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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女담] 새봄 새 들판에 서서이음전

봄기운이 완연하지만 아직도 움직이지 않으면 오소소 추운 기운이 감도는 들판에 나왔다. 함께 폐비닐을 걷으러 온 태국인 남녀는 부부라고 한다. 빈집을 얻어 기거하며 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므로 우리와 자주 볼 것 같다.

지난가을에 비닐을 미처 걷어 내지 못한 들판 걱정이 겨우내 떠나지를 않았다. 추수에 몰두하다 이른 추위가 닥쳐왔다. 언 부분의 비닐이 찢어지는 바람에 봄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혹 이웃들이 더딘 밭 청소를 주인의 게으름 탓으로 여기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과 부끄러움도 있었다. 시부모님은 일의 진도가 늦다 싶으면 사정과 관계없이 의욕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단정하며 나무라기부터 하신 기억이 크다.

우리의 농사 경력이 오래된 지금은 나무라실 부모님도 계시지 않는다. 그런데도 남보다 뒤처진 일에 대한 질책과 원망을 누군가에게 사정없이 들을 것 같은 기분은 왜 자꾸 엄습하는지 모를 일이다. 삼동 내내 골칫거리였던 일을 처리해 줄 일꾼들이 맞춤하게 나타났으니 얼마나 좋은지. 더군다나 비가 온다는 예보에 걱정이 많았었다. 땅이 질척해지면 일이 몇 배로 번거로워지기 때문이다. 뽀송뽀송한 오늘 일을 시작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태국인 부부는 이런 일은 경험이 없는 듯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내가 시범을 보이니까 곧 익숙해져서 빠른 속도를 보였다. 말이 통하지 않아 여러 순간 답답함이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눈빛이나 표정, 손짓, 발짓으로 웬만큼은 의사가 전달된다는 게 다행이었다. 이전에 왔던 중국 근로자들과는 핸드폰의 글자 변환기능을 이용해 재미있게 이야기 나눈 바 있다. 저들과도 한 번 시도해볼까?

앞으로 자주 만나고 일하면서 친해지면 개인적인 이야기도 스스럼없고 깊어질 텐데 몸짓만으로는 아무래도 대화에 제한을 받지 않겠는가. 생소한 태국 언어지만 소통에 불편함이 없도록 간단한 생활단어라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내가 웃으면 그들도 빙그레 웃고 내가 밭둑에 걸터앉아 휴식하면 그대로 따라 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니까 춥기는커녕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우리 부부와 태국인 부부, 넷이 저 끝까지 다녀오면 여덟 이랑씩 흙 본연의 폭신한 검은 얼굴이 나타났다.

작물의 씨앗을 움 틔우고 가꾸는 모성의 흙 면적이 점점 넓어지는 희열을 이랑마다 느낄 수 있는 건 곡식을 수확할 때와는 다른 보람이다. 외국 일꾼들의 도움까지 받은 후 마침내 민낯을 보인 밭은 마치 새 땅인 양 신선하다. 흩어진 조각 폐비닐까지 다 치워진 들판은 볼수록 미끈한 청년처럼 훤했다.

배추를 파종할 때도 그들 부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기에 나는 핸드폰을 꺼내 예상하는 날짜를 여러 번 상기시켰다. 이만하면 원만하게 낯선 이와 대화가 이루어진 것 같아 흡족하고 오늘의 일도 한없이 개운하다. 풍년으로 귀결될 올해의 농사와 그들과의 좋은 인연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태국 새댁과 활짝 웃으며 힘차게 하이파이브!
 

   
 

이음전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
편지마을회원
한국문인협회 문경지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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