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연 단국대학교 교수

생태적 순환시스템 무너지고
규제와 인증 없인 안전성도 의심
전통농업의 가치 재발견할 때


우리나라의 산업화 농정과 농업이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다. 농산물 생산증대와 이익증대를 위한 각종 투입재의 사용 증가와 시설투자의 증가가 이를 반증하고 있고, 이러한 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사업이 그칠 줄 모르고 있다.

몇몇 전문가들이 생산주의, 산업화 지향 농정의 폐해를 지적하고 ‘다기능농정’, ‘지속가능한 농정’, ‘국민행복 농정’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찻잔속의 태풍이거나 소귀에 경 읽기에 그치고 있는 것 같다. 농업생산의 산업화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우리가 당면하게 된 농업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산업혁명으로 거치면서 근대 사회에서 일반적인 생산시스템으로 자리잡은 ‘공장(Factory)’은 모든 국가에서 자본주의 발전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전문화, 표준화된 체계를 갖고 일정하게 기계화된 조립라인을 거쳐서 단일한 생산물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체계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장 시설에서 원재료를 투입해서 생산되는 것은 상품뿐만 아니라 폐기물도 생산하게 되는데, 이것이 환경에 악영향을 주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적 또는 사회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이런 공장형 농업생산을 추구하는 것이 농업의 산업화이고 생산주의적 농정이다.

즉, 보다 많은 생산과 이익을 얻기 위해 농작업의 기계화, 표준화, 전문화를 추구해 왔으며, 그 결과 단일 작물을 농지에서 재배하거나 폐쇄된 공간에서 많은 가축을 사육하고 생산하는 생물학적인 조립라인을 형성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농축산물 생산과정에서 각종 화학적, 생물학적 폐기물이 생산되는데, 이것이 농촌의 대기, 토양, 수질을 오염시키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농촌공동체도 파괴시키고 전통농업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식품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농업의 산업화로 인해서 농업과 농민은 더 이상 환경보전의 파수꾼이 아니라 농촌환경의 파괴자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공장생산의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1980년대 중반부터 선진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환경규제가 적용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른 새로운 환경친화적인 기술을 적용하는 기업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농업에서도 환경오염저감 및 안전성을 강화하는 기술이 발전하게 되었고, 소위 안전한 농약과 제초제를 사용하고, 오염원이 차단된 밀폐된 시설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안전식품으로 인증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설비용이 높아서 비싸진 농산물을 마치 ‘고부가가치(?)’ 농산물이라고 착각하는 현상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결국, 환경규제가 적용되어서 규제와 인증이 많아진 일반 공산품처럼, 농산물에서도 각종 규제와 인증이 적용되는 식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게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4차산업 혁명에 대한 논의와 함께 더욱 강조되고 있는 이러한 공장농업이 우리 농업의 미래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면 과거 우리의 농업은 어땠을까? 기성세대가 기억하는 농업은 단지 생산량이 충분하지 않아서 ‘배고팠던 기억’에만 머무르는 것 같다. 그것도 쌀밥을 제대로 못 먹었던 기억 말이다. 그런데, 그 이면에서 전통농업은 자연과 인간 간의 생태적인 순환시스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특별한 규제와 인증이 없어도 그 안전성을 의심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었다.

농업생산은 경제적 이윤동기 보다는 사회문화적인 책임과 공동체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이루어졌으며, 생산 폐기물은 다른 활동의 투입재로 활용되어 ‘부가가치’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거나 아니면 다시 자연으로 흡수되는 방식으로 순환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농촌의 들녘, 개울, 경관, 뒷동산이 우리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식량생산을 위해서 다른 모든 가치를 파괴하는 공장농업을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농산물 생산과 함께 관광, 공예, 교육, 체험, 치료 및 힐링, 삶의 터전 복원, 공동체 재생 등의 다양한 기능과 역할로 연계될 수 있는 전통농업을 새롭게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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