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은행 민원폭주 왜?


고령화된 농촌사회에 ‘젊은 피’수혈을 목적으로 정부가 ‘2030세대 청년창업농 지원’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면서 한국농어촌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농지은행사업에 대한 전업농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2030세대 청년창업농’을 농지은행사업 대상 최 우선순위에 두면서 그간 농지은행을 통해 농지를 임대해 영농을 해 왔던 기존 농업인의 농지임대가 어려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같은 문제를 감안해 농식품부가 기존 임차농가에 대해서는 재계약을 원할 경우 연장할 수 있도록 올해 관련 지침을 개정했지만 2030세대를 대상으로 한 농지은행사업 정책목표치가 확정된 상황이어서 이에 부담을 느낀 농지은행은 여전히 2030 청년창업농 지원에 우선권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기간 목표를 달성하기 보다는 현장상황에 맞는 보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2030세대 지원 2013년 본격화
농지 임대·매매 ‘최우선 배정’
올해는 3500ha로 물량 늘어나

기존 농지 임대농들 
우선 순위 밀려 재계약서 배제
"전업농 논 뺏어 청년 지원 안돼"

‘재계약 임차농지 우선 연장’   
농식품부, 대책 마련했지만
농어촌공사, 목표 달성 부담
기존 농민들 "변한 게 없어"



▲젊은 피 수혈 청년창업농지원사업=2030세대에 대한 농지지원사업은 사실상 2013년부터 본격화됐다. 이동필 전 농식품부 장관 당시 농지은행사업을 통해 2030세대 젊은 농업인에게 농지를 매매 또는 임대방식으로 확대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농식품부는 지난 해 5월 농지임대수탁사업 대상에서 2030세대를 최우선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농지은행사업 업무지침을 개정했다. 이에 따르면 농지임대수탁사업의 최우선 지원 대상자로 2030세대를 지정하고, 연령배점도 0.45점에서 0.55점으로 상향조정됐다.

이어 지난 12월에는 청년창업농 중 1200명을 선발해 최장 3년간 월 최대 100만원의 정착금을 지원하는 한편, 2030세대에 대한 농지은행의 농지임대 및 매입사업을 통해 올해 3500ha를 최우선 지원하기로 했다. 매년 2030세대에 대한 농지지원사업 물량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기존 임대농들은 역차별 불만=이처럼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농지은행 사업이 확대됨에 따라 기존 농지은행으로부터 농지를 임대해 농사를 짓던 농가들은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고령화되는 농촌지역에 젊은 농업인이 들어오도록 하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기존 지원을 받던 농민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시키는 방식으로 청년농 육성사업이 진행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특히 영농철을 앞두고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화성시 정남면의 박 모(58)씨는 올해부터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은행 수탁사업으로 임대 받은 논에서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됐다. 지난 2012년 한국농어촌공사 수탁사업으로 임대 계약한 1만3200㎡(4000평)의 논이 지난해 말 만료돼 올해 재계약을 하려 했지만 ‘2030 젊은세대 농지은행 지원사업’ 우선권에 밀려 계약 대상에서 배제된 것이다.

쌀 전업농인 박 씨는 정남면에서 8만2500㎡(2만5000여평) 논 가운데 자경 1만9800㎡(6000평)을 제외한 6만2700㎡(1만9000여평)을 한국농어촌공사로부터 수탁 임대받아 농사를 짓고 있다. 이 가운데 4000여평은 지난해 만료됐고 나머지 논들도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2020년까지 계약이 만료된다.

박씨는 이 논들도 역시 ‘2030세대 우선지원’으로 재계약이 어려울 것으로 보여 노심초사하고 있다. 박씨는 “젊은 세대들의 농촌유입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농지지원 사업은 이해할 수 있지만 농사를 잘 짓고 있는 기존 쌀 전업농들의 논을 빼앗아 젊은 세대들에게 우선 임대한다는 정부 방침은 그릇된 정책”이라며 “더욱이 일부 젊은 세대들은 본인이 직접 농사짓지 않고 부모가 대신 지어주는 사례도 부지기수”라고 질타했다.

박씨는 “2030세대 지원이 많다보니 실제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 신청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들은 자격대상 박탈을 방지하기 위해 타 업종 사업면허 등을 제3자 명의로 하는 등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제도 악용도 문제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지도·관리해야 할 정부가 2030 세대의 외형적 실적위주의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을 펼치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박씨는 “귀농인과 2030세대 농업인 위주로 우선지원 정책이 바뀌면서 쌀 전업농들은 소외되고 설 자리마저 잃고 있다”며 “불합리한 농지은행 사업 제도개선과 지도 관리를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경기지역 또 다른 농가도 박 씨와 유사한 민원을 제기했다. 임대기간이 만료되면서 재계약을 하러 갔지만 한국농어촌공사 지역 지사에서 ‘2030세대가 최우선 임대사업 대상자이기 때문에 순위에 밀려 임대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

이  농민은 이에 대해 “아랫돌 빼서 윗돌 궤는 격”이라면서 “전업농이라고 하더라도 생산기반의 대부분이 임대농지인데, 임대를 해주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제도 보완했는데=2030 청년창업농을 중심으로 농지은행사업이 전환되면서 발생한 기존 농업인과의 지원 형성성 논란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고, 2030 청년농업인에 대한 지원이 늘어날수록 민원도 커지고 있는 실정.

이에 따라 농식품부는 올해부터 진행되는 농지은행사업 지침을 바꿔 2030세대 지원에서는 비축농지 등의 신규 농지를 중심으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또 올해 농지은행사업 지침인 ‘2018년도 맞춤형 농지지원 사업시행지침’에서 기존 농업인들에 대한 농지임대사업에 대한 부칙을 마련했다.

부칙에서 농식품부는 ‘기존 지원농가 경영규모 유지’ 관련 내용을 추가해 △2018년 1월 1일 이전까지 농지은행으로부터 임차 받았던 농지의 임차기간이 만료되어 해당농가가 임차 연장을 위한 재계약을 원할 경우에는 지원일 현재 경영규모가  동 지침의 지원대상자별 지원한도를 초과하더라도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과 △수탁농지는 지원대상자별 지원한도를 적용하지 아니하고 농지 임대를 위한 신규계약 및 재계약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농지은행을 통해 농지를 임대해 사용해 오던 기존 농민들은 ‘변한 게 없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유는 농식품부가 이미 ‘3500ha를 2030세대에 지원하라’는 목표를 정해 이행기관인 한국농어촌공사에 하달했고, 수행기관인 한국농어촌공사는 이를 달성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30세대와 기존 전업농 등에 대한 농지임대사업이 각 월별로 실적계획을 세워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일단 목표를 달성해 놓고 보자’는 식으로 진행되면서 연초 기존 임대농을 대상으로 민원이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은행 관계자는 “올해 2030세대 목표가 3500ha인데 전체 면적의 25%정도 되는 수준인데, 현장에서 이 목표를 미리 달성해 놓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면서 “같은 민원이 제기되고 있어 이에 대한 추가적인 지도지침을 마련해 현장지도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같은 문제가 쌀 전업농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전업농정책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14일 aT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연 김광섭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회장은 “70만 농가 중 2ha이상 농지를 가지고 있는 농가가 14만호 정도가 되고, 영농을 규모화 했다고 하더라도 자경농지를 3ha미만”이라면서 “전업농 기준이 6ha인데 나머지는 대부분 임대를 통해 전업농이 된 것이고, 그만큼 농지은행이 쌀 전업농 육성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전업농 6ha 기준이 만들어졌던 1990년대와 현재는 상황이 많이 변했다”면서 “6ha로 소득지지가 안되기 때문에 이를 10ha로 늘려야 한다”고 말해 기존 전업농도 추가적인 임대농지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정부, 전업농 육성 해놓고 이제와 홀대"
 

윤원희 한농연안성시연합회장
청년농 실제 농사 여부 등
꼼꼼하고 세심한 관리 필요

“2030세대 농지은행사업과 우선지원과 관련된 민원이 많아요. 특히 1990년대 정부의 전업농육성정책에 따라 전업화 된 농가들이 농지은행으로 대부분 농지를 임대받아 하고 있는데, 이걸 2030세대로 전환한다고 하니까 불만이 많은 겁니다.” 윤원희 한국농업경영인안성시연합회장의 말이다.

윤 회장은 “최근 들어 부쩍 농지은행으로부터 농지를 임대하는 과정에서 기존 전업농들의 민원이 많아졌다”면서 “이유를 알아보니 정부가 2030청년농업인을 육성하는 정책을 펴면서 지역 농지은행이 기존 임대농들에게 농지임대를 꺼려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 농지은행에 문의를 해 봐도 2030 청년농업인에게 최우선적으로 농지를 임대해주라는 내용으로 지침이 내려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면서 “특히 임대농지를 기반으로 전업농으로 영농을 하고 있는 농업인들에게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윤 회장은 이에 대해 “전업농의 대부분이 농지를 임대해서 전업규모를 유지하고 있는데,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농지를 빌려주지 않는다면 전업농은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그는 “고령화되고 있는 농촌사회를 고려할 때 2030세대에 대한 지원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면서 “다만 아랫돌 빼서 윗돌 궤는 식은 안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2030 청년농 육성정책에서도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면서 “실제 농사를 짓고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하며, 허투루 지원이 되는 것은 없는지 농식품부와 농어촌공사 농지은행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장희·이진우 기자 leej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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