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란 젠더 & 공동체 대표

마을의 얼과 혼, 역사가 깃든
전통놀이·음식·풍습 등 소멸 중
이제라도 발굴·보존 서둘러야


정월 대보름이 지나갔다. 어릴적 보름은 마을 대항 불깡통 날리기, 이른바 불깡통 대전과 “내 더위 니 더위 다 니 더위”라고 외치던 더위팔이, 그리고 며칠째 울리던 지신밟기, 꽹과리 소리로 가득했다. 이제는 기억조차 아련히 잊혀 생각나지 않는다. 요즘은 정월대보름 축제로 명명하여 마을이나 공원 등에서 달집태우기, 사물놀이 등으로 겨우 명맥을 보존하고 있는 정도이고 보니 대보름의 의미조차 희미해진 것 같다.

정월 대보름은 농경사회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월대보름은 명절이라기 보다 마을단위 단결을 도모하고 농경사회에서 한해의 풍요와 액막이를 위한 공동체의 비나리 염원인 한해의 첫 보름맞이 이다. 그래서 정월대보름은 사적인 의미가 아니라 공동체의 안녕과 농경의 시작을 위한 맞이궂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농촌마을의 현실은 어떠한가? 정월대보름 꽹과리가 울리는 마을이 몇 개나 될까? 병해충을 태우는 쥐불놀이나 마을의 단결을 도모하는 당산제 등은 이제 찾아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다리밟기를 위한 새끼줄을 꼬아줄 마을 청년들도 없고 마을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놀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할 아낙들도 없다. 이제 대보름은 그저 개별적으로 오곡밥을 해먹는 날 정도로 의미가 축소된 지 옛날이다.

마치 농업, 농촌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을의 즐거움이었던 전통은 소멸하고 있다. 그나마 앞으로는 마을의 젊은 여성들이라고는 결혼이민여성들만 남게 될 것인데 그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나 놀이의 의미를 알 턱이 없고, 또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전통음식 또한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든다.

이렇듯 농촌공동체를 지탱해 왔던 문화나 음식, 놀이나 풍습 등 모든 것은 방심하는 사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몇 남지 않은 어르신들조차 요양원으로 자식들 집으로 떠나고 나면 누가 있어 과거의 전통을 기억하고 마을의 독특한 요리(주로 향토음식은 약선인 경우가 많다)법이며 마을만의 자랑으로 행해진 놀이나 풍습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전수할 수 있을까? 이것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자산이고 마을의 얼과 혼과 역사가 깃든 것이고 사람과 사람, 즉 마을공동체의 자산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자산들은 서서히 소멸하고 흔적이 없다. 저수지를 끼고 있던 마을 저수지에는 보름이면 부녀회원들이 ‘용신제’를 지낸다. 한 해 동안 탈 없이 농사짓게 해주고 저수지 익사사고 없도록 비는 행사이다. 하지만 ‘용신제’를 지낸 사실 조차도 기억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산제는 남성들 중심으로 추진된 제사이기 때문에 그나마 몇 개라도 흔적이 남아있고 문화재로도 추천되어 명맥을 유지하지만 여성들, 부녀회원 중심으로 행해졌던 행사들은 문화재 형태조차도 없기 때문에 몇몇 개인의 기억속에 저장되어 세상에서 소멸되어 가고 있다.

거창하게 말하면 여성의 전통자원과 지식은 전승과 보존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어서 소멸되거나 사장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농촌의 젊은 인력, 특히 여성들은 전통문화의 계승과 보존의 담지자 역할을 해왔었다. 그러나 그 동안 아무도 이들의 문화적 계승자 역할에 대해서 주목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한번 사라진 것들을 복원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또한 전통은 낡은 것, 옛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것이라는 독특한 가치와 생활양식을 담고 마을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살아있는 지속되는 일종의 풍습이나 놀이로서 의미가 있다. 농촌지역의 세시풍속 중 농경시대에 중요한 풍습이나 놀이는 소멸하지 않도록 보존과 계승, 기록을 통해서 복원, 유지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마을단위로 여성들이 행했던 역할이나 풍습, 음식 등과 연관된 전통자원에 대해서 이를 데이터화 하고 정리하여 기록화하는 일은 시급하다.

농촌을 변화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여성은 농촌공동체의 심장이다. 지금도 부녀회가 활발하지 않는 지역은 마을행사를 치르기가 힘들다. 설날 합동세배나 경로당의 운영 등이 어렵다. 여성들은 마을을 성장시키고 마을민 간의 단결을 만드는 추진체 역할을 한다. 그 동안 부녀회는 구판장, 공동경작 등 많은 활동을 통해서 마을의 집기들을 장만하고, 마을을 정돈하고 마을내 공동체 행사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들 여성들의 전통자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이제라도 마을 여성들이 행했던 전통자원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또한 마을개발 등 여타 사업을 시행할 시 이러한 여성들의 전통자원(놀이, 손맛, 전통음식 등)을 연계하는 정책적인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원들은 돈으로도 살 수 없고, 만들 수도 없는 유일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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