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20세기 후반부터 기술혁신과 사회혁신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경제발전과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기술혁신과 사회혁신을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가 중요한 관심사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리빙랩(Living Lab)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특징은 기술혁신을 특정 연구자가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와 수요자 등이 모두 함께 참여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술혁신의 분야 또한 특정 한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융복합화를 전제로 한다.

일반적으로 농업분야는 다른 분야에 비해서 기술혁신이 낮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농업분야에서도 품종, 재배기술, 농기계, 질병 등에 대한 연구개발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고, 최근 들어서는 4차산업혁명에 대비한 자율주행, 빅데이터 등의 연구개발도 확대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드는 궁금한 점은 그간 이루어진 수많은 농업·농촌분야의 연구에 현장 농민의 요구사항이 반영이 되었는지, 그리고 연구성과를 실제 농민이 현장에서 어느 정도 활용하고 있는가라는 점이다.

올해 55개 연구에 7185억원 투입

지난 1월 달에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이 발표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농림축산식품부의 모든 업무추진을 현장(Field), 혁신(Innovation), 책임(Responsibility), 공감(Sympathy), 신뢰(Trust)에 기반 해 추진하겠다는 농정의 원칙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농정원칙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농정이 안고 있는 한계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한계점은 농정분야 중 특히 농업농촌의 연구개발분야에서 가장 크게 나타난다고 판단된다.

중앙정부는 매년 ‘정부 R&D사업 부처 합동설명회’를 개최한다. 2018년 합동설명회에서 농림축산식품부는 12개의 연구개발사업을, 농촌진흥청은 43개의 연구개발사업을 발표했다. 합동설명회에서 발표된 연구개발사업은 총 55개이고, 연구개발사업의 총 생산액은 약 7185억원이다. 대부분의 연구개발사업은 국가적으로 필요로 한 사업이고, 꼭 해야 하는 사업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연구개발사업의 성과는 농업과 농촌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긍정적 기여를 충분히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수많은 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현장의 농민과 농촌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였는가, 그리고 실제 연구개발사업의 성과가 현장농민과 농촌주민이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는가이다.

현장 농민 수요, 얼마나 반영됐나

최근 미래농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언급되고 있는 센서장치, 자동제어장치, 농업로봇, 정밀농업, 합성생물학 등과 같은 최첨단 농업연구개발을 하는데 어떻게 현장농민의 수요를 반영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첨단영농기술과 장비가 개발되는 과정에서 농민의 경작방식과 생활을 이해한다면 보다 현실적응성이 높은 기술과 장비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수행되었고 향후 수행되어갈 농업·농촌분야의 수많은 연구개발사업이 현장농민과 농촌주민의 수요를 어느 정도 반영했고, 그 성과가 얼마나 상용화되고 있으며, 성과에 대한 현장농민과 농촌주민의 만족도를 반영했는가라는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자 중심 연구 벗어나야 ‘실효’

농업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연구자 중심의 공급지향적 연구개발사업은 성공여부를 떠나 현장에서 수용되기 힘들다. 이러한 사실은 네덜란드가 이미 20년 전부터 현장에서 연구과제를 찾고, 현장에서 연구하며, 현장농민으로부터 평가를 받는 ‘이노베이션 네트워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연구개발성과가 있더라도 현장농민과 농촌주민에게 활용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연구자를 위한, 그리고 정책을 위한 연구개발에 불과하다. 이런 맥락에서 농업현장에 기반 한 연구개발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장농민을 대상으로 한 농업R&D에 대한 수요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고, 현장농민이 연구개발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농민의 활용과 만족이라는 관점에서 성과평가가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농업 중심의 연구개발이 아니라 농촌, 식품, 교육, 복지 등으로 연구 범위가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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