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란 젠더&공동체 대표

밭일 나갔던 여성농민 사망에 허망
건강하고 행복하게 늙고 죽을 수 있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의 보장 절실


슬프다. 그리고 속상하다. 영암 버스사고로 인한 여성농민들 8명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드는 생각이었다. 돌아가신 분들의 연령은 모두 70세 이상, 전남 나주시에 거주하는 분들이 이웃인 영암군에 날품일을 다녀오시다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변을 당하신 것이다. 70세 이상 노인들이 젊은이들도 감당하기 힘든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다 일어난 사고를 보면서 ‘도대체 가난한 사람들은 나이 들어서도 인간답게 살아갈 방법은 없는 것인가?’하는 생각 끝에 100세 시대에 고민이 깊어진다.

왜 이들 여성농민들은 80세가 다 되도록 고된 농사일로 날품을 파는 것일까? 사연은 많다. 핵심은 살아가는데 현금이 필요하지만 농사를 지어서 현금을 벌어들이는 것도 한계이고 자식들이 충분한 용돈을 지급할 수도 없고, 그러나 현금을 써야하는 영역은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도시의 나이로 보면 은퇴하고 집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야 할 연령이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고시한 농지연금에서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은퇴농의 연령은 65세이다. 돌아가신 여성농민들은 모두 법이 규정한 은퇴농 보다 훨씬 연령이 넘으신 분들이다. 일반적으로 농촌지역에서 65세 이상이 되었다고 농업을 포기하는 일은 거의 없다. 65세면 농촌에서는 청년이다. 80세가 넘어도 여전히 농사일을 하다 한여름 무더위에 일사병으로 인해 사망하시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농민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왜 힘겨운 논밭으로 내몰리는 것일까? 이유야 많지만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현금을 필요로 하는 삶 때문이다. 전기세, 수도세, 각종 세금, 약값, 통신비 등 현금지출 요인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지만, 저축해둔 노후 자금은 없고, 노인연금은 쥐꼬리만큼 지급되는 현실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노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자식들로부터 용돈이라도 보조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오히려 푼돈을 아껴서 자식들을 지원해야 할 일이 더 많은 가난한 살림살이로 인해 농촌 노인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위해 허리가 휘도록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품팔이 노동을 하는 것이다.

평생을 들판에서 일을 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여성노인들의 삶. 마지막 종착지가 허망한 교통사고라니 기가 막힐 일이다. 더욱이 밭일을 마치고 고단한 일터를 떠나 씻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집을 향해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만나다니 창졸간에 일어난 교통사고가 억울하기 짝이 없다. 70세가 넘은 노인들을 날품팔이로 내모는 농촌의 현실은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땅은 농민의 생명줄이고 모든 것이다. 따라서 농민이 땅을 저당잡혀 연금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농민임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나이든 여성농민들의 경우 본인 소유의 땅이 거의 없다. 남편이 사망하면 대부분 자녀(특히 아들) 명의로 땅을 이관하거나 땅이 적거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여성농민들은 농지연금으로 살아갈 일은 꿈도 꿀 수 없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녀의 도움을 받거나 여전히 힘들지만 농사일이든 품팔이든 일을 지속하는 것이 삶의 방편일 뿐이다. 돌아가신 분들의 삶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73세, 78세...모두 70세를 넘은 고령에 힘겨운 밭일을 하시고 몇 만원을 손에 쥐는 고달픈 삶. 이것이 평생 동안 그들이 살아온 삶이다.

현대를 100세 시대라고 한다. 혹자는 향후 과학기술의 진보는 인간수명을 120세까지 연장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후의 준비가 부족한 노인, 특히 여성노인들에게는 결코 반갑지 않은 축복일 뿐이다. 노인세대의 빈곤화, 특히 여성노인의 빈곤화는 오늘날 또 하나의 사회문제가 되는 추세이다. 특히 농촌 지역의 경우 80세가 넘도록 종신노동, 중노동으로 인한 건강 문제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여성노인의 비중이 점점 증대하고 있는 농촌현실이고 보면 농촌여성노인에 대한 생활지원 정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100세 시대의 장수가 인간에게 재앙이 될지 축복이 될지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늙어가고 죽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의 보장이 관건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농민 기본소득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농가로 대표되는 농가기본소득이 아닌 농민으로 대표되는 농민기본소득 정책에 대한 논의가 확장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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