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석 농촌진흥청 농업연구관

소비지 유통환경 변화 대응하려면
경매 대신 정가·수의매매 활성화
경쟁력 있는 복합물류시설 확충해야


도매시장은 우리나라의 농산물유통에 있어 중심 경로이다. 또한 출하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거래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익적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도매시장을 둘러싼 유통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따라서 도매시장이 유통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도매시장이 현재 어떠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지에 대한 진단은 물론, 앞으로의 도매시장이 직면하게 될 유통환경의 변화와 그에 대한 대응방향도 명확하지 않다. 이러한 도매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해결 방향을 모색함에 있어 일본의 대응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일본의 도매시장은 취급량 감소가 지속돼 왔다. 도매시장의 청과물 취급액은 1993년 4조8362억엔에서 2015년 3조3318억엔으로 감소했다. 불과 12년 사이에 약 31%나 감소한 것이다. 이 같은 도매시장의 취급액 감소는 도매시장 종사자의 경영악화를 초래했다. 2015년 기준 중앙도매시장에서 영업손실을 계상한 도매시장법인은 11.1%였으며, 중도매인은 무려 45.3%에 이르고 있다. 도매시장 종사자의 경영악화는 도매시장 종사자의 통·폐합과 기능강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됐다.

일본의 도매시장 경유율도 1995년 74.8%에서 2014년 60.2%(채소 69.5%, 과일 43.4%)로 감소했다. 다만 도매시장의 경유율 감소는 도매시장의 사회적 역할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경유율은 전체 유통된 청과물(신선+가공) 중에서 도매시장에서 취급한 부분의 비율로 구한다. 도매시장은 신선청과물을 취급하는 시장으로 제도화돼 있으며, 가공 청과물의 취급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가공품 비중 확대는 도매시장 경유율 하락으로 나타난다. 가령 2005년 기준 전체 채소 유통량 중에서 가공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23%이고, 과일은 무려 47%이다. 단순히 2005년 신선과일이 100% 도매시장으로 유통됐다 하더라도 도매시장 경유율은 53%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면, 신선청과물 유통을 중심 역할로 부여받은 도매시장의 사회적인 역할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일본에서 유통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지속적인 성장을 실현하는 도매시장의 특징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소비자 유통업자의 구매 안정성 중시에 대응한 정가·수의매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유통환경 변화를 주도하는 주요한 요인은 1970년대부터 나타난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의 성장으로 대표된다. 이들은 소규모 소매점의 급감을 초래했다. 이후 소비구조의 변화에 따른 가공·외식기업의 진출과 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기존의 영세 소매점 등은 그날그날 영업을 종료한 시점에서야 다음날 구매해야 할 농산물의 수량을 확정시킬 수 있었다. 당연히 사전 계획적 구매를 위한 정가·수의매매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영세 소매점은 당일 도매시장에서 경매를 통해 농산물을 구매하고, 일부 부족한 농산물을 중도매인에게서 구매하는 패턴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대형 소매점 등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 간의 거래방법도 경매·입찰 방식에서 정가·수의매매 방식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가령 중앙도매시장의 청과물 경매·입찰 비율은 1985년 75%에서 2015년 10.6%로 30년 사이 약 60%P나 감소했다.

지속적인 성장을 실현하는 도매시장의 두 번째 특징은 대형 소매점의 까다로운 주문에 대응할 수 있는 온도관리가 가능한 복합물류 시설을 확보해 품질 및 물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영세 소매점이 도매시장의 주류를 이루던 이전에는 이들 소매점이 직접 차량을 이용해 구매한 농산물을 반출하기 쉽도록 주차장 시설을 확충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대형 소매점은 도매시장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전화나 팩스 등으로 농산물을 주문하는 거래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이후 도매시장에서는 이들 소매점 등에 농산물을 공급하기 용이한 저장·소포장·소분·배송 등과 같은 물류시설의 확충에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소매점 간의 경쟁 촉진과 식품의 안전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고조되면서 저온유통 시설이 급속하게 확충되고 있다.

한국의 도매시장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주체는 일본의 1970년대와 같이 소규모 영세 소매점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정가·수의매매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그날그날의 시세를 바탕으로 구매량을 결정한다. 대부분의 유통주체가 도매시장 시설현대화 사업에서 물류시설보다는 주차시설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영세 소매점이 줄고 계획적인 구매를 중시하는 대형 소매점 등의 비중이 늘어날 것이라는데 대해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매시장 종사자의 대응방향은 무엇일까? 새롭게 나타나는 대형 소매점이나 가공·외식업자에 대응한 거래방법 및 물류시설의 확충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이러한 거래방법이나 물류시설은 도매시장 종사자의 대응 전략에 따라 당연히 다르다. 도매시장 종사자 주도의 도매시장 개혁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앞으로의 도매시장은 고객을 기다리는 영업이 아닌 고객을 찾아가는 영업으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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