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농산품 가격이 말이 아니라서 논농사와 사과농사만으로는 학비를 댈 수가 없다. 궁리 끝에 과수원 안쪽에 돈사를 짓고 안성에 가서 종돈을 사다가 양돈농사를 시작했다. 씨돼지 10마리는 우리 집 제 2의 희망이었다. 그때 새끼돼지 한 마리당 값이 5만원을 호가했으니 우리의 기대감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 희망에서 보물이 줄줄이 쏟아지던 날, 우리는 출산하는 어미돼지에서 새끼돼지를 받아 안고 남편이 “5만원”하고 외치면 우리는 울 밖에서 합창하듯 “5만원”하고 복창을 했다. 10만원, 15만원 액수가 올라가면서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버려 대번에 갑부라도 된 듯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러나 새끼돼지가 젖을 떼고 팔려갈 때쯤 언제 다락같이 올랐더냐 싶게 돼지값이 폭락을 했다. 속수무책이었다. 사료값도 안 되는 돼지값에 그대로 주저물러안고 말았다. 참으로 막막했다. 새벽부터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얼굴에 크림 한 번 찍어 바를 수 없이 동동거리며 사는데도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흙이 좋아서, 사과나무가 좋아서 세상 어떤 부귀영화보다 내실 있는 인생이라 자위했지만 농부로서나 내 인생자체에서도 위기감이 몰려왔다. 세상은 새마을 운동으로 잘 살아보자고 활력이 넘치는데 우리 집에는 양돈으로 얻은 부채만 늘어가고 헤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어느 날 새마을 회관에서 잡지 한권을 펼쳤는데 ‘농촌수기 공모’라는 광고가 있었다. 지금은 잡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오랜 일이지만 그 수기가 내 인생을 바꿔놓을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글을 써보지 않는 촌부여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수기를 어떻게 써야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 여러 날을 꿀 먹은 벙어리처럼 혼자 앓았다.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수없이 망설였으나 속에서 끓어오르는 비애 같은 갈망이 채근하는 것이었다.

식구들이 곤하게 잠든 밤 선무당처럼 밥상을 펼쳐놓고 달력 뒤 백지에 무엇인가를 끄적거렸다. 썼다 지우고 다시 쓰기를 하다보면 동창이 밝아오기도 했다. 문제는 쓰기는 썼는데 그것이 글이 되는 것인지 낙서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과수원 이야기. 실패한 양돈이야기며 내가 사는 모습을 영화의 장면처럼 기록해 나갔다.

어쩌면 그것은 무모한 용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응어리를 퍼내고 나니 속이 후련하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정서를 해서 보내야 한다. 아들 공책을 몰래 몇 장 떼어내서 정성껏 옮겨 썼다. 편지봉투에 넣고 주소를 써서 풀로 붙이는데 무슨 연서라도 쓰는 듯 가슴이 두근댔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우체통에 내 인생의 도전장인 수기봉투를 집어넣었다.

이십여 일이 지난 어느 날 전보 한 장을 받았다. 농촌수기 차상 당선이라는. 이 기쁜 소식은 상금 5만원,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수기를 심사하신 유경환 시인이라는 분이 당신 시집을 보내주시며 문학에 소질이 보이니 글을 써보라는 권유였다. 그것이 나이 마흔 살 때 일어난 도전장에 대한 기적이다. 그로부터 3년 뒤 나는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하고 지금까지 작가로서 행복하게 늙어가고 있다. 그때 도전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과수원집 뒷방에서 외롭게 늙어가는 따분한 할머니로 살고 있을 것이다.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우리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억울한 이야기, 그것을 가감 없이 쓰면 수기가 된다. 한글만 알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지만 용기가 없어 도전하지 못할 뿐이다. 설영 실패를 할지라도 괜찮다. 그것은 바로 경험이 되고 재도전의 노하우를 발견할 수 있어서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농어민신문에서 ‘제2회 여성농업인 생활수기 공모전’ 광고를 보았다. 많은 농촌여성농업인들이 가슴 설레고 있을 것이다. 농촌이라는 무대에서 여성농업인으로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의 애환이 수기가 될 수 있고, 도시의 화려한 생활을 접고 농촌에 뛰어들어 새로운 세상을 농업으로 만들어보려는 투지의 젊은 여성의 도전도 있을 것이다. 또한 타국에 와서 새 삶에 적응해 가는 매순간이 도전인 다문화 여성들의 알콩달콩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쓸 이야기는 차고 넘치는데 용기가 없어서 망설이는 분들께 도전하라 권하고 싶다. 겁이 많고 주저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도전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떤 형태로든 발전의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반숙자(수필가 한국문인협회원, 국제펜회원, 제2회 여성농업인 생활수기 공모전 심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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